어른스러운 선 긋기 연습

관계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by 건빵진소라

학창 시절, 여느 친구 관계에서 있을 법한 일임에도 친한 친구와 다소 냉랭한 시간을 보내게 될 때면 내 마음속에는 산사태가 일었다. 제자리를 묵직하게 지켜야 할 마음의 산이 이렇게나 얄팍한 것 따위에 이렇게나 크게 흔들릴 수 있다니, 하지만 놀랄 시간도 주지 않고 사정없이 흔들리고 부서져 내렸다. 그럴 때면 어린 나는 내가 기어코 죽어야만 이 고통이 끝나는 것인가 하고 세상의 무게를 혼자 다 짊어지는 듯 바닥으로 깊게 침잠했었다. 내가 이런 홍역을 치를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소라야, 인간관계는 자동차랑 비슷해. 너무 멀어도 외롭지만 너무 가까워도 접촉사고가 나. 살면서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워야 해.”

하지만 엄마가 나를 삼십삼 년 키우면서도 아직까지 깨닫지 못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것이 적당함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어떤 영역에서든 마음이 넘쳐흘렀으면 넘쳐흘렀고 메말랐다면 메말라있었다. 내 마음은 모 아니면 빽도였다. 특히나 인간관계에서는 더 그랬다. 그런 내가 적당함을 유지하는 것 다음으로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선을 긋는 것이었다.

인간관계 안에서 뻣뻣하게 유영하고 있는 나의 포지션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나는 대체로 어디서 빌려온 광대 같은 것이었다. 애초에 검은색인 주제에 사람들 사이에 조화롭게 섞이고 어울려 마침내 더 멋진 색으로 포장되고 싶었다. 그렇게 내 본연의 색을 잠시 감추고 억지로 웃기는 역할을 자처하는 광대. 광대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스스로 가장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 누군가에게 놀림감이 되길 자처하는 길이다. 돌이켜보면 서른세 살이 될 때까지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저렇게 열심히 놀려대도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나 역시 그 과정을 즐겼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내가 요즘 사람만 만나면 본래의 검었던 모습이 불쑥 올라오곤 한다. 이 사람, 나를 왜 막 대하는 것 같지? 하고 말이다. 어쩌면 나를 양껏 놀릴 수 있게 빗장을 열어제꼈던 것이 화근일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신바람이 나서는 자주 선을 넘었던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자아의 존엄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맞닥뜨렸던 수많은 시간을 떠올려보면 꽤나 합리적인 추측이다.

엄청난 뒷북이지만 이제 와서 나는 그동안 내가 어여쁘게 보살피지 못하고 매번 놀림당하게 내버려 뒀던 나의 일부가 다소 애틋하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최근 들어 나에게 무례하게 말하거나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지켜달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웃음기 싹 빼고 진지하게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농담이라는 포장지에 잘 감춰서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그게 아니라면 씩씩거리며 말하기도 한다. 격양된 감정을 드러내버리면 감정 하나 통제하지 못해 참으로 미성숙해 보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에게서 내 자아를 지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이것이라면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지금까지 안 그랬던 애가 이렇게 대놓고 표현을 해대니 상대도 당황한 눈치다. 바로 수긍하며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네가 더 선을 넘은 것 아니냐고 반박해 오는 경우도 있다. 후자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자면 나 또한 다른 사람이 그어둔 선을 쉽게 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근데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 상처 주면서까지 내 자아를 지켜야 할 경우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아직 감이 오지는 않는다. 아무튼 요즘 나는 나의 일부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나에게는 나의 자아들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다. 상처받은 후엔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려야 할 뿐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나의 자아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받기 않고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어야 나도 그들에게 기꺼이 관대함을 베풀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는 것이라 믿게 되었다. 상처받지 않고 충분히 존중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일은 나와 상대 사이에 적당한 선을 긋는 것이다. 망설여진다면 이렇게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내가 먼저 선을 긋는다고 파투 날 관계였다면 애초에 오래가지 못했을 관계였을 것이라고.

초등학생 때 책상을 나눠 쓰던 짝꿍들에게는 이쪽으로 넘어오지 말라며 별생각 없이 그었던 검은 연필선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보이는 선이어서 오히려 더 쉬웠던 걸까. 성인이 된 지금 누군가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야 한다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해본다. 나에게는 나의 자아들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이전 12화나의 어른이었던 아빠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