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며 사는 삶의 통각에 대하여
“내 주변에서 가장 먼저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소라일 거야.”
이름을 대면 열에 열 모두가 아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어느 날 함께 와인을 마시다가 나에게 넌지시 말했다. 성공이라는 단어에서 약간의 경계심 혹은 괴리감이라 할만한 감정을 느꼈지만 악의 없는 취지로 말했을 친구의 마음을 알았던 터라 딱히 꼬아 듣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가 봐도 잘 나간다 말할 수 있는(내가 감히 평가하겠다는 취지는 절대 아니다) 친구에게서 이런 기대를 받으니 마치 보석으로 신분을 세탁하기 직전의 원석이 된 것만 같아 괜스레 기분이 방방 떴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서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몇 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완벽하게 삼켜지지 않는 걸 보니 그 말이 나에게 가시가 된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숨 쉬는 매 순간 목구멍에 걸려있는 그 말 하나가 내 코를 타고 콩알만큼 불어 들어오는 숨마저도 둘로 쪼개놓았던 것이겠지. 쪼개진 숨이라도 간신히 붙잡고 헐떡거리는 신세라니. 그 말이 뭐라고.
왜 나는 더 잘 살지 못할까. 내 미래를 성공이라 점쳐줬던 친구와 서로 까지는 않았지만 눈치껏 짐작이 가는 연봉을 단순 비교해 봐도 그렇다. 내가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수 없다며 연봉을 이천만 원 넘게 후려치고 독립대행사로 이직했을 때에도, 그 회사에서 3년 동안 연봉이 동결되었을 때에도, 그다음 이직한 회사에서 간신히 연봉을 올렸음에도 그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은 듯한 나의 쓸모를 부단히 증명해야 했을 때에도, 그러다 존경하는 선배가 새로운 회사에서 다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했음에도 그저 기쁘다기보다는 이번에는 얼마만큼의 연봉을 올릴 수 있을까 골똘히 계산에 잠겨 버렸을 때에도 나는 번번이 그 친구를 떠올렸던 것 같다. 첫 회사의 입사 동기였던 우리는 같은 출발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보니 그 친구와 나 사이에 쉬이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생겨나버린 것을 눈치챘다. 그 간극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형편' 혹은 '삶의 여유' 정도로 말할 수 있을 테다. 물론 나도 안다. 하고 싶은 일 안 하면 죽을 것 같다며 제 발로 뛰쳐나갈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돈이니 형편이니 아쉽다고 징징거리는 꼴이 우습다는 걸. 지금까지의 레이스 동안 내 친구가 마냥 즐겁고 풍족한 시간을 보낸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 할당된 짐을 이고 지면서 달리고 있으니. 나보다 앞에서 부지런히 달려 나가고 있는 그녀의 속사정을 찬찬히 뜯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마냥 겉만 보고 부러워하는 내 모습을 부끄러이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절망적인 포인트는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현실의 무시무시한 관성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 고작이라 해야 할지, 벌써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1년 반이 조금 지난 지금 나의 형편은 회사생활을 했을 때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려나. 사업 자체에서 특정할 수 있는 어떠한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라기보다는 다음 프로젝트를 언제 할 수 있을지, 한다면 자금이 언제 회사 통장에 얼마만큼 꽂힐지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사와 운명공동체의 관계에 놓여있는 개인의 수입마저 일정치 못하게 된 탓이다. 흔한 금융 상품에서 고지의 의무가 있는 것처럼 사업의 세계에서 필수라 할 수 있는 인지의 의무를 다하고 이 일에 뛰어든 상태임에도 이 불안정한 생활이 언제쯤 안정화될 수 있을까, 자꾸만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짚고 싶은 건 생각이 많은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한 나머지 부정적인 결말까지 혼자 갔다가 와버린다는 점이다. 그렇게 계속 해답도 없는 질문에 대한 최악의 경우를 다채롭게 상상하고 있던 찰나에 간절히 수주하길 바랐던 프로젝트에서 몇 번씩이나 미끄러지자 인생이 참 얄궂고 고달프다, 싶었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 의심이 싹트는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의 상황에 있었다면 진작에 뾰족한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자기 계발 서적에 나올법한 그런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그러다가 또 다른 의심이 나를 향한다.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이 난관을 깰 만큼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게 맞나? 아니, 애초에 노력을 하고 있긴 한 건가? 한바탕 휘몰아친 초조함이 이어서 몰고 오는 소리 없는 자책감에 허우적거리다가 어찌할지 몰라 흐릿한 눈으로 술병을 잡아든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툭하면 이 회사, 저 회사로 도망 다닐 궁리만 했는데 공동대표님과 함께 동업을 시작하고서부터는 도망갈 곳이 딱히 없어져버렸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자각하게 되었다. 같이 해보겠다고 다짐한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끝을 볼 때까지는 함께 해야 하니까. 나의 뇌와 마음은 이성적인 사고의 흐름을 잘 따라가다가 에잇,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기억 저편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겠다! 라는 꽤나 감정적인 결론을 내려버린 것 같다. 이미 일에서, 관계에서, 스스로에게서 옴팡 두드려 맞아 멍 투성이가 되어버린 마음을 다시 꾸욱 눌러도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녹초가 될 때까지 나는 곧잘 취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반대편에서 또 다른 비난의 돌덩이가 날아와 마음에 새로운 멍을 만든다. 노력해도 모자랄 판국에 술로 시간을 버리다니! 못 봐줄 만큼 한심하군, 쯧.
그렇게 매일 집에 틀어박혀 술에 허덕이며 꼬박 2개월 넘는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몸 어디가 아파서 진통제나 항생제를 먹은 날도, 전날 음주의 여파로 아침에 속을 게워내어도 어김없이 저녁에는 술을 마셨다. 주말부부의 특성상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남편은 모를 일이었으니 우리가 지금 주말부부인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남편을 속이려던 건 아니었지만 내가 술을 이렇게나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를 전하면 묵묵히 버티기 대회에서 1등 할 만큼 평소에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남편에게 걱정을 얹는 꼴이 되어버릴까 봐 나는 웬만하면 술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같이 사는 엄마와 동생이 그만 좀 마시라고 나무라는 날이 너무나도 많았던 건 아직 비밀에 부치고 있다. 이렇게 살다가 죽겠지, 하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불현듯 지금 당장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끈질기게 들러붙는 술 생각으로 갑자기 온 마음이 찝찝해지던 찰나에 어느 한 친구에게서 온 안부인사가 잠시 흐려졌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습관적으로 와인바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천장 형광등의 스위치를 켜는 순간 순식간에 증발해 버릴 것만 같은 낭만적인 무드가 아직은 아무도 스위치를 건드리지 않은 탓에 적당히 따스한 조명의 품 안에서 그윽하게 우리를 감쌌다.
"나 말이야. 맨 정신으로 살 수가 없어."
떠올려보면 그간 퍽 진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 않는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이 친구만큼은 나의 마음을 다 헤아려줄 것만 같다는 생각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진지모드로 일관하는 내 모습이 꽤나 낯설었을 법도 한데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그녀의 맑고 또렷한 눈동자에서 왠지 모를 애정의 온도가 느껴졌다. 그게 너무 포근했던 탓일까 우스갯소리로 시작했던 인사말이 2차로 장소를 옮기면서 꽤나 절절한 신세한탄으로 이어졌고 그러던 찰나에 친구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면 말이야… 우리 아직 어려."
시원한 백합탕을 떠먹으며 소주를 마시려고 잔을 들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얼어붙었다. 교육 프로그램에 흔히 나오는 "어머, 물이 반이나 남아있네?"와 "어휴, 물이 반밖에 없네"의 대립각이 생각났다. 돌이켜보면 나는 30대에 들어서고부터 내가 아직 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유유히 헤엄쳐 다닐 여지를 눈곱만큼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숨 쉬는 매 순간마다 조만간 내 인생에 어떠한 형태로든 나름의 엔딩이 찾아올 것이고 그 엔딩을 남들도 인정할 만큼의 해피엔딩으로 멋들어지게 장식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과 초조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해피"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는 기준치는 꽤나 복잡하고 깐깐한 편에 속하는 듯했다.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오는 생각들을 제치고 일단 지금의 술자리에서 친구와의 대립각을 살포시 내려놓기 위해 반은 거짓일지도 모를 대답을 전했다.
"맞아, 우리 어리지."
이 말을 내뱉고서 혼자 속으로 곱씹고 소화까지 마치느라 4차까지 시간을 써버렸다. 1차에서 와인, 2차에서 소주, 3차에서 맥주, 4차에서 위스키. 술도 잘 마시는 친구가 웬일로 서서히 취해가는 게 훤히 보였는데 나는 그동안 매일 마신 술로 인한 해장술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라도 한 건지 주종이 바뀌고 도수가 바뀌는 동안 취할 기미 없이 그저 생각에 파도가 쳤다. 방향을 정하지 않은 듯 그저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던 파도가 어느덧 일정한 속도와 간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시점에서야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집착이 나를 더 잘 살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이러니를 결론으로 내렸다. 마음이 조금 개운해졌다. 어쩐지 위스키가 유난히 달더라니.
안주로 함께 먹은 블루치즈맛 젤라토 탓인지 유난히 달게 느껴졌던 위스키 탓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달달한 향을 마음에 잔뜩 묻히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이후,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뿐해졌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비슷한 통증을 느끼며 살아가는 친구를 만나 위로를 받은 건지 아니면 잔뜩 만취해서는 내 젤라토가 자기 거보다 맛있다고 감탄하며 열심히 뺏어먹고선 다음 날 젤라토를 먹은 사실조차 잊어먹은 친구가 마냥 귀여워서였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직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한 번뿐인 인생을 더 잘 살아내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의 삶을 향한 순도 높은 에너지를 조금은 어여쁘게 보게 된 것도 같다. 또 한 번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젤라토 도둑을 만나고서부터 이상하게 과음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빼앗긴 젤라토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이 또한 알 수가 없다. 언제까지 이 상태가 유지될지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