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걸까
"뭐 해?"
"시원하이~ 맥주 한 캔 낭낭하게 즐기는 중이야"
주중이 되면 어찌할 도리 없이 떨어져 지내는 남편이 나에게 간혹 지금 뭐 하고 있냐고 톡을 할 때가 있는데 하필 열에 아홉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순간이었다. 괜히 찔려 버린 나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혹은 "오늘 고생한 나한테 상을 주고 싶어서"와 같이 나름 합리적으로 들리는 명분을 핑계랍시고 갖다 붙이면서 "가볍게" 한 잔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누가 봐도 멋쩍어 보이는 허접한 말투를 섞어 대답하곤 했다. 이렇게 찔려하면서도 술잔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다니. 아무래도 내가 술을 통해 엄청난 심리적 보상을 받고 있는 듯하다. 그 보상을 굳이 말로 형용해 보자면 "해방감"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길래 이토록 술을 마셔대는 걸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날의 첫 번째 잔부터 슬며시 피어오르는 이런 생각의 불씨들은 빈 술병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마치 산소가 충분치 못해 얇은 연기 한 줄 남기고 꺼져버리는 불처럼 불현듯 자취를 감추기 마련이었다. 속절없이 흘러들어오는 알코올 때문에 뇌세포의 계기판마저 침수된 탓이다. 뇌세포의 활동성이 비교적 멀쩡한 지금 이 순간 그간 멈춰있던 생각의 회로를 돌려보자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역할 감각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아내로서, 여자로서, 대표로서, 경제주체로서, 딸로서, 어른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듯해서 선제적으로 정정하자면 이 역할들을 내 손에서 놓아버리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단지 이 역할들로 존재함에 있어 '마땅히 이래야지'라며 나에게 암묵적인 룰을 쥐어주려는 누군가의 기대 혹은 참견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을 뿐이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 말하는 "누군가"가 나 스스로일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방금에서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나를 옥죄는 누군가가 불쑥 등장하기도 전에 미리 손을 써버리려는 심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 기준에서 각각의 역할에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어떠한 모습들을 멋대로 정하고서 이 기댓값에 못 미치는 현실 속 나의 기본값을 두고 스스로 실망해 대는 것이겠지. 참, 복잡하게도 산다, 나란 사람은.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공약을 남편에게 내걸었었다. 사업을 통해 돈을 왕창 많이 벌어서 남편이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서 집에서 탱자탱자 놀 수 있도록 만들어주겠다는 공약이었다. 언뜻 보면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같지만 주체적인 아내이자 성공한 대표,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경제주체로서 버젓이 살고 싶다는 그간의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똘똘 모아 만든 꿈이었다. 처음엔 남편도 나의 환상에 맞장구를 쳐주고 열정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데에 동참해 주었다. 하지만 너무 먼 꿈에 대한 지독한 갈망은 옆에 있는 사람을 먼저 지치게 만드는 법이었다. 종종 남편의 지친 기색을 알아차릴 때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좁아진 어깨만큼이나 안타까운 나의 열패감은 요즘 들어 현재진행형으로 완전히 굳어져버렸다. 열패감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초등학생 때 다니던 영어학원에서 선생님이 출석체크를 하다가 내 이름을 가지고 놀렸던 일이 떠오른다.
"진소라? 이긴 소라면 좋았을 텐데. 하하!"
열 살 남짓했던 나는 선생님이 개그랍시고 던진 돌에 크게 맞아버렸다.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나의 인생이 이름에서부터 져버렸다는 사실에 혼자 퍽 심란해져서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는 것으로 결말이 나 있는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려나, 그 어린 나이에 별 고민을 다 했던 것도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인생을 좀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매일같이 찾아오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나는 위로에는 위로주지! 하고 혼자 술을 걸쳤다.
술은 뚜껑을 열기 위해 손을 갖다 대는 순간부터 설렘을 불어넣어 준다. 나를 위로하는 신성한 의식의 시작이니 말이다. 그렇게 한 모금을 목 뒤편으로 시원하게 넘겨버리면 한데 뭉쳐있던 이름 모를 감정들이 펑하고 터져서 사방팔방에 흔적을 튀기는 기분이 든다. 성인이어야만 누릴 수 있는 음주, 그 일탈 행위에서 오는 묘한 쾌감과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며 등을 토닥여주는 듯한 따스한 위로감. 그리고 무엇보다 새까만 아스팔트에 껌딱지처럼 납작 붙어있던 나의 기분이 미세먼지 같은 고민들을 헤집고 새파란 하늘 위 몽글몽글한 구름 사이로 날아오른다. 부끄럽지만 이 순간 나는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마치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갈등이 조만간 만날 귀인을 통해서든 어떠한 대단한 변곡점을 통해서든 조만간 다 해결되고 내 인생도 기승전결의 결로 좋게 좋게 마무리될 것만 같다. 그렇게 자기 위로이자 일시적인 현실 도피랍시고 술을 욱여넣다 보면 어느 순간 대기권에 있던 내 기분이 아스팔트가 있던 지층을 뚫고 저 아래 흙탕물 같은 지하수를 첨벙거리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술에 의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콩알만 한 걱정과 자책감이 술을 마시는 내내 몸집을 키워 나를 집어삼키는 순간이 온 것이다.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처럼.
가오나시가 그간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던 모든 것들을 토해내고 나서야 원래의 성정으로 돌아온 것처럼 자책하는 나의 자아 역시 모든 알코올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완전히 괜찮은 상태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술에 집어삼켜졌다는 사실이 기억에 새겨져 있는 한. 웃긴 건 그 기억을 지워내고 싶어서, 그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를 다시 한번 해방시키고 싶어서 그렇게 또 술을 마신다는 점이다. 하지만 술을 통해 얻는 해방감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해방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진짜 해방되었다면 술이 필요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쯤 되면 정말 궁금해진다. 언제쯤 나는 진짜 해방을 맞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