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 게 아닌 걸 아는데도 위로받지 못하는 마음의 한계
언제부터인가 길을 걷다가 한의원을 발견하면 앞문이든 창문이든 어딘가에 하나쯤 붙어있는 배너 광고에 눈길이 갔다. “만성피로, 소화불량, 수면장애, 비만”. 한 번은 이 카피들을 보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 진짜 뻥 안치고 저거 다 해당되는데. 한의원 한번 가야 되나?”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려고 부릉부릉 시동을 거는 나를 보고 남편은 딱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만 눈을 내리 깔고 대답했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저거 현대인 대표 질환이야.”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처럼 마음이 고장 나는 것도 대부분의 현대인이 경험하는 일인 걸까? 밥 먹으면 똥 싸는 인간들의 생리현상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나 혼자 그렇게나 부지런히 생색내고 호들갑을 떨어온 걸까, 한껏 머쓱해져서는 한의원에서 멀어지려고 재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몇 년 전에 사람들이 “코로나가 심할 때”라고 입을 모아 말하던 시기가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그 시기에 나도 코로나에 걸려 며칠 푹 고생을 했는데 그 당시 참 이상한 마음이 들었던 게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다음 세대가 볼 교과서에 실릴 만큼 뉴스에서 무시무시하게 떠들어대는 거대 바이러스에 붙잡혀버렸다니 역시 난 운이 나쁘군, 하면서도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바이러스에 같은 시기에 감염되었다고 생각하니 나만 그런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하는 묘한 안도감이 드는 것이었다. 마치 물귀신처럼 내가 아프니까 너도 아파야지! 하는 마음이었다기보다는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들 하니 내 상태가 그렇게나 심각한 건 아니라는 비이성적인 결론을 혼자 도출했던 것 같다. 그러니 목구멍에 철조망을 친 것처럼 따끔거리던 감각도 전혀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 관한 병은 같은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화장실에 있다가, 버스를 타다가 등등. 마음의 발작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불시에 찾아온다. 불현듯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조여 오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순간. 온몸에 “기”라고 하는 것이 다 빠져나가고 간신히 뼈대만 남겨진 듯한 공허한 느낌. 정신과 선생님은 이게 공황발작이라고 일러주셨다. 이건 그나마 간간이 찾아오는데 이에 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겪는 증상이 있다. 셋 중 하나다. 첫째는 자제력을 잃고 눈이 돌아 버려 술을 닥치는 대로 집어 마시는 증상. 둘째는 스코빌지수가 남다른 배달음식을 배부르다 못해 토하기 직전까지 꾸역꾸역 먹는 증상. 셋째는 그 어떠한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동태눈깔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가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잠으로 흘려보내는 증상. 어쩌면 나는 현실에서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 원인을 똑바로 마주 보지 않고 술로, 음식으로, 잠으로 도망가는 것에 몸을 맡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이런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보면 차고 넘친다고,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 한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게 내가 봐도 참 요상스럽다. 위로가 될 법도 한데 말이다.
이쯤 돼서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면 내가 현재 겪고 있는 증상을 스스로 특수하다고 해야 할까, 특별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범상치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생각해도 스스로 꽤나 못마땅하지만 용기 내어 고백해 보자면 나는 임산부나 노약자처럼 마음질환을 앓고 있는 내가 적절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여기에는 에러창이 떴을 때 컴퓨터의 본체를 툭툭 쳐대면 다시 된다더라, 하는 무심한 마음으로 내 마음을 누군가 건들지 않기를 바라는 경계심 높은 마음이 깃들어있다. 아무튼 돌이켜보면 나는 마음의 병을 인질 삼아 세상의 무언가를 마음 편히 누리려는 못된 심보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술과 자극적인 음식과 잠도 여기서 말하는 “무언가”에 해당될 것이다. 내가 나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나쁜 건 아니겠지만 그 마음이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내가 행했던 모든 행동에 대한 면죄부가 되고 있었던 것만 같다. 으, 아무리 내 마음이라지만 진짜 최악이다.
최근에 이틀 정도 술을 쉬었다. 수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시다가 딱 이틀 마시지 않았을 뿐인데 그 영향은 대단했다. 불안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정신을 마취하지 않으니 하루 종일 불안감과 긴장감이 온몸의 혈관을 통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상태가 하도 낯설어서 진료날도 아닌데 불쑥 정신과에 들렀다. 선생님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엄청난 불신의 눈초리로 술에 대한 금단증상인 것 같은데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동안 이렇게나 술을 많이 드시고 계셨어요? 라고 덧붙이셨다. 서로 민망해질까 봐 진실을 은폐해 오던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렇게 많이는 아니에요 하하, 라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을 다섯 개쯤 먹고 들통난 어린아이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약의 용량을 줄여오고 있었던 나는 직전에 처방받던 용량으로 다시 원복 하고서 다시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벌써 5년째인 지금, 나의 마음은 어떤 상태인 걸까? 많이 호전된 걸까, 여전히 제자리걸음일까. 그도 아니면 일보 후퇴한 걸까. 답을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다행인 사실이 있다면 내가 그래, 지금보다는 더 사람답게 살아야지, 하면서 자꾸만 지키지 못할 다짐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그럼 오늘 정도는 한 잔 해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