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도 씹어먹는 나이에 이 정도는 마셔줘야지?

사회생활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by 건빵진소라

첫 사회생활을 다들 그럴 테다. 마치 정글에서 살아남는 것처럼 하루하루 생존을 위협받고 머리와 마음이 성한 곳이 없는 그런 것.

신입 때 사회생활의 쓴맛에 씁쓸하게 절여지고 있던 중 늘 웃고 있는 같은 팀 차장님께서 어느 날 나에게 불쑥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제목이 <도망쳐도 괜찮아>였나. 차장님은 책을 건네시면서 도망치는 게 나쁜 것처럼 다들 말하는데 가끔은 도망쳐야 될 때도 있어, 라고 말씀하셨다. 정말이지 뜨끔했다. 차장님과 앉은자리가 썩 가까운 편도 아니었고 둘이서 따로 차를 마시거나 술자리를 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편도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투명했던 걸까?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대낮부터 얼굴이 벌게졌던 것 같다. 또 다른 여자 차장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뚝뚝한 인상을 폴폴 풍기시면서도 나한테 만큼은 낯간지러움을 무릅쓰고 “이쁜아!”라고 부르셨다. 예전에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봤었는데 물은 예쁘다, 예쁘다 하면 진짜 예쁜 결정체를 보여주고 못났다, 못났다 하면 진짜 못난 결정체를 보여준다고 했다. 차장님이 나를 계속 그렇게 부르시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몸속 수분도 그 말을 알아들어서 반응을 한 건지 모두들 나를 바라볼 때 눈에서 애정이 느껴졌다. 게다가 팀에서 가장 새침하고 까탈스러운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왠지 모르게 항상 화가 나 보이는 어떤 여자 대리님은 내가 회식자리에서 나처럼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고기를 어설프게 자르고 뒤집고 다른 사람들에게 양껏 양보하고 있을 때면 내 손에 있던 집게와 가위를 빼앗아갔다. “소라야, 고기는 그렇게 구우면 안 돼”라고 일종의 명분을 만들면서 나 대신 고기를 노릇노릇 구워서 아직 한 술도 뜨지 못해 공기 모양 그대로 굳어가고 있던 내 밥 위에 잘 구워진 고기를 얹어주셨다. 어쩌면 팀장님을 제외한 같은 팀 사람들은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지근거리로 들어와 막내인 나를 애틋한 마음으로 보살피고 행여나 내 마음이 너무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쉬운 건 신기할 정도로 매일 서로 다른 퀘스트가 눈앞에 우후죽순 떨어지는 마당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차릴만한 여유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공채 출신에 회사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신입사원이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콤플렉스라는 마음의 그림자를 가진 상사를 모시며 바람 잘 날이 없었다고 느낀 것을 단순히 주관적 소회라고만 단정 짓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난 적이 단 한순간도 없으니 말이다. 하루는 이랬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건지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바로 집으로 직행해서 얌전히 휴식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참이었다. 술쟁이가 이런 계획을 세운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인데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팀장님께서 곧 퇴근이니 시간 되는 팀원들끼리 함께 모여 술을 한잔 하자고 하셨다. 평소에 술을 빼지 않는 편이니 오늘 하루쯤은 쉬어도 그러려니 하시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한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늘은 술을 마시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팀장님이 표독스럽게(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에서 빚어진 표현이다) 말씀하셨다.

“내가 신입 때는 돌도 씹어먹었는데? 컨디션이 안 좋다고?”

강요로 끌려간 술자리가 그토록 처절하고 고통스럽다는 걸 깨달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팀장님은 그날 유독 기분이 좋으셨다. 맥주잔에 손수 소맥을 타주시더니 컨디션 안 좋을 땐 이게 보약이라고 했던가, 뭐 보나 마나 비슷한 말을 하셨을 테다. 아무튼 자꾸만 술을 마시라고 하셨는데 화룡점정은 그다음에 있었다.

“자! 파도타기 시작!“

느닷없이 파도타기가 시작되었다. 대학교도 아닌데 뭔 파도타기냐, 내 눈은 또 한 번 짜게 식었다. 다들 나처럼 썩 달갑지 않은 표정을 애써 숨기며 쭈뼛거리다가 잔을 하나 둘 비우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내 차례였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생각 없이 즐.. 즐기자, 하고 술을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공짜술이라지만 오늘은 쓰다 써. 그러자 팀장님이 신이 나서 외치셨다.

“그럼 이제 마지막 사람부터 다시 반대로 파도타기!”

즐. 아니 즐기자는 다짐을 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에라 모르겠다, 그날 나는 팀장님이 신나게 말아주신 몇 잔의 소맥을 원샷으로 갈기며 내 인생에서 손에 꼽는 만취의 밤을 기록했다. 내 입술은 평소에 할머니 주름처럼 쪼글쪼글하고 건조한 편인데 이 날 밤만큼은 레모네이드색 소맥이 입술에 남아 광을 더해주고 있었다. 술냄새는 덤이었지만.

타임랩스가 지나간 듯 눈을 감았다 떠보니 다음 날 새벽 집이었다. 불을 켜고 잤던가, 바지를 벗고 잤던가. 아무튼 기록적인 만취의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다웠다. 아빠와 살고 있었던 때였는데 누굴 보고 배운 건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꾀죄죄한 몰골로 기어 나오자 아빠가 내 딸 답다는 표정으로 철없게 웃으면서 어제의 일을 자초지종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사실 나는 팀장님이 말도 안 되는 파도타기를 명분으로 나에게 연속으로 술을 먹인 것을 두고 파르르 마음을 떨었던 것이다. 이 수모를 갚아주리, 술 마시라고 그렇게나 권하셨으니 팀장님의 소원을 성취해 드리고자 그때부터 술을 인정사정없이 마셔제껴댔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필름은 애당초 끊겨버렸다. 2차는 회사 근처 야외 포장마차였는데 다들 혼란한 틈을 타서 나는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나의 분신과도 같았던 크로스백과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었던 핸드폰과 지갑 세트를 나비의 허물처럼 남겨둔 채 훨훨 날라버린 것이다. 추정컨대 나는 그날 밤 지나가던 택시를 붙잡고 취기로 흐려진 기억을 더듬어 집 주소를 댔던 것 같다. 아빠의 말에 따르면 새벽 2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고 한다. 택시기사님의 꿋꿋한 인내심 덕분에 아파트 앞에 안전하게 당도한 만취 모드의 내가 그제야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힘겨운 의사소통 끝에 택시기사님께 핸드폰을 빌려 아빠한테 전화를 건 것이다. 젊은 딸이 여태 귀가하지 않은 밤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재빨리 받은 아빠는 카드를 들고 당장 1층으로 튀어 내려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아빠는 졸지에 할증이 붙은 비싼 택시값을 내어주고 술 취한 아저씨 냄새가 나는 꼬질한 딸을 인계받았다고 한다. 아빠는 내 손에 핸드폰과 가방이 들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때 같은 팀의 여자 대리님이 전화를 받았는데 글쎄 그 대리님이 소라 씨가 다른 팀원들과 달리 술을 많이 마시곤 혼자 취해서 집에 간 것 같다며 소지품은 자기가 잘 맡아둘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고 한다. 즐. 아니 즐거운 술자리로 은폐하려는 누군가의 계략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술이 깨지도 않은 채로 출근을 한 나는 그날 이상하리만치 당당했다. 누군가 보기엔 이상했을 테다. 소지품 하나 없이 허전한 몸뚱이로 눈이 반쯤 감긴 채 버스를 타서는 유리창에 머리를 쿵쾅 박으면서 조느라고 회사를 지나쳐 지각을 할 뻔했던 내가 아주 당당하게 출근을 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출근하자마자 나는 반 정도는 이긴 것 같은 마음으로 팀장님의 자리로 갔다. 행동은 예의 상 쭈뼛거렸지만 생각은 평온했다. 팀장님이 그렇게나 많이 먹이셔서 이 사달이 났으니 뭐, 하실 말씀 없으시겠죠? 라고 당돌하게 몰아 세우고 싶은 마음이 목젖 뒤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으나 나는 끝내 그 말을 삼켰다. 그럼, 여기는 회사인데 예의를 지켜야지.

“어제 갑자기 사라졌던데, 집에는 잘 갔어?”

안 마시겠다는 신입에게 술을 퍼붓다가 그 신입이 뉴스에 나올만한 이슈 없이 정상 출근했으니 그녀도 내심 안심을 하면서도 조금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네, 잘 들어갔습니다.”

나는 또렷하게 말했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나에게 딱히 잔소리라 할만한 말을 내뱉지 않았다. 나는 약간의 쾌감과 알싸한 숙취를 골고루 느끼면서 내가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끼는 하루를 보냈다. 그날 이후로 팀장님은 나에게 술을 억지로 먹이지 않았다. 나는 마치 기선제압으로 상대를 기죽인 것 같이 속으로 조용히 기뻐했다. 사실은 내가 너무 순순히 제압당해서 상대가 쫄은 건데 말이다.

“돌도 씹어먹는 나이인데“라던 팀장님의 말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머릿속에서 울린다. 누군가의 말대로 돌도 씹어먹는 나이였던 내가 사실은 두부도 씹지 못하는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이유였을지 아니면 원래 인복이 있는 편인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우연히 주변에 좋은 선배들이 많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나는 운 좋게 용기와 애정과 다정을 선물 받았다. 그리고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내가 팀장님으로부터 도망친 건 그 선물에 대한 예의였을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아껴주는 만큼 결국 나도 나에 대한 애정을 키우게 되었고 나 스스로에게 다정한 일상을 되찾아주고 싶어 용기를 내었으니 말이다. 문득 옛 직장 선배들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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