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도 술을 놓을 수 없어

일터에서의 발칙한 음주 행태

by 건빵진소라

"당사에서 대행사 선정을 위한 경쟁입찰을 진행합니다. 입찰 참여사께서는 유의사항을 반드시 숙지하신 후, 마감일 이전에 제안서 제출을 완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쟁 프레젠테이션, 일명 경쟁 PT. 브랜드사에서 해당 브랜드에 대한 광고 캠페인 업무를 수행할 적합한 대행사를 선정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굴지의 대기업 소속 광고대행사들은 아무래도 같은 식구라 할 수 있는 그 이름 또한 잘 알려진 계열사들의 광고 물량을 일부 보장받는 데에 비해 우리 같은 신생 혹은 독립대행사의 경우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듯이 프로젝트를 잘 수주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별도의 경쟁 입찰 없이 계약을 진행하는 감사한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예산이 상대적으로 적고 단기 계약인 경우가 많다 보니 대행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경쟁 PT에 아예 참여하지 않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인바이트 받는 모든 경쟁 PT를 하나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경우도 드물다. 아직은 광고가 사람이 하는 일에 속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이 경기에 뛰어들어도 될 판이 맞는지 판단해야 하기도 하거니와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체력 안배가 중요한 법이니 말이다.

사실 나에게는 작은 비밀이 하나 있는데 이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고 그동안 나름대로 여러 차례 경쟁 PT에 참여했음에도 여전히 경쟁 PT를 월드컵이나 올림픽쯤 되는 국가적 이벤트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경쟁 PT에서 떨어지면 말 그대로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원통해한다. 그런 경쟁 PT에서 내가 이긴다? 그땐 그야말로 나라를 구하는 격이다. 같은 회사에서 진행된 PT라 하더라도 점수를 매기는 기준이 건마다 다르고 그 시점에 의사결정 하는 분들의 취향이나 성향이 어떤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기도 하니 기본적으로 실력도 있어야겠지만 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뽑힐 놈은 똥을 싸도 뽑힐 것이고 뽑히지 않을 놈은 꽃밭을 째로 들고 와도 떨어진다는 진리를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뭐, 나만의 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런 진실을 알면서도 나는 경쟁 PT를 비롯해 내 이름을 걸고 나가는 모든 제안 건들에 대해 마치 목숨까지 거는 것처럼 비장하게 임했다. 좋게 말하면 승부욕일 테고 나쁘게 말하면 강박일 테다. 깔끔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광고주들에게 인정받는 제안을 하고 싶다는 이 마음을. 문제는 손 쓸 틈도 없이 커져버리는 이 마음을 맨 정신에 마주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처음에는 아이데이션 핑계를 댔다. 좋은 아이디어는 맨 정신이 아닐 때 더 잘 나온다고 기세등등하게 외치며 공동대표님의 눈앞에서 맥주 4캔을 야무지게 집어서는 사무실에 품고 왔다. 그 와중에 냉장고에 미리 충분히 칠링 해둔 경우에는 어떤 제품이 맛있고 이렇게 편의점 냉장고에서 갑자기 꺼내서 온도가 살짝 올라간 상태로 마셨을 땐 어떤 제품이 맛있더라, 라는 경솔한 감상평을 계산대에서 영수증 버릴 때 같이 놓고 왔어야 했는데. "에이 이 정도로 뭘 취해!"라며 위풍당당하게 외치며 새로 딴 술을 따르는, 그러면서 곁눈질로 힐끔힐끔 할머니 눈치를 보느라 술을 옆으로 흘려버리는 귀여운 할아버지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의 난 안 귀엽겠지. 왜냐면.

"아 진짜 주정뱅이랑 일 못해먹겠네."

나는 대표이고 지금은 일터인데 술 마시고 살짝 꼬여버린 혀로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했다가 공동대표님의 짜증을 사버렸으니 말이다. 그 뒤로 나는 공동대표님과 회의하지 않는 날에만 술을 마시기로 스스로 머리를 썼다. 왜 이렇게나 일하면서 술을 마시려고 안달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술로 인해 무뎌진 현실감각을 돋보기 삼아 그동안 내가 정자세에서 똑바로만 바라왔던 것들을 이런저런 각도에서 비틀어서 바라보려는 발악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그렇게 발견할 수 있는 종류의 인사이트들이 분명 존재한다. 몇 번 접은 종이를 이름만 들어도 탄생의 여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만 같은 핑킹가위로 아무렇게나 잘랐을 때 지금껏 듣도 보도 못했거니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 펼쳐지는 것처럼. 그럴 때면 맥주라는 녀석이 톡톡히 제 값을 했으니 용서해 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맥주가 잘못한 게 아닌데 논리가 이상하다.)

제안 준비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간 갈고닦은 끼를 마음껏 내보여도 되는 꿈의 무대에 오르기 전 살짝 긴장을 풀고 싶어서랄까. 구릿빛으로 태닝 된 얼굴로 호탕하게 웃는 아저씨들이 대문짝만 하게 썸네일로 박혀있는 7~80년대 미국 올드락 플레이리스트를 크게 틀어놓고 사무실에서 맥주를 살짝쿵 마시면 세상을 대단히 크게 바꾸거나 세상 사람들을 한 번쯤 피식하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올 것만 같다. (뇌 속의 이성적 사고 담당자는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런 감각을 가지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노트에 끄적거리다 보면 어느새 아이디어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훨씬 더 풍성해지고 며칠 전까지 그저 단어 하나에 불과했던 이 생각의 단초가 캠페인의 핵심 아이디어로 변모하는 과정을 마주할 때도 있다. 긴장을 푸는 게 이래서 중요하다니까. (공동대표님이 이 글을 보셔야 할 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디어가 필요한 모든 순간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갑자기 공동대표님이 이 글을 보시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목격자라고 나설지도 모른다.) 술은 간혹 아이디어의 스위치 같은 기능을 할 뿐이다. 일단 켜지고 나면 그 뒤엔 내 안의 감성적 사고가 알아서 일처리를 할 테다. 마치 조도를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컨트롤러 달린 조명처럼 어딘가에서 은은한 빛을 내며 나의 아이디어에 음영과 깊이를 더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물론 내가 일터에서 마시는 술을 미화하고 있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한다. 사실 일터에서 술의 부작용을 경험해 본 적도 있다. 술을 마시면 생체의 메커니즘에 따라 나는 기억을 잘 못하게 된다. 방금 막 말하려고 했던 것도 까먹고 막 생각났던 것도 까먹고 막 하려고 했던 것도 까먹고. 또 뭐가 있었더라. 아! 그거 진짜 괜찮았는데, 했던 아이디어가 순식간에 기억 저편의 소각장으로 날아가버려 얄짤없이 타버리고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잿덩이만 덩그러니 반납되는 참담한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러면 정말 곤란한데 말이다.

일터에서 한 캔 가볍게 마시려고 했던 술이 하루의 끝에서 돌아봤을 때 비워버린 캔의 수를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곤 깨닫는다. 오늘도 졌구나. 그리고선 문득 낯설지 않은 의문이 찾아온다. 나라는 사람은 왜 이렇게 유별난 걸까. 광고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나처럼 술을 먹지 않으면 전략을 구상하지 못한다거나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누구보다 큰 사명감을 느끼는 이 일에 왜 굳이 술을 개입시키는 걸까. 지금까지 수도 없이 술에 져온 내가 하는 말이다 보니 영 못 미덥겠지만 사실은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큰데 막상 내가 만드는 결과물이 그 마음의 크기에 대볼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초라할까 봐 마냥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슬픈 상상이 내 안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 슬슬 술이 당기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술은 내가 만들어낸 슬픈 상상을 잠시 잠재워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무언가가 걱정이 되긴 되었는지 미워할 수 없는 그 녀석과 잠깐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불현듯 나는 무언가를 깨달아버렸다. 이렇게나 술과 정서적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어서 깨달음을 얻은 건지 어쩐 지는 알 수 없다. 어찌 됐든 나는 온 마음으로 깨달았다. 뭐든 적당해도 혹은 적당하지 않아도, 그냥 괜찮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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