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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Sep 10. 2015

갈라파고스에서 취업, 해봤어요? @Ecuador

6개월 중남미 여행_70일째: 불법취업 그리고 오피스 치정극

본래 나의 여행 계획에는 갈라파고스가 없었다. 왜냐하면 여행 오기 전에 찾아본 갈라파고스는 매우매우매우매우 비싸기 때문에 돈 많은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해서 아예 갈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미친 듯이 비싸지는 않다. 우리나라보다 싸다. (물론 에콰도르 육지보다야 훨씬 비싸지만) 어쨌거나 나는 에콰도르 키토에서 너무 아파서 여행을 그만둬야 하는 기로에 서기까지 하였으나 스스로 이건 고산병이야! 진단을 내리고는 해발고도가 낮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바다로, 갈라파고스로 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는 왕복항공권 400불과 입도비 100불을 감수하고도 그 비싼 섬, 외로운 거북, 조지 Gorge 가 있는 갈라파고스로 향했다.


갈라파고스 공항에  내리자마자, 탄성이 터져나왔다. 해발 2800m 의 춥고 어두운 키토에서 벗어나 따뜻한,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내 뺨을 스쳐지나 가는 기분, 행복했다.


갈라파고스에서 물개는, 그냥 동네 개다. (물) 개


우선 갈라파고스 섬 중, 가장 번화가인 산타 크루즈 섬으로 향했다. 역시나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지도, 호스텔을 예약하지도 않았으니 이제부터 시작하다! 하고 한숨을 푸욱- 내쉬고 있는데, 새까만 한국여자애가 지나가길래 이때다 싶어 근처 호스텔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자기가 일하는 여행사에 짐을 맡아주겠다며 호스텔을 찾아보라고 했다. 역시나 나는 냉큼 짐을 맡기고 호스텔을 찾았다. 그리고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헉! 우린 서로 블로그에서 얘기를 했던 사이였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콜롬비아에서 강도를 당했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주인공이었던 거다! 세상 좁구나, 정말! 지구 반대편에서 이렇게 만날 줄이야-


나는 그 아이와 친해졌고 그녀가 일하는 여행사에도 자주 놀러 가다 사장님과도 농담 따먹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며칠 후, 그녀는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에콰도르 육지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녀의 송별회 날, 나도 함께 초대가 되어 얘기를 하다 보니 여행사 사장 호르헤 Gorge 가 나에게, 그녀를 이어 일을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왜냐하면 갈라파고스에는 꽤나 많은 한국인 여행객이 있었고, 나머지 여행객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나는 냉큼, 좋다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가 얻는 것은 호르헤 집에서 공짜로 묵을 수 있다는 것과 고정급여는 없지만 판매실적 만큼의 커미션이었다. 사실 나는 돈을 많이 벌 생각 같은 것은 없었고 단지 새롭고 재미 난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갈라파고스에서 공짜로 더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그러나 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고... 여기서 재앙이 생겨나고 만다.


배에 찌를 달아놓고 달리다 보면 참치가 와서 그냥 문다. 배에서 바로 참치회 떠먹음. 


물론 갈라파고스에서 일했던 것은 내 6개월 여행 중 재밌었던 기억 중 하나이다. 더 많은 여행자와 이야기하고, 친구를 만들었다. 또 내가 판매한 데이투어를 다녀와서 정말 좋았다고 얘기해 주는 친구들을 볼 때면, 일을 한다는 것이 즐거울 수 있구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실적이 좋은 판매원은 아니었다. 사실 여행자들을 돕는데 더 관심이 있었지, 판매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왜냐면 난 여행 중이니까- 흐흐흐. 스트레스 받으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싶은 생각 따위 없었다. 길을 물어보면 직접 데려다 주거나, 호스텔을 찾을 때면 친한 호스텔 주인 아저씨께 데려다 주곤 했다. 또, 갈라파고스의 데이투어가 어떠한 수익구조로 흘러가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호르헤는 공짜로(약 7-80 USD) 나를 투어에 보내주기도 했다. 어떤 투어인지 알아야 판매할 수 있다며... 그러나 이것 또한 재앙이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호르헤가 나를 좋아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은 잠시 여기서 조금 어이가 없을 수 있지만, 진짜다. 우선 호르헤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4살 된 딸이 있는 서른셋의 싱글대디이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그녀의 송별회 다음 날 아침, 호르헤는 내가 묵고 있는 호스텔로 찾아왔다. 아침을 사들고서... 사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나는 다른 여직원인 안드레아와 같은 방을 쓸 것이고 이 재미 난 경험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Yes를 하고 만 것이다. 그리곤 짐을 챙겨 호르헤의 집으로 향했다. 안드레아는 1층 침대를, 나는 2층 침대를 사용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나를 위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 윽... 호르헤의 구애가 너무나 부담스러워질 무렵, 또래의 한국 여행객을 만났다. 그들과 친해진 나는 일이 끝나자 마자 그들과 어울려 다니고 한 밤 중에야 호르헤의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그러자 호르헤는 나에게, 왜 집에 일찍 들어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냐며 나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아... 젠장ㅋㅋ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반전이 있었다. 나와 함께 방을 쓰는 안드레아는 스페인어만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친해지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며칠 같은 방을 쓰다 보니 점점 그녀와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 (구글 번역기의 도움이 컸다.) 어느 날 아침, 안드레아와 함께 출근을 하고는 옆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그녀가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카렌(다른 여직원)이 호르헤 전 부인에게 자신 와 호르헤의 관계를 얘기했다며, 나를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려 하는 것이었다. 스페인어를 잘 몰랐던 나는 카렌과 안드레아 사이에 흐르는 냉기만 느꼈을 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호르헤는 카렌과도 스캔들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안드레아와.. 그리고 또 다음으로는 나를 타깃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XXX를 보았나.


갈라파고스의 핫한, 푸른발 부비새 Blue foot Boobie


더 이상의 오피스 치정극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갈라파고스의 다른 섬 산 크리스토발로 향했다. 호르헤 때문에 괜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여행했던 언니가 나에게 그랬다. '이건 너를 위한 여행이야. 하고 싶은 것을 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맞는 말이다. 이 시간들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다. 그래도, 호르헤 덕분에 재미있었다. 흐흐. 가끔 그가 날리던 느끼한 멘트들이 생각난다.


 '집에 가면 너를 위한 선물이 있어, 아주 귀여운 네 살짜리 꼬마를 너에게 줄게. 그녀의 엄마가 되어줘.'

What the hell...


거북이가 너무 많아 징그러울 지경... 


Lonely Gorge 외로운 거북 조지를 보러 갔던 나는, 외로운 싱글 대디 Lonely Gorge 호르헤를 만나고 왔다네~

* 스페인어로는 Gorge 조지를  호르헤라고 읽는다. G를 [h] 로 발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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