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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Sep 02. 2015

#02 유익함에 대한 강박 @Cusco, Peru

여행 97일째: 페루 쿠스코, 드디어 마추픽추

드디어, 여행 97일째. 마추픽추에 갔다. 어제 3시간을 걸어 아구아 깔리엔떼에 도착하고는, 눕자마자 잠이 들었고 제일 먼저 일어났다. 그래 봤자 7시. 새벽부터 가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여유롭게 보고 싶었다, 마추픽추는. 샌드위치 하나씩 물고 일행 남정네들은 마추픽추 입구까지 걸어간다길래 나는 그냥 버스를 타기로 했다. 12불. 진짜 비싸다. 학생 할인도 안된다. 페루 국내 학생만 할인된다나.. 버스를 타고 편하게 먼저 도착해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동생이 도착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ㅋㅋㅋ) 올라갈 때는 그냥 버스 타기를 추천한다. 계단이 많아서 내려가는 건 수월해도 올라오는 건 좀 힘들어 보였다. 함께 간 오빠는 그 큰 배낭을 메고 한 시간 동안 산을 탔으니.. 힘들 만 하지. 바보. 


마추픽추는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 (= 의무감으로 가야 했던 첫 번째 장소) 였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었다. 한 가지 신기했던 점은 마추픽추 내 직원들이 점프샷을 찍지 못하게 제지했던 것이다. 신성한 곳이라 그런가? 점프샷은 찍을 수 없다. 생각해보니 마추픽추에서의 점프샷은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전에 한 독일인이 마추픽추 산을 오르다 실족사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점프하다 발 헛디디면 죽는 거다. 


사실, 마추픽추라는 공간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중요했을 뿐,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뭘까?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함께 간 동생과 이런저런 얘길 하는데, 나보다 어리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살고 있구나.. 나도 그랬었나? 아니, 적어도 이 친구는 나보다 훨씬 이것저것 많이 노력하고 있구나. 나야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되는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많고 정리는 되지 않는, 그저 그렇게 부유하듯이 살고 있는 거 아닐까. 지금 여행하는 이 시간마저 "유익"해야 한다는 강박이 갑자기 나를 덮쳤다. 어쨌거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유익"한 여행으로 탈바꿈할 종자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 6개월 간의 여행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게 전부다. 회사에 출근하고, 일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스트레스받는다며 또 술을 마시고, 끝없는 방황 속에서 헤매던 내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매일 밤, 

오늘 내가 한 일에 스트레스 없이-  고민 없이 잠들고, 

내일에 대한 생각으로 행복해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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