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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Sep 03. 2015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_  로맹가리_ 문학동네_

짧은 독서 경력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천재인 것 같은 작가가 세 명 있다: 아멜리 노통, 페터 회 그리고 로맹가리. 그저 평범한 문장임에도 이상하리만큼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비범한 이야기. 




-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 (...)

- 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13)


법적으로 어른이 되면 나는 아마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비행기를 납치하고 인질극을 벌이고 무언가를 요구하겠지. 그게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쉽지 않은 걸 요구해야지. 진짜 그럴듯한 걸로. (116)


- 하밀 할아버지, 로자 아줌마는 이제 유태인이고 뭐고 할 것도 없어요. 그저 안 아픈 구석이 없는 할머니일 뿐이에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이제 너무 늙어서, 알라신을 생각해줄 처지가 아니잖아요.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생각해줘야 해요. 할아버지가 알라신을 보러 메카까지 갔었으니까 이제는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보러 와야 해요. 여든다섯 살에 뭐가 무서워서 결혼을 못하세요? 

- 우리가 결혼해서 뭘 어쩌겠니?

- 고통을 서로 나눠 가질 수 있잖아요. 젠장, 다들 그러려고 결혼을 하는 거래요. (155)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173)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174)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은 셈이니까. 더 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구역질 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296)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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