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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Sep 05. 2015

타인의 삶을 '구경' 한다는 건 @Bolivia

중남미 여행 109일째: 풍요로운 은광산, 그리고 식민의 역사 

나를 볼리비아의 포토시 Potosi로 이끌었던 것은  '포토시'라는 그림 때문이었다(커버 사진). 에콰도르의 국민 화가라 불리는 과야사민(Oswaldo Guallasamin, 1919~1999)의 미술관에서 였다. 천정 가득 메운 그의 그림은 무섭다 못해 사뭇 섬뜩했다. 단테가 그린 지옥도 이보다는 나았으리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쉽사리 그 그림에서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웅장함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상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포토시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그림을 보고 난 이후, 볼리비아에 가면 우유니는 몰라도 여기는 꼭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토시는 볼리비아의 한 도시로, 그 높이가 무려 해발 4090m 에 이른다. 풍요롭던 포토시는 1546년 광산촌이 세워지고 엄청난 부가 창출되게 된다. 그러나 그 부가, 풍요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세로리코Cerro Rico 광산 입구

공식 기록에 따르면 1556년에서 1783년 사이 세로리코 Cerro  Rico에서 채굴한 순은이 45,000톤에 이른다고 한다. 이 은을 만들기 위해 수천 명의 원주민이 죽었다. 가혹한 노동과 수은 중독 때문이었다. 원주민들이 죽어나자 모자란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약  30,000명의 아프리카 노예가 포토시로 끌려왔다. 이들은 스페인으로 보낼 은화를 만드는 조폐국 Casa de la  Moneda에서 인간 노새로 일했다. 노새 4마리가 쉼 없이 돌려야 하는 은 압착 기계를 스무 명의 아프리카 노예들이 죽어가며 돌렸던 것이다. 왜냐면, 노새는 너무 빨리 죽었기 때문이다. 


포토시는 볼리비아 라파즈보다 훨씬 추웠다. 해발고도가 높아서 일까? 조금만 걸어도 헉헉대며 숨이 찬다. 헉헉대며 언덕을 올라 깎고 깎아서 70 볼 (한화 약 10,000원) 에 신청한 투어를 간다. 우선 여행사에 도착해서 장화를 신고, 옷을 입고 마지막으로 헤드 랜턴까지 착용을 하고 나니 진짜 광산 안에 들어가는구나, 실감이 났다. 갑자기 겁이 났다. 단지 이 광산 안의 인생이 보고 싶어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무서웠다. 들어가지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를 태운 승합차는 어느새 광산 입구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볼리비아 대가족이 함께 투어를 가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그때는 볼리비아의 휴가 기간이었다. 조그만 아이들도 함께 광산에 들어간다고 하니 조금 안심이 되어 들어가기로 했다. 



익숙하지 않은 헤드랜턴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헤드 랜턴이 미끄러지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덥고, 습하고, 답답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앞 사람 뒤꽁무니를 따라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선 광부들이 그 안에서 안전을 기원하면 치르는 의식을 보았다. 그리곤 광산 안을 한 바퀴 돌며 그들이 일하는 모습과 은맥 등을 '구경'했다. 광부들을 만나면, 인사를 하고 관광객이 사온 알코올과 코카잎을 선물한다. 그들은 98%의 알코올을 마시고, 코카잎을 씹는다. 사실, 나는 조금 두려웠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소위 말하는 '막장  인생'을 구경하고, 그 대가로 겨우 1-2천 원짜리 술과 코카잎을 주는 행위에 그들이 기분  나빠할까 봐. 그런데 오히려 그들은 캄캄한 그곳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고맙다며.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나보다 어린 청년들이었는데, 그 캄캄한 곳에서 하루 종일 무거운 돌들을 옮기며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구경하는 나...



내가 포토시 광산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광산 투어를 하는 내내, 나는 그들의 삶을 '구경' 하러 온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자꾸만 나를 잡아 끌었다. 나와는 다른 삶. '구경'한다는 것이 어쩐지 불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TV 브라운관 안의  장면처럼 나와는 상관없는 삶을 '구경'하는 것... TV는 그냥 꺼버리면 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직접 보고 겪으면, 더 이상 그 기억을 꺼버릴 수가 없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우리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을까? 


광산 안에서 약 한 시간을 보내고 났더니 그 탁한 공기와 캄캄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함께한 볼리비아 가족의 아이 아빠는 얼마나 더 머물 거냐며 빨리 나가자고 가이드를 재촉했다. 겨우 한 시간이었을 뿐인데, 게다가 우린 마스크라도 하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 마스크도 없이 몇 시간씩, 혹은  몇십 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떨까. 답답함과 무거운 마음을 얻고 나서야 광산에서 나올 수 있었다. 





- 커버 사진 출처

과야사민 박물관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직접 촬영하지 못했다. 

kkandivantravels.blogspot.com

- 참고 정보

https://ko.wikipedia.org/wiki/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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