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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ya Sep 07. 2015

쿠바의 남자들 @Cuba

6개월 중남미 여행_51일째: 15일 예정이었던 쿠바에서의 51일

6개월의 중남미 여행에서 돌아온지 일주일, 퇴사 도피 여행으로 남미를 강력 추천했던 선배를 만났다. 상수동의 한 술집에서. 6개월 간의 이야기를 정신없이 풀어내고, 술집 사장님까지 합세하여 셋이 여행 이야기로 한창 수다를 떨다 쿠바 얘기가 나왔다. 사장님의 지인이 곧 쿠바에 커플(!) 여행을 가신다고 한다. 내 생각에 커플로 쿠바 여행을 가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 것 같다. 쿠바를 가기 전에 찾아 보았던 책 중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배영옥, 2014, 실천문학사)라는 책이 있었다. 그만큼 쿠바는 매력적인 남녀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나는 쿠바로의 커플 여행을 반대한다. 쿠바를 추억하고 있자니 나에게 예쁘다며(ㅋㅋㅋㅋ) 무수히 말을 걸어왔던 멋진 쿠바 남자들이 생각났다. 흐흐흐. 특히 동양인 여자 혼자 걷고 있으면,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심지어 가게 안에서 유리창을 닦고 있던 한 쿠바 아저씨가 나를 발견하고는 유리창을 마구 두드리며 내게 인사를 하시 기도했다. 골목 길을 걸으면, 집 앞에 어슬렁 거리며 나와 있던 아저씨들은 China Linda (예쁜 중국 아가씨)라고 나를 불러댔다. 처음엔 무섭기도 했지만, 일상이 되다 보니 나중엔 그냥 무시하고 다닐 만했다. 그래도 Coreana Linda (예쁜 한국 아가씨)라고 불렀다면, 대답해줬을지도 모른다. 흥. 


더우니까 저렇게 문 앞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게, 저 아저씨의 즐거움인 듯


 쿠바에 도착한 둘째 날, 배를 타고 말레콘 건너편에 있는 모로 요새를 가기로 했다. 언덕 위의 요새에 올라가면 하바나 시가지와 말레콘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양인 여자애가 신기했는지 앞에서 기다리던 쿠바의 힙스터, 스케이트 보드 청년 중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건다. 그러다 스케이트 보드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나의 눈빛을 알아채고는 스케이트 보드 위에 서는 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한다. 그리곤, 모로 요새의 언덕으로 같이 타러 가잔다. 흐흐. 쿠바 온 둘째 날, 아무것도 모르는데 재밌을 것 같아 따라가기로 한다. 



그런데 배삵이 워낙에 싸서 쿠바 내국인 화폐 쿱 CUP으로만 지불이 가능하다. 외국인 화폐인 쿡 CUC 밖에 없어 우왕좌왕하는 나를 보더니 스케이트 보드 청년들이 대신 요금을 지불하고는 얼른 배에 타란다. 고마워 얘들아! 배에 타니 일행 중 한 명이 준비해 온 스피커로 신나는 음악을 틀고, 싸온 럼을 돌려가며 마시기 시작한다. 나에게도 한 모금 마셔보라길래, 또 냉큼 받아 마신다. 뜨거운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겨우 50원 하는 배에 올라 쿵쿵대는 음악을 들으며 럼을 마신다. 그것도 잘생긴 쿠바 청년들과 함께. 마이애미의 요트 파티 부럽지 않다!!! 그래, 이게 쿠바지! 흐흐. 배에 내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언덕으로 올라간다. 한국 노래를 들어보자는 요청에 하바나의 모로 요새로 올라가는 길에 온갖 한국 댄스곡이 울려 퍼진다. 드디어 언덕에 올라가 보드 타는 법을 배운다. 으악. 난 왕초보인데 상급자 코스에서 배우려니 식은땀이 났다. 손사래를 치며 나는 됐고, 너나 재밌게 타라고 쿠바 친구들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체의 생가로 향했다. 별것 없이 비싸기만 한 생가를 구경하고 나왔는데, 아까 그 친구들이 보드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 내 전화번호를 묻길래 난 전화가 없으니.. 민박 Casa particular 전화번호를 알려주고는, 오늘 저녁에 카우치서핑 친구와 예술공장 Fabrica de Arte이라는 클럽에 가기로 했으니 거기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날 저녁, 그 애는 클럽에 오지 않았고 다음날 나는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그 아이를 다시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하바나 외에도 쿠바 곳곳의 도시마다 매력적인 남자들은 어디에나 있었으니까... ㅋㅋㅋ 

체 게바라 생가에서 퇴근시간, 쿠바 국기 내리는 안전요원. 선글라스가 패션의 완성


하바나 골목에서 그림을 그려 팔던 잘생긴 청년


뜨리니닫, 지나가다 구도가 너무 멋져서... 아저씨가 멋있어서 그런거 아님


맨발로 축구하는 소년들, 너희도 훈훈하게 자라렴.


 불과 몇 주전, 쿠바와 미국의 국교가 정상화되었다. 국교 단절 이후 54년 만이다. 나는 칠레에서 저녁을 먹다가 말레콘에 성조기가 올라가는 모습의 뉴스를 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더 이상 내가 보았던 그 쿠바가 아닌 걸까? 심지어 지난 4월 미국 리서치 업체가 쿠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답변은 80% 에 달했지만,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긍정적 답변은 44% 에 그쳤다고 한다. 내가 만난 쿠바 친구들도 혁명 정부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또한 이미 빌보드 음악을 듣고, 미국 브랜드를 좋아하고 있었다. (2015년 3-4월) 물론 다 짝퉁이지만. 어쨌거나 오바마가 국교 정상화에 대해 언급하기 전부터, 하바나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이미 자본주의와 비슷한 양태를 띠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미국과의 교역이 시작되면 쿠바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사실, 쿠바의 경제체제가 특이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미 여행을 하며 보았던 가난한 나라들과는 그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가난하지만 살만했다. 최소한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나,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는 사람은 없었다. 


 약 두 달간의 쿠바 여행을 끝내고, 남미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하바나로 돌아왔다. 여행에서 사귄 친구의 사촌이 하바나 근교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한다길래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촌이 일하는 학교로 가는 길에 망고가 주렁주렁 열렸길래 아! 망고 맛있겠다! 나도 모르게 감탄했더니, 그럼 망고를 사주겠단다. 그런데, 상점이 아니고 가정집 문을 두드린다. 집 마당에서 따놓은 망고를 판매하는 것이다. 4개에 200원 이던가? 외국인이 개입하는 순간 모든 것의 가격이 올라가지만, 내국인 사이에서 통용되는 물가는 상상 이상으로 낮다. 쿠바인들의 생존 방식은 이런 식이다. 만약 우리처럼 슈퍼에서 대기업이 유통하는 물건을 구입하고 산다면, 한 달 월급이 약 20불인 그네들로서는 절대 살아갈 수가 없다. 대신 집집마다 주력 상품을 만들어 싼 가격에 사고 판다. 내 친구네 집은 집에 있는 닭이 낳은 계란을 팔았고, 옆집에서는 직접 만든 소시지를, 커피 공장에 다니는 뒷집 아저씨는 커피를, 건너편 이웃은 쌀을 팔았다. 소위 말하는 생산 소비 공동체가 이미 정착되었고, 또 매우 효율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20불의 월급으로도 나쁘지 않은 생활 수준이 유지될 수 있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사촌과 내국인들이 자주 가는 식당에 갔다. 밥 그리고 고기 반찬, 콩죽 등 쿠바 특유의 크리올 음식이 약 1달러 정도 한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는 그 친구 또한 한 달에 약 20불(20 쿡)의 월급을 받고 일한다고 한다.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내게 한국에서는 보통 한 달 월급이 얼마냐고 묻는다. 내 월급을 얘기했다간 놀라 자빠질 것 같아 조금 줄여 말한다. 100만 원쯤...? 많이 줄인다고 줄였는데, 너무 깜짝 놀라는 눈치다. 그럼 한국까지 가는 비행기표는 얼마냐고 묻길래, 150만 원쯤...?이라고 했더니 갑자기 한국에 가고 싶다며 떼를 쓴다. 나보고 데려가라며... '마음 같아선 다 데려가고 싶지만 나도 가난해 얘들아..'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내가 가난하다니, 이 친구들에게 할 말이 아닌 것 같아 참는다. 한 달에 20불을 버는 이에게, 약 1000불이라는 금액은 아마 우리에게 '억' 정도의 느낌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그렇게,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꾸역꾸역 먹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머문 숙소는 하루에  25불짜리였다. 






* 현재 환율은 1 USD = 0.9997  CUC이며 간단하게는 1천 원 = 1 USD = 1 CUC (외국인 전용 화폐) = 25 CUP (내국인 전용 화폐) 로 생각하면 쉽다.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미국-쿠바_관계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4/09/0200000000AKR20150409075100009.HTML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4/12/0200000000AKR2015041200175108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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