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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Aug 11. 2021

‘나에게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해야 할 때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

몇 개월 전부터 고민하다 어렵게 잡은 제주도 휴가 일정을 최근에 취소했다. 온 가족이, 특히 두 아이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일정이었다. 뭐든 즐기기가 쉽지 않았던 요즘 짜증 내는 아이들을 여행으로 달래면서 가서 뭘 할까, 가서 뭘 먹을까 하며 설렘을 키웠는데, ‘그냥 갈까?’와 ‘그래도’ 사이에서 고민하다 ‘다음에’로 결정을 내렸다.


아이들을 또다시 달래면서 일상을 돌아본다.  

마스크를 끼지 않았지만,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일상이 당연하고, 마음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었던 여행이 당연하지 않게 된 일상.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하게 된 우리의 일상.


앞으로는 또 무엇이 바뀌게 될까?

앞으로는 무엇이 당연해지고, 무엇이 당연하지 않게 될까?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면 좋을까?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는 여자들이 바지를 입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 때, 치마뿐 아니라 ‘바지'도 '내 옷'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메리'에 관한 이야기다. 여자에게 바지가 당연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요즘 우리의 일상과 닮아 보인다.


아이들에게 그림책 속 바지와 치마를 보여주며 엄마 옷이 어디 있는지 물으니 둘째 아이가 너무도 당연하게 바지를 가리킨다. 아이들에게 바지는 당연히 엄마 옷인데, 아닐 때가 있었으니, 아이가 엄마 옷이라며 '바지'를 가리키던 순간이 변화된 어떤 날의 상징 같은 느낌이 든다.


치마가 불편한 메리. 여자가 바지를 입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한다.


“왜 여자는 바지를 못 입지?"

“남자 옷이잖아.”

“남자 옷이 아니라, ‘내 옷’이에요!’

당당하게 바지를 입고 나간 메리, 이 편한 것을 안 입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예전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메리에게 손가락질하고, 고함을 치고, 계란을 던지고, 자신들의 아이가 보고 배울까 싶어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안된다고 하는 메리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의 모습을 하나씩 살펴봤다.


왜 메리에게 되는 일이, 사람들에게 안 되는 일이 되었을까, 나에게도 저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 있진 않을까?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고민하는 메리.


내가 잘못한 걸까? 안 되는 일이었던 걸까?"


그 모습에 내 아이들의 모습도 찾는다. 아이도 내 말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적은 없는지.

그런데 메리의 아빠, 보통분이 아니다.


"여자애가 바지 입고 노는 걸 한 번도 못 봐서 그래. 자기가 이해 못하는 건 이상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다름 사람들과 다른 태도를 보여 준 아빠의 말에 박수가 절로 나오려는데 메리 아빠 양말에 눈이 간다. 짝짝이 양말. 보통 분이 아니라는,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아니라는 작가의 숨겨둔 상징인가 보다.


엄마가 되어보니 메리의 입장이 당차고 야무지다 느끼면서도 메리 엄마, 메리 아빠의 입장에 더 마음이 쓰인다. 세상의 반대에 부딪히는 내 아이에게 용기를 주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는 걸까’하며 안타까워하는 마음.


내가 메리 엄마였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었을까?


그다음 날, 또다시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는 메리에게 표정이 없이 손을 흔드는 아빠의 모습에서 그 마음이 전해진다. 얼마나 마음이 무거울까. 얼마나 메리가 걱정스러울까. 하지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해진 일상을 돌아보니 이내 메리의 아빠가 메리에게 손을 흔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납득이 된다. 변화된 세상 속에서, 변화할 세상 속에서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마주하는 이것이 정말 나에게 적합한지, 정말 나에게 괜찮은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이가 내가 한 말에 휘리릭 고민도 않고 대답할 때가 있다. 내 말을 들어주면 편하긴 하니, 그 순간 ‘네’라고 말하는 아이를 그냥 넘기려다가도 순순히 나를 따라오는 아이 표정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이에게 되묻는다.


“엄마 생각은 그런데, 우성이 생각도 그런 거야? 엄마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 말고, 우성이 생각을 듣고 싶어.”


첫째 아이가 가지고 있는 놀이 책에 왼쪽에는 형용사, 오른쪽에는 명사를 나열해 놓고 서로 관련 있는 단어를 연결하라는 미션이 있는 페이지가 있었다. 아이가 해 놓은 줄 긋기를 살펴보니 누가 봐도 당연한 것들로 서로 짝이 ‘잘’ 이어져 있었다.


“용감한 경찰, 길쭉한 오이, 커다란 코끼리, 무서운 마녀……”


어쩌면 일곱 살 아이에게는 당연한 연결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심술이 났다. 줄 긋기를 흩트려보고 싶은 심술.


“우성아, 모든 경찰이 용감할까?”

“그럴걸요?”

“모든 오이가 길쭉해?”

“……”

“코끼리는 모두 클까? 아기 코끼리는?”

아이가 웃는다.


“우리 이거 바꿔보자.”


새롭게 펜을 하나 꺼내 들고 줄 긋기를 다시 했다.


‘길쭉한 경찰, 용감한 코끼리, 무서운 오이, 커다란 마녀……”


하나씩 새롭게 조합할 때마다 아이의 웃음보가 터졌다. 엉뚱한 조합이 재미있었나 보다. ‘내 생각’ 이 담기니 평범했던 줄 긋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었는데 당연하게 써야 하고, 제주도도 쉽게 다녀왔는데 쉽게 갈 수 없게 되고, 예전 엄마들은 바지 입지 못했는데 지금은 매일 바지를 편하게 입고 있는 것처럼 세상은 계속 바뀐다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 주었다. 있는 그대로 의심 없이 ‘그렇구나’,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는 당연한 수용 말고, ‘정말 그런가? 왜?”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모난 사고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전했다.


“모두에게 맞는 일이 나에게는 아닐 수도 있어. 엄마 아빠 말도 틀렸다고 생각하면 네 생각을 말해주면 돼. 그럼 엄마가 귀를 열고 들을 거야.”


아이는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듣지 않으면 좋겠다. 내 말에 바로바로 알겠다고 대답하지 않으면 좋겠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물어봐주면 좋겠다. 당당하게 나는 하기 싫다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코로나 백신 주사를 의무적으로 맞아야 하는 상황에 프랑스 사람들 중 일부가 거하게 반대를 하고 있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다 보니 얼마 전 길에서 마주친 분들의 대화 속 한마디가 스쳤다.


"맞으라니, 맞아야지."


‘선택’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세상이 바뀌고 생각도 바뀌게 되는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있는 당연한 것들이 언젠가 당연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 이 순간에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내 생각'을 갖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르니 아이는 ‘주변’이, 혹은 ‘남들이’ 말해주는 생각말고 ‘제 생각’을 갖고 자라기를 바라본다.


'정말 나에게 적합한지, 정말 나에게 괜찮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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