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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래토드 Mar 07. 2024

마블링. 섞이지 않는 물질들의 유연한 어울림

"자신의 본질에 충실한 채로 때로는 함께 어울렸으면 한다."



식탁을 정리하고 한바탕 난리를 피울 준비를 했다. 일전에 물과 기름의 성질을 배우고 오늘은 실험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실험을 하자면 정말 신나 한다.


마블링 물감과 포크, 빨대를 펼쳐놓고 너른 스테인리스 팬에 물을 자작하게 채운다음, 발을 동동 거리며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을 불렀다. 세 녀석 모두 해맑은 얼굴로 뛰어온다. 


막내가 먼저 물속에 물감을 부욱 짜 넣으니, 물보다 가벼운 기름으로 만들어진 물감이 잠시 가라앉았다가 수면 위로 둥둥 떠올라 퍼졌다. 그 극적인 장면에 소리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의 살아있는 반응에 뿌듯함을 느끼며 빨대와 포크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아이들은 떠오른 물감위로 바람을 불고 포크로 조금씩 이동시키기도 하면서 마블링을 만들어갔다. 마음에 든 모양이 나타났을 때, 준비해 둔 흰색 종이로 수면을 살짝 덮은 뒤 재빨리 건져 올리자 아름다운 작품이 완성되었다.


아이들은 처음에 한두 가지 색만 사용하다가, 두 번 세 번째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색깔의 물감을 북북 짜 넣고 이리저리 섞었다. 그러다 그만 마블링이 다 섞여서 똥색이 되고 말았다.


"엄마 똥색이 되었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모두 예쁜 색들을 섞었는데!"


"음... 조금 어려운 말이기는 한데 잘 들어봐. 빨강, 노랑, 파랑 이 세 가지 색은 다른 색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색인데, 이 세 가지 색깔을 동시에 똑같이 섞으면 검은색이 돼. 하지만 이 중에 한 가지 색만 넣지 않아도 검은색이 아닌 다른 여러 가지 색을 만들 수 있어. 너희도 물감놀이를 해보아서 알고 있지? 노랑이랑 파랑을 섞으면 무엇이 되었지?"


"초록이요!"


"그렇지, 그럼 빨강이랑 파랑을 섞었을 때 어떻게 되었지?"


"보라색이요!"


"그렇지, 또 노랑이랑 빨강을 섞으면 주황색이 되잖아. 그렇게 섞인 색에 흰색을 조금씩 섞으면 조금 더 연하고 부드러운 색을 만들 수 있어. 그런데 지금 너희가 섞은 색에는 빨강, 노랑, 파랑이 모두 한데 섞여있게 된 거야. 그러니 점점 무슨 색이 되어가겠어?"


"검은색...?"


"응 그래, 이 마블링은 점점 검은색이 되어가는 중이야. 검정이 되기 전에 노란색이 조금 더 많이 들어 있으면 지금처럼 똥색이 되는 거고."


똥도 여러 가지 색을 가진 음식이 소화되면서 작은 입자들이 섞이게 된 것이니, 과연 똥색은 똥색이었다.


"다시 해요, 다시!"

"이번에는 다 섞지 않고 어울려 놓아야지."



아이들이 완성한 마블링 아트를 한편에 널어놓고 보니 아주 근사하다.


집 안 가득 기름 물감 냄새가 진동한다.


이 물감이 마르기 전까지

오늘 배운 것들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는 떠올려 주었으면...




좋은 것을 다 섞는다고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닌 것을,


때로는 있는 자리에서 멈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이 사랑스러운 형형색색의 아이들이

창조주께서 빚어주신 자신의 본질에 충실한 채로

세상에 나아가 함께, 제대로 어울리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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