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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자매 Apr 10. 2021

단독주택을 활용하는 아홉 가지 방법(2)

때로는 아뜰리에

인테리어 업체 소송하는 글을 연달아 썼더니, 작년 폭우 당시 지하에 물을 퍼내던 때로 타임슬립 한 기분이 들어 오늘은 새로운 에피소드를 꺼내보려 한다. 이번에는 우리 집 옥탑방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가 옥탑방

옥탑방은 옥상에 클래식한 빨간 벽돌로 네모 반듯하게 만들어져 있다. 크기는 약 3평 정도. 처음 리모델링을 시작할 때, 우리가 이 옥탑방에 거는 기대는 대단했었다.


2층과 옥탑방을 내부 계단으로 연결한 후, 옥탑방 한쪽 벽에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커다란 통창을 설치하고, 다른 가구 없이 푹신한 빈백 하나만 놓아 조용히 힐링할 수 있는 그런 완벽한 옥탑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첫 구상이었다.


현실은 어땠을까.

일단 2층과 옥탑방간 편리한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실내 계단은, 계단을 만들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아 실패.

전체 통창은 공사 규모가 커져서 기존 쥐꼬리만 한 창문만 새 새시로 교체하는 것으로 타협.

게다가 마지막에 공사비가 무한 증액되면서 옥탑방은 새시와 전기 공사까지만 겨우 마치고, 아무런 인테리어 없이 그대로 공사가 중단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 결과 힐링공간은 개의 뿔이 되었다. 장판조차 깔려있지 않은 돌바닥과 미처 뜯지 못한 벽지가 덜렁덜렁 붙어있는 옥탑방으로 상황 종료. 심지어 옥탑방에 가려면 좁고 가파른 외부 계단을 통해야 하는데, 도로 건너편 편의점은 발이 잘 가지 않는 것처럼, 이 또한 엄청난 심리적 거리를 형성했다.


우리는 이번 집만은 미니멀해지기를 원했고, 그래서 잡동사니들을 위한 창고를 고의적으로 만들지 않았다.(어차피 창고에 들어가면 절대 찾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의 지난 역사가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사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갔고, 결국 어정쩡한 물건들이 유령처럼 이방 저방을 떠도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예쁜 쓰레기'들이 하나둘 옥탑방으로 향하게 되면서, 옥탑방은 자연스럽게 창고로 변해갔다.


그렇게 금세 1년이 흘렀고, 옥탑방이 온갖 잡동사니로 꽤 붐빌 즈음, 우리에게 느닷없이 각성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동안 내심 옥탑방을 이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는 죄책감이 쌓이다 갑자기 폭발한 모양이었다. 이런 각성은 아주 잠시만 우리 안에 들어올 것이므로,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옥탑방 인테리어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손이 많이 가는 단독주택살이 5년 차의 소소한 팁이라면, 이런 각성이 왔을 때 무조건 일을 시작해야 한다. 놓치면 다음 각성이 언제 올진 기약할 수 없다). 때마침 1층 독서모임 주인장 H씨도 자신의 책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해 셋이서 나란히 을지로에서 벽에 칠할 흰색 페인트와 장판을 구매했다.


자재를 구매한 바로 그 날 모든 일을 마쳤어야 했는데,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옥탑방의 인테리어 자재를 구매했다는 뿌듯함과 안도감에 그만 골아떯어졌고, 자재만 옥탑방에 넣어놓은 채로 다시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

그냥 눈만 한번 깜빡였을 뿐인데 일주일이 흐르고(이런 하기 싫은 일들은 시간이 64배속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문제), 바쁜 동생과 H 씨를 구슬려 다시 인테리어에 착수했다.


페인트칠이라고 함은, 우리가 보광동 집에서 이미   해본 경험이 있는데,  경험이  가지 심리로 작용했다.  번째는 '페인트칠할만하다'이며  번째는 '페인트칠할만하지 않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난이도는 낮지만 귀찮은 일에 여러 명이 모이니 할만한 일을 넘어 재밌는 일이 되었다.


우리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이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고, 월든 호숫가 숲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적 삶을 산 작가의 삶을 긍정하고 동경해왔다. 그래서 그 날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은 채 함께 옥탑방의 낡은 벽지를 긁어내고, 페인트를 칠하고, 장판을 재단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월든의 오두막'을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노동이었지만 힐링이었다

페인트는 조색에 실패해 너무 회색빛이 되었고, 장판 끝은 각이 맞지 않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 낸 것으로 충분했다. 게다가 페인트칠을 하고, 장판을 깔고, 내부를 정리하는 데 고작 서너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민은 일 년을 했는데 말이다)

옥탑방 우리끼리 셀프 인테리어 후

이렇게 만든 옥탑방은 동생의 아이디어대로 화실로 사용하기로 했다. 미술을 전공한 동생은 그림 클래스를 운영하는 절친(일명 ‘차차쌤’)과 함께 보광동에서 정기 그림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림 모임은 여기로 이사 오면서 중단되었는데, 옥탑방에 화실을 만들게 되면 언제든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생과 1층의 S 씨가 정식으로 차차쌤을 모시고 그림을 배우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왠지 재밌어 보여 나도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꼽사리'를 끼게 되었다)

보광동 집에서 진행했던 그림 모임(반가운 보광동)

옥탑방 그림 모임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되었다. 내가 그렸던 마지막 그림은 중학교 미술 수업 때 포스터 칼라로 그렸던 불조심 선전 포스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로 그림을 그릴 기회도, 딱히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즉흥적으로 그림 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생애 처음으로 유화를 그려보게 되었다. 붓을 잡았더니 갑자기 내 속에 잠들어 있던 미술적 재능이 발현되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림 그리기는 생각보다도 훨씬 재미있었다. 게다가 내가 그려 어설픈 부분은 선생님의 손만 샤샤샥 거치면 수습되었기 때문에, 선생님만 믿고 내가 그리고 싶은 것들을 거침없이 그렸다.

낮의 아뜰리에
밤의 아뜰리에

내가 정한 첫 번째 그림 주제는 고양이 '라이'였다. 폭우로 죽을뻔한 라이가 남은 냥생은 뽀송뽀송하게 살라는 기원의 의미를 담아 사막에 있는 라이를 그렸다. 이 그림은 지금 부적처럼 2층에 놓아두었다.

제목은 ‘사막과 라이’ (실제 라이가 그림 앞에 있던 순간 포착)

몇 달 동안 우리의 낭만적인 토요일을 책임졌던 그림 모임은 현재 코로나로 잠시 쉬어가고 있다. 짧아서 아쉬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다시 옥탑방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길.





마지막으로 우리 붓통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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