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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자매 Apr 20. 2021

단독주택을 활용하는 아홉 가지 방법(3)

때로는 플리마켓

이번에 우리 집 마당에서 네 번째 플리마켓이 열렸다.


먼 기억을 더듬어보면 첫 번째 플리마켓은 어느 외곽의 카페 앞에서 진행했었다. 우리는 안 입는 옷을, 친구는 직접 만든 캔들을 팔았다. 한여름 에어컨도 없는 실외에서 다들 얼굴이 까맣게 그을렸지만, 눈엣가시이던 물건들을 처리하는 기쁨은 컸다. 나름 순조롭게 마무리될 즈음, 의자에 올라 옷을 걸던 동생이 의자에서 미끄러졌다. 툴툴 털고 일어나길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점점 걸음을 못 걷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서 집에 도착했고, 다음날 동네 정형외과에서 '발에 금이 갔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이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동생은 2주 동안 회사를 가지 못했고, 한 달 동안 목발을 짚고 생활해야 했다.

정산 결과 : 매출은 나쁘지 않았으나, 그와 비교할 수 없는 병원비 지출, 한 달 내내 목발 생활


두 번째 플리마켓은 최측근의 식당에서였다. 식당이 번화가가 아닌 주택가에 위치해서 그런지 지나가는 행인이 거의 없었다. 친한 친구들 여섯 명이 각자 집에 묵혀놓고 있던 아이템들을 꺼내 팔았는데, 우리끼리 서로 물건을 사고파는 상황이 펼쳐졌다. 게다가 덩달아 흥이난 식당 사장님(=최측근)께서 식당에 있는 와인과 생맥주를 무제한으로 제공해 물건을 판 기억은 없고, 잘 먹고 잘 마시고 간 기억만 남아있다.

정산 결과 : 공짜로 술을 제공한 식당 사장님의 일방적인 마이너스.  옷들을 리모와 캐리어에 급하게 집어넣다가 지퍼에 옷이 렸는데 후에 수리비가 26 원이 발생

최측근의 식당에서 열린 두 번째 플리마켓

세 번째 플리마켓은 우리 집 마당에서였다. 이번에는 집 리모델링 완공일에 맞춰 열기로 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집이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는 공간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있지만 지하철역에서 도보 3분밖에 걸리지 않으며, 또 동네의 숨겨진 공간들이 의외로 인기가 있는 사례들을 여기저기서 주워 들었기 때문이었다.


완공부터 일층의 독서모임과 심리상담소 입주까지 한 달이 남아있었기에 그 기간 동안 여러 셀러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미리 홍보를 통해 여기에서 물건을 팔고 싶은 셀러들을 모집했다. 처음에는 스무 명이 넘는 셀러들이 참가 신청을 했다가, 여러 이유들로 마지막에는 대여섯 팀만 겨우 남게 되었고, 꽤 길게 진행하기로 했던 플리마켓 기간은 단 하루로 축소되었다.


그 하루마저도 추적추적 비가 내려 셀러만 많고 바이어는 거의 없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다. 평소에는 집 앞을 지나가는 행인이 꽤 있는 것 같았는데, 그 행인들의 대부분은 신기한 듯 눈빛만 보내고 제 갈길을 간다는 점을 계산하지 못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플리마켓은 집에 있던 물건을 가지고 나왔으므로 판매에 대한 부담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다들 자신이 디자인한 물건들을 인터넷으로 판매하고 있는 정식 셀러들이었고, 단 하루의 플리마켓을 위해 며칠을 준비했던 것이다. 결국 손님보다 셀러의 숫자가 더 많은 채로 종료되어, 작은 어깨로 도로 짐을 챙겨가던 모습이 너무도 미안했다.

정산 결과 : 이곳이 똥상권임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계기가 됨, 셀러들에 대한 무한 미안함

세번째 플리마켓

처량한 세 번째 플리마켓이 끝나고 다시 2년이 흘렀다. 옷장을 열면 걸지 못한 옷들이 아슬아슬하게 쌓여있어혹 무너질까 봐 빠르게 쑤셔 넣고 황급히 옷장을 닫아야 했다. 동생의 옷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근으로 하나둘 팔기엔 품이 많이 들었고, 헌옷수거함에 버리기에는 너무 멀쩡했다. 다시 한번 플리마켓을 열어보기로 했다. 앞선 세 번의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그간 가장 취약했던 홍보에 힘을 쏟았다. 당근 어플에서 일주일 전부터 홍보를 하고, 옷들을 예쁘게 전시할 수 있게 행거도 여러 개 빌려두었다. 소식을 접한 몇몇이 같이 물건을 팔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으나, 손님이 없을 수도 있으므로 (그들을 위해) 완곡하게 거절했다.


플리마켓은 일요일 오전 10시에 시작되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더없이 화창했다. 동네에 홍보도 했고, 옷들도 보기 좋게 정리되었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았다. 우리는 지난 세 차례의 경험에서 부족한 점을 찾아냈고, 보완했다(고 생각했다).

네번째 플리마켓. 나름 전시에 공을 들였다.

그런데 한 시간 가량 흘렀을까. 손님은 단 한 명이었다. 그마저도 우리가 판매한다고 올린 와플팬을 보고 왔는데, 와플팬을 판다고 했던 친구가 술병으로 참가를 못해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반면 플리마켓 소식을 듣고 1, 2층의 지인들이 많이 발걸음을 해주어 겉으로는 성황리에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중 손님은 없었다. 전날 손님용으로 만들어두었던(잔당 천 원에 팔지, 이천 원으로 팔지 고민했던) 샹그리아는 삼삼오오 만들어진 술판으로 인해 빠르게 소진되었다.


시곗바늘은 마감시간으로 정한 7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 시간에 한 명꼴로 오던 손님은 더욱 줄었다. 대신 사람 손님 아닌 길고양이 손님들이 우리 집 문 앞에서 줄을 서 대기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녀석들의 주 활동무대가 우리 집 마당과 그 옆 공터인데 사람들이 하루 종일 이 곳을 점령하자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입구에서 우리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일곱 시가 되어버렸고, 손님 몇 분과 길고양이 몇 마리만이 찾아준 채로 우리의 네 번째 플리마켓은 초라하게 마감되었다. 정산할 것도 없는 수준의 매출이었다. 그제야 당근에서 '플리마켓 하는 걸 지금에서야 봤네요. 아쉬워요'라든가 '내일도 하나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래서 이왕 한 김에 하루 더 진행해보기로 했다.


기대는 하지 않았고, 해서도 안되었지만 다음날 상황은 그보다 더 참담했다. 동생이 낮동안 재택근무를 하며 통창으로 마당에 손님이 오는지 관찰했는데 오후 네 시가 될 때까지 사람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고 오직 개미와 고양이, 새만 다녀갔다고 했다.


이번 플리마켓은 역대급으로 망했다며, 이렇게까지 망할 줄 몰랐다며 고개를 젓고 있는데 갑자기 마당에 하나둘 동네 주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따님이 당근 홍보글을 보고 여기에 꼭 가보라고 했다며 멀리서 물어물어 찾아온 어머님 손님을 시작으로, 엄마 손을 이끌고 온 어린이 손님들까지. 마당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고, 행거에 빽빽하게 걸려있던 물건들도 눈에 띄게 팔려나갔다.


‘이곳은 주말보다 평일 퇴근 시간이 훨씬 인기가 있는 곳일지 모른다' , '내일 또 해보자. 마지막 한 장이 팔릴 때까지'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그 내일이 바로 오늘이고) 오늘은 각자의 바쁜 약속 때문에 열리지 못했다.


여기까지가 아주 열악한 장소에서, 사업적 머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플리마켓을 열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 과연 다음 플리마켓은 열리게 될지, 그 결과는 어떨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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