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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 Jan 31. 2022

업으로 삼지 않는 것에 대한 즐거움

피아노를 아무리 잘 쳐도 이걸로 돈을 벌 수는 없으니까.

 나는 성인 취미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 매일 출근하는 순간부터 (시국이 시국인지라 몇 번의 재택근무는 하지만) '집에 가고 싶다'를 외치는 직장인이 피아노 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린다는 것은 그 얼마나! 대단한 결심인가! 최소한 나에겐 그렇다. 집 가서 씻지도 않은 채 누워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그 속에서 맥주 한 잔과 불닭볶음면을 먹는 것이 내 가장 큰 기쁨인 것을. 그것을 마다하고 피아노 학원 연습실로 향한다니. 그런 내 모습에 취해 피아노 학원을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어렸을 때 조금 배운 피아노 덕에 악보를 읽고 치는 것에 어려움은 없다. 회사에서 휘몰아친 여러 감정들, 어떤 때에는 짜증이 뒤섞인 분노, 어떤 때에는 해냈다는 성취감을 피아노 학원 오는 길에 잠시 동안 내려놓는다. 피아노 앞에선 최대한 잡생각 없이 순수하게 연습하고 싶어서다. 조금이라도 감정을 피아노 앞까지 끌어온 날이면, 유난히 연습이 잘 되지 않는다. 기분 탓일까?

하농을 치는 것도 나에게 있어선 연습의 서막을 알리는 시그널 같은 것.


 꽤나 오래 다닌 턱에, 대부분 피아노 연습실의 피아노 상태를 어떤지 알게 되었다. 여러 대의 피아노들 중, 연습할 때 나랑 잘 맞는 피아노가 무엇인지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도착해서 내가 자주 사용하는 피아노 연습실에 사람이 있나부터 먼저 확인을 한다. 사람이 없으면 기쁜 마음으로 연습실에 들어가고, 이미 누군가 연습하고 있다면 체념한 채 다른 연습실을 기웃거리며 방황한다. 연습실 벽 사이로 각기 다른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물론 치는 곡도, 각자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가끔 엄청난 실력자가 나타나 쇼팽 스케르초라도 연주하는 날이면, 그새 풀이 죽곤 한다. 나도 저렇게 잘 치고 싶은데, 라는 생각이 들면 배틀이라도 하듯 지금 치고 있는 곡을 더 무리해서 빠르게 쳐본다. 물론 손가락이 꼬여 엉망이지만, 다른 옆 방에서 바이엘을 치고 있는 사람이 내 방에서 흘러나오는 들으며 감명받길 바라는 1%의 마음을 품고서 멋대로 우당당 쳐본다.

 피아노를 치기 전, 행하는 여러 가지 의식들이 있다. 손톱이 바짝 잘려 있나, 머리는 질끈 묶었나, 페달을 밟는 오른쪽 발목은 풀어져 있나, 열심히 가다듬어본다. 이 중 하나라도 만족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연습을 하게 되면 "오늘은 머리끈이 없어서 연습을 잘 못했네"라고 탓을 돌리곤 한다. 심지어는 레슨을 받으러 간 피아노와 연습실의 피아노 상태가 달라 연습한 만큼 피아노가 쳐지지 않다고 탓해본 적도 있다. 정말 세기의 피아노 연주자가 따로 없다! 

 취미란, 순전히 내가 즐기는 것이다. 잘 치고 싶은 마음은 내 개인적 욕심일 뿐 잘 치고 싶다는 마음이 스트레스로 다가와 나를 짓누르진 않는다. 이것이 생계가 달려 있냐, 없냐의 차이인 걸까. 일반인-아마추어-프로의 세계의 일반인 1로서 끝장나는 연습실 안의 쇼팽 님, 베토벤님, 모차르트 님들을 부러워한다. 나보다 좀 더 잘 치면 아마추어, 나보다 월등히 더 잘 치면 프로가 아니겠는가.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아마추어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피아노 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려본다. 아무리 열심히 쳐도 내가 피아노로 돈을 벌 수는 없을 테니 이 즐거움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 난 돈을 내야만 피아노를 칠 수 있고, 배울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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