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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 Aug 28. 2020

나를 지키기 위한 또 다른 '부캐'

부캐 양성 첫 번째 프로젝트 : 바로 피아노


최근 들어, '내려놓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고 있다. 성격 상 무언가 하나를 하면 쉽사리 놓지 못한다. 이러한 성격 덕에 짧으면 짧게, 다양한 사회활동들을 하면서 (그것이 공부가 되었건, 일이 되었건) 계속 쥐고 포기하지 않으면 성과가 주어졌다. 성과들은 대개 명확했고, 그 속에서 얻을 것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내 성격이 일을 할 때에는 발목을 단단히 잡았다. 회사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인정'이라는 틀 안에 가둔다. 열심히 하는 조직원들은 인정은 물론이거니와, 이에 뒤따를 경제적 보상까지 바라고 일을 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싶이 경제적 보상까지 뒤따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고, 능력 외의 운도 필요하다. 나도 열심히 하는 조직원 중 하나였다. 조직에서 인정받고 싶었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한 번 맡은 업무는, 내 성에 찰 때까지 나름 열심히 했다. 그 결과 나름 조직에서 인정은 받았으나, 인정 외에 주어진 대가들이 내 기대에 충족하지 못했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운이 따르겠지라고 생각하며 한 해, 한 해 버텼지만 결국 나는 내 존재의 이유를 회사에서 찾지 말자고 결론 내렸다.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 없듯 모든 걸 내려놓지는 못했으나 내려놓고 있는 중이다. 왜 이렇게 못내려놓고 내 존재의 이유를 조직 안에서 찾으려고 아등바등했을까? 그래도, 이제라도, 내려놓음을 깨달아서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존재의 이유를 다양한 부캐들을 만들며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늦은 밤에 노트북을 이고 지고 방문하여 야근을 이어나가던 나의 애처로운 모습.jpg


여러 부캐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내 존재의 이유로 삼은 이유는 본업에 올인하지 않기 위해서다. 더 이상 인정에 대한 욕구와 타인과의 끊임없는 경쟁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설정한 부캐 양성의 조건과 자격은, 따단!


1. 인정보단 "내" 즐거움이 최우선! (성과와 인정은 따르면 좋을 뿐)

2. 싫으면 다른 것으로 갈아탈 오픈 마인드! (올인이란 없다)


정말 내가 즐길 수 있을 만큼 열정과 노력만으로 다양한 부캐 양성에 힘쓸 것이다. 나의 부캐들은 오로지 본캐인 나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서다. 여러 부캐들 중 내가 가장 애착이 가고, 좋아하는 부캐를 소개하자면 바로 피아노를 치는 나, "소울트리"이다. 소울트리라고 명명한 이유는, 내가 박효신 팬클럽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난 구 카시오페아였다.)  내 이름에서 온 두 글자와 피아노 꿈나무의 나무(=트리)를 합쳐 만든 닉네임이다. (사실 진짜 내가 원하는 리얼 닉네임은 성진뷘이다.)


성진 ㅂㅜ ㅣ ㄴ..아니! 소울트리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사진


소울트리가 다시! 피아노에 빠진 계기는 조성진 때문이기도 하나, 악기가 가진 정확성 때문이다. 피아노는 내가 올바르게 악보를 해석하고 건반을 눌러야 원하는 음이 나온다는 점에서 코딩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피아노는 재미없는 악기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현악기의 같은 경우는 연주자가 현에 진동을 다양하게 주어 원하는 음의 튠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는데, 피아노는 페달로 음을 조정하는 것 말고는 음의 튠 자체를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다. 피아노의 음을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면 순전히 연주자의 기교, 해석, 연습에 더욱더 매진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잡한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나에게 있어 피아노는 제격인 셈이다.


그리고 피아노를 계속 치고 싶은 의지의 원동력은 도전정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성인이 되어 배우는 취미는 더욱 특별하다. 내 돈으로 받는 학원비이니 허투루 보낼 수 없고, 없는 시간 쪼개어 할애하다 보니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진다. 다양한 취미 활동을 갖기 위해 노력했으나 (ex. 미술학원, 요가학원, 방송댄스 등..) 나에게 가장 큰 만족과 즐거움을 준 것이 바로 피아노였다. 여태까지의 해왔던 취미활동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무언가 해내고 싶은 도전정신을 갖는데 까진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소울트리는 치고 싶은 곡이 있고, 완곡하고 싶다는 도전정신이 강하다. 스스로를 위한 연주는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며, 즐거운 일이 된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다. 뭐, 내가 아무리 연습한다 한들 조성진처럼 끝내주는 연주를 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아노 학원 옆 방에서 연주하고 있는 사람도, 유튜브에서 끝장나게 잘 친다고 하는 사람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처럼 연주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넓게 전 우주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우린 동지들이다. 나를 위한 연주라, 이 얼마나 행복하고, 가슴 뛰는 일인가!


결국 나에게 있어 피아노는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느끼게 해주는 비상구라고 생각한다. 회사, 집을 벗어나 피아노 앞에 앉으면 정말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피아노 앞에선 정말 내가 아닌 소울트리만 있음을 느낀다.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때론 혼자 감정에 취해 열정적으로 건반을 쾅쾅 친다던지, 온 감정을 다해 혼자 선율을 살리려고 애쓴다던지 (거의 뭐 피아니스트인줄). 나에게도 있어 소울트리가 신기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그래서 많은 부캐들 중, 소울트리를 가장 좋아하나보다.  88개의 건반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부채 소울트리의 스테이지. 잠시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었지만 다시 소울트리가 활약할 그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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