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에는 삶을 철학하자
드디어 나이 50이라는 인생의 변곡점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50이라는 나이가 되어서야 오로시 나 자신과 마주하며 그간에 쌓여있던 삶의 먼지들을 털어내는 정리정돈을 하게 되었다.
비로소
솔직하고 담대하게 나 자신과의 독대가 가능해진 것이다.
마흔의 나이에 접어들 때는 준비가 없었고 안정기로 접어드는 것 같던 삶이 다시 한번 폭풍우에 휘말리면서 송두리째 흔들리는 시간을 살았다.
심하게 불어대던 풍랑에도 마흔의 여정에는 그나마 뿌리가 단단하여 꺾이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세상을 향해서만 살아오던 삶의 관점이 나 자신에게로 옮겨지며 혼자 있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젊음이 주는 치유력으로 모든 것이 괜찮았고 어떤 것도 버틸 수 있었는데 내가 맞은 마흔의 나이에는 '건강'이라는 가장 큰 재산이 무너지면서 송두리째 삶을 흔드는 시련의 시간이 도사리고 있었다.
잘 달리던 인생 도로에 갑자기 하얀 안개가 밀고 들어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상황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발버둥 치며 어떻게든 그 상황을 해결하고자 뛰어다녔다. 하지만 시련이 주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듯 어떤 답도 구할 수 없었고 이내 모든 것에서 만세를 부르는 항복으로 어쩔 수 없는 포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삶을 철학하기 시작했다.
삶의 본질에 대해 가르침을 주는 선지자들의 경전이나 철학자들의 책을 읽고 깊은 사색을 통해 마음을 내려놓는 방법을 공부했다.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생의 의미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깨달음을 구해갈수록 기존에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의 앎에는 어리석은 교만과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에도 마치 다 아는듯한 오만한 이해들이 그득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밥 먹고 사는 것에 열심히였던 만큼 삶의 본질에 대한 공부를 그만큼 해본 적은 없었기에 그때서야 욕심과 욕구로 채워진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나를 발견했다. 가방 안에는 성공, 도전, 목표, 희망, 미래, 부 등의 포장된 단어들로 덧씌워진 욕망들이 보따리가 되어 엉겨있었다.
아주 내밀하게 들여다보니 그랬다. 치열하게 살아오는 동안에는 그 본질까지 탐구할 여력이 없었기에 포장된 욕망의 다른 이름인 그 단어들을 하나씩 보따리 안에 더 넣어가며 살았던 것이다. 아무 일 없이 승승장구했다면.. 혹은 무탈했다면 아마도 그 보따리는 더 커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에 강제로 급브레이크가 걸리는 시그널이 주어지기 전까진 말이다.
강제로 주어진 처절한 혼자만의 시간을 만나면서 외로움의 끝자락 하나까지를 다 토해내는 고독했던 그 경험을 통해 삶의 본질을 성찰할 기회가 그래도 나에겐 있었으니 참 감사할 일이다.
시련은 한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의 문이라고 위대한 철학자 '칼 융'은 말했다.
그때에 나는 그때까지의 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나의 아상에게 스스로 장례를 치르는 시간을 가졌다.
부지런히 살 생각만 하다가 죽음이라는 명제가 현실로 경험되는 일이 벌어지자 막상 나는 전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절감했다.
공포가 밀려왔다.
그 공포와 두려움은 지금까지의 살고자 벌려놓았던 수많은 삶의 잔재들에 대한 미련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허상으로 채워진 부질없는 것들을 움켜쥐고 사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을 챙겨 놓지 못했다는 후회와 회한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진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정신이 퍼뜩 차려졌다.
이대로 죽을 수도 없는 상태라는 자각이 들었다.
그 즉시 주변을 정리 정돈하기 시작했다.
현실의 채무를 깨끗이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는데 그것이 돈이든 인간관계에서 불편했던 채무감이든 처리하지 못한 일이든 목록을 만들어서 하나씩 지워가며 클리어했다. 집안 살림 또한 간결하게 정돈했다. 버릴 것이 많았다. 살림의 반이상을 버렸다. 옷과 신발은 계절별 몇 가지를 남겨두고 전부 정리했다.
다음은 수많은 관계로 얽힌 인간관계를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90프로 이상을 정리했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까지 소모하며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고 정작 중요한 사람들만을 남기면서 관계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정리정돈을 통해 모든 것을 아주 아주 심플하게 남기고 보니 세상 간결하고 더없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가벼워진 마음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와 고요가 찾아왔다.
이제 중요한 '마음'도 정리 정돈할 차례였다.
혼란했던 생사의 두려움에도 숨 쉬는 동안 삶은 이어지기에 매일의 선택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정말 원하는 일에만 마음을 내다보니 조금씩 진정한 자유함이 느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중심에 둔 선택들은 비로소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의 '지금'인 현재에 머물게 하는 본질적 삶의 의미와 당연한 진리가 어떤 것인지를 처음으로 느끼고 깨닫게 했다.
걱정, 두려움, 희망, 기대, 도전 등으로 미래에 포커스가 맞춰진 몸과 마음이 현재에 존재되어 지금을 사는 방법을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언제나 보다 나은 미래와 더 나은 삶의 모습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느라 바로 '지금 이 자리'라는 현재에 나의 몸과 마음은 있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꺾이고 넘어져도 일어나 걸을 땐 미래만 보던 나였다. 지독하게도 열심히 살면서 미래를 바꿀 현실의 날갯짓이 과부하로 고장시그널을 보내는데도 멈추어 정비하지 못하다가 삶에서 가장 큰 두려움이라 생각했던 '죽음'앞에 서서야 비로소 스스로와 단도직입적으로 마주하며 고독하지만 자유로워지는 철학의 시간을 살 수 있어진 것이다.
참 모순적이라 느꼈던 고독하면서도 자유로워졌던 특별한 하루하루를 지나서 지천명이라 칭하는 나이 50인 지금을 맞았다.
'비로소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알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때.
이때 주어지는 시련은 하늘의 소명을 듣고 발견하라는 시그널이다.
이제야 진정한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더 이상 외부의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 선택을 통해 그 소명을 향해 나아간다.
부모로의 책임을 다했으니 이제 다시 개인의 '나'를 마주하며 그 '나'와 살게 되는 새로운 시작점.
나는 나이 50을 인생의 변곡점이며 시작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중년의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우아하게' 한걸음 내딛기를 멈추지 않는다.
또한 안다고 착각했던 모르는 많은 것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새롭게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덕분에 매 순간 새로운 나와 경이로운 세상을 만나며 살고 있다.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는 감사해야 할 모든 시간들.
이제야 삶을 철학하는 시작인 것이다.
상처 입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감 없이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지를
스스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드러내어 꺼내보면 생각만큼 두렵지 않을 수 있고
여러 차례 들여다보다 보면 보기보다 상처가
깊지 않기도 하다.
그런 복기를 통해 과거 어느 상처에 머물러 있던
자신을 어루만지는 치료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상처를 아픔으로 남기지 않고
삶을 철학하는 자양분으로 삼아
앞으로의 시간을 보다 본질적인 삶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치유의 과정이 되어 준다.
어느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가장 따뜻한 위로를
'내가 나에게' 하고
열심히 사느라 이곳저곳 상처가 나있는 자신을
살피고 아끼며
이제부터라도 소중히 대하는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방법'
현실의 책임을 거의 다하고
이제 다시 나 자신과 살아야 하는
나이 50에는
삶을 철학하며
나를 대하는 공부를 통해
삶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고독은 더 이상 외롭지만은 않다.
그때야 말로 가장 솔직한 나와의 대화시간이다.
적어도 욕심과 욕망의 보따리를 내려놓고
가벼운 어깨를 만나볼 더없이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언제까지 짊어진 보따리에
더 좋은, 더 이쁜, 더 멋진, 더더더...라는
짐을 더하며 살 것인가..
이제 보따리를 풀어
꾸렸던 짐을 하나씩, 두 개씩 내려놓자.
진정한 자유함은 내려놓는 짐의
개수와 비례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아주 운 좋게 당신에게도
그 짐보따리를 내려놓을 기회가 주어질 때
기회의 앞모습은
고독으로 온다는 것을.
아픔으로 오거나
슬픔으로 온다는 것을.
허무함으로 오거나
비참한 좌절감이나
남루한 쓸쓸함으로 오기에
필사의 알아차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오지만
아무나 잡을 수는 없는 기회인 이유는
고독할 수 있는 능력에서 갈린다.
인생을 철학할 소중한 자신의 때를
맞을 수 있도록 매의 눈으로
기회의 처절한 앞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