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아끼고 글을 쓴다.
한때는 말을 많이 하며 살았다.
그래야 하는 직업으로 상대를 살피고 대화를 통해 원하는 결과를 성과로 내야 했기에 필요한 말을 누구보다 강단 있고 똑 부러지게 하곤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에
'아나운서 세요?'
'말을 참 이쁘게 한다'
'목소리가 좋다'... 등이 있는데
사실 그런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도록 살았다.
그런 목소리와 단어선택으로 말을 이쁘게 혹은
조리 있게 해야 내가 가진 아이템을 팔거나
나를 세일즈함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말 한마디의 값어치를 톡톡히 치르며 집안 어른에서 훈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라 생각 없이 말하는 법이 없어졌다.
덕분에 말은 신중하게 했고 오히려 속에 머금으며 삼키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말들로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은 스트레스가 심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심신의 공허함을 느꼈고 그때야 비로소 말보다 생각으로 필요한 것을 할 수 있어졌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의 말을 하고 싶어 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말하기를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경청의 태도를 보이면 에프터는 길어지고 반복되었다.
'기브 & 테이크'가 되면 좋으련만 균형 있는 주고받음은 사실 쉽지 않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내 말하기에만 더 집중된 사람들이 있으니 밸런스는 쉬이 깨진다.
그럼 그 대화는 재미가 없고 흥미를 잃게 된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지나면 피곤해진다. 관계에서 오는 현타는 진심으로 상대를 대할 수 없게 만들고 함께하는 그 시간이 더 이상 즐겁지가 않게 된다.
'사실.. 나도(그 누구도) 내 얘기를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했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이 작업은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다. 실수가 적어지고 수정할 수도 있으며 지워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말은 한번 내 입을 떠난 순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으니 잘못된 말을 실수로 인정하고 정정하여 바로잡는다 한들 이미 뱉어진 후의 일이다.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거나 이미 아픈 후일뿐이다.
글쓰기는 나와의 대화이기에 내 생각을 따라가는 사색을 통해 진솔한 발산 작업이 되어 준다. 어떤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 답답하게 쌓이지 않고 속이 시원한 해방감도 준다.
나는 이제 말하기보다 글을 쓰며 원하는 것을 그려나간다.
뭐든 적는 것을 좋아하여 취미에도 맞고 고요한 마음 챙김에도 좋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거침없이 써 내려가면 된다. 소위 혼잣말을 글쓰기에 하는 것이다.
쓰다 보면 닿게 되리라. 내가 원하는 곳에.
심연 깊은 곳의 나에게 닿으면 무언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나만의 순례길을 걷는다. 더 이상 나를 찾는 여행이 아닌 나로서 모든 순간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삶의 여정을 뚜벅뚜벅 걸어가 본다.
말은 씨앗이 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말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결국 운명이 된다.
행동은 꾸밀 수 있어도 말은 곧 본색이 드러난다.
그러니 말로 짓는 복이야말로
희망의 씨앗이 되고 덕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온다.
평탄하게 사는 삶이 어디 있는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내면서
곡선을 그리며 살아가는 우리 인생사에
스스로에게 나침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나의 '말'이다.
긍정의 말.
확신의 말.
감사의 말.
겸손의 말.
내가 하는 그 말은 내 생각의 표현이므로
어떤 말로 씨앗을 뿌려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이다.
감사할 줄 알면
겸손해지고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알면
겸허해진다.
그래서 내가 하는 혼잣말과 기도의 언어는
'감사합니다'가 90프로다.
뜬금없이 감사하다.
우주가.. 삶이.. 존재하는 그것들이.
그런 중에 나도 함께 존재함이.
무턱대고 그저 감사할 때가 많다.
그러니 세상을 향해, 누군가를 향해
아픈 말 나쁜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도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엄마일 테고
누군가의 딸일 테고
아들일 테고
아빠일 테니
점점 말이 어렵다.
그래서 이제 글을 말처럼 쓰려고 한다.
나의 생각은 글이 된다.
나의 말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