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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책장 Mar 24. 2022

<그립소>

내가 더 낫소!


'이렇게 소들은 소년을 키웠다.' 조그만 소년이 어른이 되어 이제껏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소년이 자랄 때마다 소가 소년을 키웠다. 따뜻한 방에 머무를 수 있게 하고, 학교에 갈 수 있게 등록금이 되어주고, 밤새 게임의 세계에 빠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컴퓨터 한 대를 사는데 소 한 마리와 바꾸는 게 불공평해 보이고, 손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것을 잊어버리고 게임에 푹 빠졌다. 소들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소년에게 다 주는 것이 행복했다.(그런 걸로.)


집 옆에 축사를 두고 시골 냄새의 대표 격인 소똥 냄새와 자라난 소년. 채식하기에 소똥 냄새는 나쁘지 않았고, 소들의 눈망울, 뿔, 힘센 꼬리에 맞았던 소와 함께한 유년의 기억들을 잔잔하게 꺼내 놓은 책이다.

글 밥이 적어 가볍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소 이야기의 무게가 달리 느껴지는 것은 남편 때문이다.


몇 해 전 TV에서 [극한 직업 대동물 수의사] 편을 보았다. 한때 남편은 '극한 직업'과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았다. 나는 극한 직업도 자연인에도 관심이 없었다. 빨래를 널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힐긋 접한 것이 다다. 그날은 이도 저도 할 일이 없었는지 나도 극한 직업 앞에 앉았다. 새끼를 임신한 소의 출산일. 출산이 쉽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어미 소. 시간과 관계없이 소 주인은 수의사를 찾는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대 동물 수의사는 열 일을 제치고 달려온다. 맨몸에 뽀빠이 바지 하나만을 입고 (송아지가 나올 때 점액? 이 다 붙으니 옷을 안 입는다고 했던 것 같다) 손을 집어넣어 송아지의 위치를 파악한다. 송아지의 머리가 위에 있어서 나올 수 없는 상황. 송아지 다리를 찾아 밧줄로 묶어서 조심조심 당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끈적끈적한 점액에 쌓여 있는 송아지가 순식간에 미끄덩거리면서 나오는 장면이었다. 정말 얼굴에 인상을 쓰면서 입으로는 이 경이롭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툭 던지는 남편의 한 마디

" 나도 어렸을 때 아버지랑 새벽부터 소 분만한다고 졸면서 기다리고 저 밧줄 잡아당기고 했는데.... 아휴... 아 효..."

"진짜? 저걸 봤어?"

" 아버지랑 같이 송아지 빼냈다니까!"

"수의사를 안 부르고 직접? 아~~~ 악"

"새끼 낳을 때마다 돈 들여서 어떻게 부르냐. 난산일 때만 수의사 불러서 했지."

남편의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커다랗고 힘든 추억이 있었는지 그날 처음 알았다. 내가 어머님께 들은 이야기는 위로 두 딸을 낳고 시어머니로부터 구박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들(남편)을 낳아서 다행이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나의 남편은 할머니가 끼고 살았다고. 우리가 늘 듣는 할머니의 바지춤에서 다른 식구들 몰래 곶감을 꺼내 남편만 주었다는 할머니의 찐 사랑 이야기만 들었었다.  나는 말끔하게 생긴 사람한테 참 어울리는 시절이다 싶었다. 귀한 장남으로 자랐구나 했다.

지금, 신경 쓰고 있는 미간의 주름은 보지 못했다. 그 주름이 어쩐지 우리 아이들은 응석 부리며 보살핌을 받은 나이에 소를 돌봤던 그 흔적 같아 보인다.

아무튼, 남편이 아버지를 따라 새벽부터 소에게 지긋하게 갔다던 그 시절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꼭 엄마 아빠가 라테는 말이야~ 하면서 들려주는 그런 먼 이야기로 들렸다.


소튜브를 꿈꾸는 것을 보면 저자의 '소'는 진짜 그리움이 묻어있는 '그립소'가 맞았다.

그럼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안 그립소! 가고 싶지 않소! 추억으로 간직하겠소! 소가 내 인생에 있었던 건 맞소! 이 정도일까?

얼마 전, <그립소>를 언급하다 시골에서 일한 얘기가 나왔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아빠를 따라 소를 돌봤어! "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에서 나에게만 느껴지는 울컥하는 소(리)가 감지됐다. 내 아이들을 바라보니 그 어린 나이에~ 하는 생각에 뭉클해졌다. 어린아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아빠를 따라가 돌봄을 한 소는 젖소였다. 오래전에 젖을 짜던 얘기도 해주었는데, 그때는 아빠를 도운 청소년 아들의 영웅담을 듣는 것처럼 와~~ 탄성만을 지르며 귀담아듣지 않았고, 그렇게 우유를 마셨으니 나보다 20cm나 크지!라고 얘기했었다. 그 우유에 7살의 손이 닿았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님과 남편이 소를 추억하며 하는 말 중 나오는 똑같은 말을 저자도 말한다. '소를 굶길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소를 키우는 동안 여행 한 번 가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굶길 수가 없어서. 어디 가도 마음 편히 있지 못할 바에 아예 안 갔단다.


소는 하루에 두 끼, 아침과 저녁을 먹는다. 소를 키우는 집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볏짚과 사료를 먹인다. 볏짚 한 아름과 사료 한 바가지가 보통 한 끼 식사다. (......)

소는 농사일을 할 때 부릴 만큼 온순한 성격이지만 배고픔을 참을 만큼 인내심이 강하지는 않다. 밥때가 가까워져 오면 몇 마리 소가 벌써부터 소리를 지르며 얼른 여물을 달라고 보챈다. 사람이 나타나서 준비하노라면 부산스럽게 굴며 배고픈 티를 내곤 한다. (.....)

소 울음소리가 곧 잦아든다면 별일 아니지만 오래도록 소들이 난리를 칠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면 그 집의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굶겨도 소를 굶길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립소>, <소를 굶길 수 없다> 중에서 102p


유병록 시인의 소는 하루 두 끼를 먹이느라 여행 가기 힘들었다고 하니,

남편은 콧방귀를 뀐다. ‘가소롭소. 내가 이겼소.’ 하며 읊기 시작한다.

남편의 젖소는 하루 세끼, 하루 두 번 젖 짜기, 젖 짜긴 전 젖 주변을 깨끗하게 닦아주기도 두 번, 그림책에서 본 것처럼 통을 들고 다니며 짜서 큰 통에 붓기를 반복한다. 그 우유를 매일 새벽 4시~5시 우유 차가 와서 싣고 간단다.

소는 사료를 기본으로 주고, 봄에는 어린이의 키까지 자란 소먹이용 풀을 베어 여름까지 먹이고, 여름에 수확한 옥수수는 썰어서 땅에 묻어 발효시킨다. 이때 썩은 냄새는 아니지만 야릇한 시큼한 냄새가 진동한단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서는 벼를 묶는다. 옥수수와 볏짚을 푸고 담아서 우사에 쌓아 놓는 것이 어린이(남편)의 몫이었다.


결혼 초 남편과 형제들이 어렸을 적 맨솔의 짚 나르느라 엄청 힘들었네.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냥 대충 소 밥을 그렇게 부르나 보다 했다. 근데 맨슬에 짚? 맨솔에 담은 들어봤어도 맨솔의 짚은 또 뭐란 말인가? 어떤 연관이 있지? 하고 다시 정확한 단어를 물어보았고, 얘기해주었지만, 결국 나는 그때만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은 것처럼 하고 바로 잊어버렸다.

이제야 다시 물어보니 '엔스 레이지'라고 한다. 엔스 레이지……. 엔스 레이지…. 계속 소리를 내어본다. 엔슬에집.... 이것이 들어봤던 맨솔에 담과 소 사료니 소는 지푸라기를 먹겠지? 하는 생각이 엮어서 '맨슬의 짚'이라고 나름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바퀴 세 개 달린 수레에 그 지푸라기를 가득 싣고 날랐을 어린이를 그려본다. 이 엔스 레이지라고 하는 것이 바로 젖소에게 먹이는 사료용 옥수수이다.

소똥 냄새가 마을에 피해를 줘서 축사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고 들었고. 그래서 그 축사가 있던 지금의 밭에서 수확하는 감자며, 깨, 배추 농사는 더 잘 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 그러고 보니 집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거리라고 들었는데, 그럼, 거기까지 걸어갔다는 말? 건강을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한 걸음으로는 꽤 먼 거리이다.


내가 남편이 소와 함께한 이야기는 틈틈이 들은 이 정도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번 풀어봐도 좋을 것 같지만. 추억을 공유하라고 던져준 <그립소>는 쳐다도 보지 않고, 나만이 남편의 어린 시절 소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 고되고 힘들었던 그 여러 날도 시간이 흘러 그날과 점점 멀어져 돌아보면, 힘들었던 무게는 싹 빠지고 웃음만 남는 것 같다. 추억만 남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소를 안 키워본 내 생각.


그러고 보니 남편은 소를 닮았다. 크고 순한 눈망울도 그렇고. 밭에서 느릿느릿 쟁기를 끌고 끝까지 열심히 나가는 것처럼 늘 성실한 것도 그렇고, 저자는 소 꼬리에 휘둘려 맞으면 엄청 아프다고 말하는데 소 꼬리처럼 뭐 좀 매서울 때도 있다. 주말 아침 7시부터 "배고파~밥" 우는 것을 보니 딱 소다! 그것도 냉장고에 가득 채워 놓고 먹는 우리 집 냉장고의 우유처럼 늘 곁에 있는 젖소다! 고집은 뺀 담백한 뚝심만을 가지고 살기를 바란다.


나는 소가 아니라 감자밭이어서 나는 좋소! 어렸을 적 저자와 같은 고향인 옥천 할머니 댁에 가면 대문 오른쪽에 소가 있고, 그 앞에 소똥이 한가득 쌓여 있어서 코를 막으며 마당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소똥보다 감자와 마늘을 캐는 것이 더 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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