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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책장 Jan 10. 2023

소리길 위의 유턴 낭독학

언젠가는 말하기가 되길 바라며



“자기야! 여보! 다시 들어봐. 나 어제보다 어때? 뭐 조금이라도 나아졌어?”

“어. 좋아. 너무 좋아.”

“아니. 솔직하게 말해달라니까! 어머! 우리 반 선생님들 과제 올라왔다. 이거 들어보자.” 하며

단톡방에 올라온 우리 반 선생님의 낭독 파일을 열었다.     

 시댁에서 농사일을 돕고 집으로 올라가는 차 안의 풍경이다. 정체된 도로 위에서 나는 나의 목소리를 담은 녹음파일을 들려주고 있었다. 낭독 수업 과제로 받은 녹음파일을 카카오톡 단체 톡 방에 올리기 전에 남편에게 어떤지 물어보는 중이었다. 남편은 이제 녹음파일을 틀자마자 좋다고 한다. 인제 그만 듣고 싶다는 얘기다. 계속 똑같은 거 들려주고 똑같은 질문을 하냐는 속말이다.

 과제로 올라온 우리 반 선생님의 낭독이 흘러나온다. 나와 다른 결의 소리를 들으면서 남편이 한마디 한다.     

“자기야. 자기는 자꾸 소리를 먹어. 이 선생님 봐봐. 소리가 앞으로 시원하게 쭉 나가잖아.”

그때, 뒤에서 큰 아이의 한 마디

“맞아. 엄마. 다른 선생님들은 소리가 직진인데 엄마는 유턴이야!”라고 하면서 손가락을 입 앞에 대고 포물선으로 앞으로 쭉 뻗는 시늉을 한 다음 또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금 앞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손짓을 보여준다. 뭐 이렇게 손가락으로 소리의 길까지 비교해서 보여줄 필요가 있겠니! 아들!

  나는 아이가 고속도로 위에서 절묘하게 엄마 낭독을 진단하는 표현에 빵 터지고,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선생님들의 소리를 부러운 귀로 듣는다.     

  얕고 거친 호흡으로 겨우 한 문장을 뚜걱뚜걱 갈 때가 많다. 또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를 방해하는 돌덩이가 내 앞에 놓여 있다. 그 이물감을 치우기 위해 많은 날을 보내기도 한다. 아무런 계산도 없이 무식하게 하염없이 목에 멍이 들 정도로 입 밖으로 소리를 내는 날도 있다. 그렇다고 매일 그늘진 소리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동기들이 만들어준 따뜻한 볕뉘에 잠시 머무르며 충천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딱 꽂혀서 나의 소리 길 위에 호흡관이 불룩불룩 터질 것 같은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요리보고 조리 봐도 재밌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고난의 소리길만 적어 놓은 것 같은데. 이 길은 이 고난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찐 재미인 것 같다. 매일 뚜걱 거리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를 외치지만 한 번 보고 덮었을 책을 두 번, 세 번 보면서 보이지 않았던 작가의 의도를 알아챘을 때의 희열은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오줌이 마려워 오만가지 인상을 쓰고 참고 가다 졸음 쉼터를 만난 기분이다. 뭐 이렇게 가다 보면 작가와 동일시되어서 그의 글을 내 것처럼 읽는 길 위에 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유턴을 백 번 하든 가야 할 방향만 알고 있으면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낭독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그 공간에 머무는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계속 돌다 보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면 이 소리길이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영역에서 이렇게 하염없이 제자리걸음을 했다면 벌써 방향을 바꿔 다른 목적지를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헛발질하는 열정도 내겐 재밌는 이 소리길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 소리길을 끝까지 가지 않아도 좋다. 가는 길 위에서 큰 아이의 유턴 낭독학이 어쩐지 기분이 좋다. 평소 엄마 소리 좀 들어보라면 바쁜 일이 있더니, 차 뒷좌석에 앉아 핸드폰만 뚫어져라 보면서도 내 소리를 듣고 엄마의 낭독은 유턴이라고 현주소를 말해준 것이 사랑으로 느껴진다. 나의 낭독 역사 현장에 함께 하는 아이가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거짓말이다. 나는 이 소리길의 끝을 소리 벗들과 함께 끝까지 가보고 싶다. 그 끝에 북내래이터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것이 더 나의 소리길 끝에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호흡 길이 턱턱 막히더라도 하나씩 잡고 가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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