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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책장 Aug 14. 2023

아빠들의 야구 리그 파파스 경기

고개들면 눈부신 태양이 내리 쬐는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까막득한 건 오전 8시부터 아이들의  4경기를 보고 난 후 오후 4시 30분에 하는 파파스 경기다. 아이가 참여하는 전국유소년야구대회는 연령대별 주니어, 유소년, 꿈나무, 새싹 리그가 있다. 그리고 하나의 리그가 더 있는데 파파스 리그다. 아이들의 경기를 응원하러 온 김에 아빠들의 리그도 펼쳐보자는 취지다. 전국에서 참가하는 파파스 팀이 많고 적음에 따라 정식 경기가 되기도 하고 친선경기로 머무르기도 하는 것 같다. 작년의 여름보다 더 뜨거운 이 날씨에 야구를 하겠다고 하는 아빠들이 많을리가 없다. 총 5팀이 참가했다. 그래서 친선경기로 이루어진다. 야구는 투수 혼자 하는 스포츠라고 하던데 우리 아빠팀의 두 명의  투수 중 한 명은 팔이 아파서 할 수 없고, 한 명은 일정이 있어 나오지 못했다.  딱 야구할 수 있는 숫자 9명을 채워 아주 열악하게 신청했다. 그럼 도대체 누가 투수해? 그냥 더운데 하지 말라!는 말은 내 입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다. 이렇게 가서도 당일 아픈 선수가 또 생겼다. 친선경기를 표방한 동네 야구 같은 느낌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야구하면 절레절레 고개 흔드시는 분을 껴 넣고 주니어 선수 한 명을 영입하는데 성공해서 9명을 맞췄다. 조직적인 느낌 일도 없어 보이는 이 땜빵도 능력이라면 능력. 팀은 어떻게든 만들어진다.

 어쩐지 남편은 아들을 지난주에 붙잡고 아빠 투수할 테니 네가 포수 좀 해 달라고 했다. 팔 하나만 들어도 땀이 줄줄 나는 여름날 둘이 나갔다가 헉헉대며 들어왔다. 아들은 "아빠 투수는 하지 마! 공이 너무 느려"라고 말하면서 에어컨 아래서 땀을 식혔다. 누구든 해야 했고 분명 돌아가면서 공을 던질 것을 나름 예상했던 것이다. 

 파파스 경기 전 진행한 아이들의 경기가 모두 다 져서 기분이 고만고만한 상태였다. 사실 아빠들 경기는 이기든 지든 별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보지만 이왕이면 또 기분이라는 게 있으니 하고 5번째 경기 응원석에 앉았다. 

 멀찌감치 앉아 평정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투수 자리에 선 남편이 정말 깔끔한 공으로 한 명, 한 명 상대팀 아빠들을 벤치로 보내는 거다. 이게 뭔 일이래. 어쩌다 공을 치면 뒤에서 아픈 팔로 서 있는 유격수 아빠가 든든하게 공을 잡아주어 1루에 입성도 못하게 하는 거다. 이 유격수 아빠는 파파스 팀의 에이스로 팔이 아파서 선발 투수 자리에 서지 못한 분이다. 게다가 각자 아이들이 못 쏘아 올린 공의 한을 풀어주기다로 하듯이 다들 쭉쭉 뻗어 멀리멀리 공을 날려보내는 게 아닌가. 아빠들보다 아이들이 이렇게 해야지! 엄마들은 편안하게 관라을 했다. 아무튼 남편은 이날 부상 투수 덕분에, 약속으로 참석하지 못한 투수 덕분에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면서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6이닝 완투승은 앞으로도 없을 개인의 역사로 남을 것 같다. 다음날 한 경기가 더 남았다. 

 이번 파파스 경기에는 5팀이 참가해서 친선경기를 하는데 홀수이다 보니 하필! 왜! 우리 팀이 두 팀을 상대하게 되었다. 이미 근육통이 시작된 아버님들, 어제보다 더 더운 날씨, 아이들의 경기가 끝나고 난 후 오후 4시 30분 시작. 게다가 경기가 끝나면 순창에서 안양으로 올라가는 길도 만만치 않은 상황. 어른으로 사는 건 이렇다. 현재를 살자 하고 집으로 올라갈 고속도로를 생각하고 내일 아침 야구 가방을 어깨에 짊어진 것 같은 피로를 메고 출근할 생각 등 고려할 것이 많다. 여차저차 기권을 하자고 입을 모았다. 나도 반겼다. 어제 재미 한 번 봤으니 이대로 좋다. 

 상대 팀에게 우리의 뜻을 전하니 자신들은 처음으로 파파스 경기에 나온 신생 팀이란다. 유니폼을 처음으로 맞춰 입고 나온 날이다. 이날을 준비했다. 기대를 많이 하고 왔다는 것이다. 나의 여러 가지 몸 상태와 상황을 생각하지만 우린 또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들 아닌가. 또 약속은 지켜야한다. 아빠들의 첫 경기를 생각하며 그렇게 기대하고 왔으면 우리가 해줘야지. 아주 넉넉한 말들을 뽑아내면서 자신들의 첫 경기에서 콜드 패했던 추억을 꺼낼 땐 콜드 승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지친 몸을 뚫고 위로 나왔다. 그리고 저 멀리서 퍼실 세제를 한 번 거치고 나왔을 법한 새 파란색의 유니폼을 입고 운동을 하는 상대팀 아버님들의 비장한 몸짓이 보였다. 폭염 경고가 내려진 오후 2시다. 이게 이럴 일이냐고요! 덥다고요. 더운데 저렇게 힘을 빼면 안 된다며 파파스 경력 팀의 여유 있는 자의 모습으로 쉬었다.

  순창에 있는 세 곳의 경기장에서 진행되어 매 경기 끝날 때마다 이동과 주차를 반복했다. 팀 야구 버스가 고장 나서 학부모의 차에 아이들을 줄줄이 태워 이동했다. 고장 난 야구 버스 덕에 잠깐 아이를 차에 태울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배고프고 더워서 힘이 쭉쭉 빠져서 세상 불만 가득한 것 같은데 집은 안 가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더위에 지친 건 지친 거고 재밌는 건 재밌는 모습이다. 이런 아이들의 오늘 경기 성적이 좋지 않았다. 아침 일찍 한 유소년 청룡 형님들은 본선에 올라갔다. 별이가 속한 꿈나무 백호는 다음 팀의 성적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이렇게 아이들의 경기를 마치고 드디어 4시30분 파파스 경기가 시작되었다.

  종일 북적북적했던 운동장은 저녁때까 되어 엄마들이 "밥 먹어라" 부르는 소리에 우르르 빠져나간 듯 조용하다.

파파스 경기를 하는 두 팀만 남았다.  파파스 경기에는 심판도 주 심판 한 명만 있다. 기록도 없다. 내일의 출근을 생각하며 가볍게 한다고 말하면서 승부의 몸은 최선을 다 하지만 맘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어제의 투수였던 남편이 투수 자리에 섰다. 보아하니 처음부터 던지는 공이 어제와 다르게 내 눈에 아이들 선 긋기의 점선처럼 보인다. 그렇게 가더니 위에서 떨어지고 옆으로 삐죽 튀어나간다. 수비는 어제의 바짝 올라온 몸 컨디션은 바닥으로 밀어 넣고 계속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반면 상대팀 아빠들은 많은 인원 탱탱한 기운이 솟구친다. 이렇게 극과 극의 팀 컨디션. 고전을 면치 못한 우리 팀 아빠들은 투수 자리를 교체하며 첫 투수의 경험을 호되게 하는 모양새다. 이런 아빠들은 아들이 하는 야구를 보고 이래라저래라 말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름 절도 있는 동작의 투수와 안타 치는 우리 팀의 공을 안정적으로 받아내고 홈런 칠 의지를 불태우는 이글이글 눈빛을 가진 상대팀 아버님들을 본다. 야구의 기본 목표는 주자가 출루해서 3개의 베이스를 밟아 홈으로 들어와 점수를 쌓아 이기는 것인데, 친선과 승리의 두 마리 토끼를 균형있게 잡고 싶을터였다. 그러니 계속 포볼 출루로만 승리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점수가 간절할 때는 포볼로 나가는 것에 환호하지만  점수가 5,6,7점 차로 벌어지면 진짜 야구를 하고 싶지 않을까?  포볼로 운동장 돌려고 예까지 온 것은 아닐진대 볼볼볼볼 4박자 구령에 맞춰 한 칸씩 밀어내기 자동 설정을 하는 보드판위에 말도 아니고 탁탁탁  탕탕탕 안타 치고 홈런 쳐야 제맛일 텐데.  겨우겨우 경기를 이어 가던 아빠들은 체력에 한계를 느끼며 다시 처음 투수를 본 남편이 투수를 봐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하며 투수들도 돌려막기로 하고 있었다.  우리 다 같은 처치의 몸이니까 다 수긍하는 그야말로 친선경기가 뭔지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어제 한껏 올라간 어깨 뽕은 다시 제자리로 왔고, 친선경기는 그냥 즐기면서 하는 거라고 다시 본래 토끼 취지로 돌아왔다. 

 아이나 아빠나 힘들어도 또 글러브를 끼고, 야구 방망이를 들 것이다. 승탕과 패탕을 번갈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야구인의 근육이 하나둘씩 새겨질 것이다. 한껏 올린 승리의 온도를 신나게 즐기고 늘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차가운 패를 경험하며 이완과 수축의 반복으로 더 단단해진 모양새를 갖출 것이다. 폭염 속에 패를 쌓는 경험이 너의 진짜 패를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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