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메르헨> 엄지둥이 재봉사의 여행
<그림 메르헨> 엄지둥이 재봉사의 여행
재봉사 부모와 사는 엄지손가락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작은 아이 '엄지둥이'는 작지만 용기는 하늘을 찌른다. 세상 밖으로 나가 여행할 의지 가득한 모습이다. 엄지둥이는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고 얘기한다.
나는 매년 살이 쪄서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급성장기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들을 쫓아가기 무리다. 아빠의 몸무게와 발 사이즈를 훌쩍 넘어 큰 아들이 엄지 둥이처럼 세상을 나간다고 하면, 아니 더 작게 일박 이일 여행이라도 다녀온다고 하면 " 좋다. 내 아들! 과도라도 들고 가거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숙박과 교통편, 먹을 것, 안전 등을 알아보며 티 나지 않게 끙끙 거리며 걱정하고 있을 것 같다.
엄지둥이 아빠와 엄마는 그런 점에서 아들에 대한 믿음이 크다.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하라고 가르쳤을 거것 같다. 아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겠다는 말 한마디에 바로 승낙한다. 그리고 누구도 크게 두려워할 것 같지 않은 옷감에 꽂아 있는 핀 침을 꺼내 칼을 만들어주었다. 바깥세상의 무서운 것들을 향해 휘두르라기보다 손에 쥐고 있으면 마음의 안정과 용기를 낼 수 있는 아버지의 물건으로 만든 부적 같은 느낌이다. 늘 아버지가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무슨 요리를 하는지 궁금한 엄지둥이에게 직접 보라고 한다. 남을 의식하며 평범이라고 하는 잣대에서 못 미치는 자식 같으면 이래도 걱정, 저래도 조심시키고 할 텐데. 이 부모는 그렇지 않다. 직접 경험하게 한다. 이런 양육이 아이를 '냄비에 올라오는 김을 타고 굴뚝 위로 올라가' 세상 밖을 모험하게 한다. 참 재밌는 상상이다. 냄비의 김을 타고 굴뚝으로 올라가게 하려고, 이 장면을 위해 엄지둥이를 만든 것 같다.
여기저기 떠돌다가 간 곳은 재봉 일을 하는 곳이다. 부모님이 하던 일을 보아왔으니 가장 편안한 장소이고, 일일 것 같다. 음식이 마음에 안 들어서 감자는 너무 많고 고기는 너무 적다고 투정 부릴 땐 또 큰 아들이 떠오른다. 짜장밥을 보고 감자는 너무 많고 고기는 도대체 어디 있냐고!!! 어쨌든 엄지둥이는 하고 싶은 말 하고 쫓겨난다.
이번엔 도둑들의 청에 임금님의 금돈을 훔쳐준다. 도둑들은 수많은 금돈을 보고 두목이 되어 달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세상이 궁금한 엄지동자는 거절한다. 그리고 여행 가서 주워오는 기념 돌멩이 마냥 동전 하나. 딱 갖고 다닐 수 있는 동전 한 개만 갖고 다시 떠난다.
그다음에는 여인숙으로 가서 하인으로 일을 한다. 같이 일하는 하인들의 나쁜 짓을 고자질하며 미움을 사고 소의 먹이가 되고, 소를 잡아 토막 내는 칼이 내려쳐도 엄지동자는 잘 피해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위기에 처하면 힘도 그만큼 나는 법이랍니다.
결국 소시지가 되어 겨울까지 그 소시지를 먹는 사람이 있기 전까지 갇혀 있는다. 워낙 작은 친구라 소시지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여우에게 먹히고서는 닭과 거래를 한다. 닭이란 닭은 모조리 주겠다고, 그냥 닭 몇 마리가 아니고 모조리..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믿은 대로 아버지는 여우에게 닭을 몽땅 내준다. 그리고 알지만 사랑을 늘 확인받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묻는다. 왜 닭을 몽땅 주었느냐고
"원, 얘야, 아버지는 마당에 있는 닭들보다 아들을 훨씬 사랑하잖니." 당연한 걸 왜 묻니~
험한 세상 구경을 한 엄지동자다. 엄지동자이기에 가능했던 모험과 위기의 순간이었고, 극복의 여행이었다. 이 여행으로 엄지동자 가슴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고기가 없어도 불평하지 않고 엄마의 밥을 감사히 먹게 되었을까? 임금님은 그 보물 아니고도 잘 수 있겠지? 도둑은 그래서 부자가 됐을까? 앞으로 같은 동료를 고자질하지 않고 지혜롭게 해결할 방법을 찾아볼까? 확실한 건 부모와의 끈끈한 사랑으로 작아도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갈 용기는 여전하리라는 생각이다. 엄지동자의 모험담이 매일 드르륵드르륵 박는 재봉하는 소리와 섞여 나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