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메르헨>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그림/ 김서정 옮김/ 문학과 지성사
개구리 왕자 이야기는 어린 시절 책을 안 읽은 나도 들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개구리 왕자와 공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한 명의 존재가 더 있다. 바로 개구리 왕자의 충성스러운 하인 '하인리히'이다. 그냥 재미있게만 읽었던 개구리 왕자를 보니 물음표가 한두 개가 아니다.
공주와 왕자
모든 것을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황금 공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물속에 빠트린 황금 공을 건져만 준다면 옷, 보석, 진주, 황금 왕관까지 다 내어줄 정도로 공주가 생각하는 황금 공의 가치가 높다. 공주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 귀하디 귀한 황금 공. 황금공은 공주에게 어떤 의미일까?
물속과 밖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개구리에게 공을 가져다주는 일은 너무 쉬운 일이다. 황금 공을 물속에서 건져주는 일과 공주의 단짝이 되는 것을 놓고 저울질을 한다고 하면, 기울기가 심하게 차이 날 것 같은데. 그건 내 생각이고, 황금공이 물에 빠져 속상한 공주를 개구리가 된 왕자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물속에 들어가 공을 꺼내 주어 공주의 단짝이 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마법에 걸리면 마법을 푸는 방법을 알던데. 벽에 부딪히는 가학적인 방법을 써야 풀린다는 것을 왕자는 알고 있었을까?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후가 다르다더니 공주는 개구리와의 약속을 깨려고 한다.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 덕에 개구리왕자는 공주와 함께 할 수 있다. 여기서 뭐 약속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주려는 건 아니겠지?
제목이 '개구리 왕 혹은 강철 하인리히' 임에도 초반 개구리와 공주 얘기만 쭉 이어진다. 이럴 거면 '공주와 개구리 왕자'로 해되 되겠지만 이야기 끝에 가서 나타난 하인리히는 가슴에 두른 강철 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혹은', '또는'을 일상에서 많이 본다. 특히 식당 메뉴판을 보면
까르보나라 스파게티 혹은 로제 스파게티
닭다리 2개 또는 핫윙 6개
좌우가 비슷한 재료의 다른 맛이라던가 비슷한 가치라고 놓고 선택하게 한다.
개구리 왕자와 대등한 존재감일 것이라 생각되는 강철 하인리히
하인리히는 개구리 왕자가 마법에 걸렸을 때 고통과 슬픔이 튀어나와 강철 띠로 가슴을 조여 맸다고 한다. 왕자의 또 다른 존재일까? 집사의 아들로 어렸을 적부터 왕자와 형제처럼 지냈을 존재? 그 이상?
개구리 왕자는 강철 하인리히에게 성장하는 아이이지는 않을까? 커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지만 몸과 마음이 아파 악을 쓰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고통스럽다.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마냥 슬퍼할 수 없다. 마음 단단히 먹고 무너지지 않고 강철 같은 버팀목이 되어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하인리히도 도와주고 싶지만 왕자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니 옆에서 지켜보는 슬픔이 튀어나와 개구리 왕자만큼 고통스럽다.
"하인리히, 마차가 부서진다!"
"아니에요, 왕자님, 마차가 아니라
제 가슴의 띠가 부서지는 거예요.
왕자님이 개구리가 되어
샘가에 앉아 계실 때
크나큰 고통으로 매어 놓은 띠 가요, "
무거운 강철 띠가 부서지며 조각조각 떨어지는 소리
꽉 막혔던 응어리가 풀리는 소리
긴장의 날카로운 철끈이 놓아지는 소리
이제 됐다고 마음 놓는 소리.
그러나 자식이 어미의 그 심정을 개의치 않고 행복을 찾아 나가듯. 공주와 함께 행복을 향해 가는 왕자는 알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