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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Jun 22. 2021

고객님의 카드가 보이스피싱에 노출되셨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

다른 사람한테는 한없이 관대하시면서 왜 가족한테만 그것도 가장 소중한 사람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내 목소리는 점점 떨렸다. 손도 바들바들 떨려 간신히 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그래, 알았어. 내가 전화할게. "


사건은 며칠 전 엄마가 받은 카톡에서 시작되었다.

"엄마, 나 핸드폰 액정이 깨져서 지금 바로 수리해야 하는데 너무 급해서 

엄마카드 앞, 뒤면 사진 찍어서 좀 보내주세요."

엄마는 앞, 뒤 재보지도 않고 허둥지둥 급히 사진을 찍어 내게 보냈다는데...

두세 시간 후  카드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으셨다.

"고객님의 카드가 보이스피싱에 노출되어 도용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지금 바로 경찰서에 가셔서 신고해주세요."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늦었다는 건 많은 경험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급히 나한테 전화를 하셨고, 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엄마를 애써 진정시키며 괜찮다고

그래서 얼마나 당했냐고 물었더니 자그마치 백삼십이란다. 헉 

"엄마 그 정도는 괜찮아. 백삼십만 원 내가 보내줄게."

"아니,,, 써보지도 못한 돈을 내가 흑흑흑"

말을 잇지 못하며 정말 엉엉 우셨다.

난 돈보다 엄마가 까무러칠까 봐 너무 불안했는데 옆에서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멍청하게 어디 당할 데가 없어서 그런 놈한테 당해 가지고 쯧쯧"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똑똑하다고 믿는 아버지는 안하무인이었다.

"엄마 어서 은행에 가보세요. 그리고 경찰서도 다녀오시고요."

엄마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던 그날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고 은행과 경찰서를 번갈아 다녀오셨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아버지 대신 난 사고 처리를 해야 한다.

"여기 00 경찰서인데요 구글에 계정 로그인하시면 구매내역 확인하실 수 있어요.

거기서 취소하시고 구매 취소 메일을 구글에 보내시면 결제 취소 절차 할 거예요. 그렇게 해서 환급받으신 분들 많아요. "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 오후 모든 일을 멈추고 카드 본사로 경찰서로 전화를 돌리며 방법을 알아봤으나 

그 사기범들은 구글 계정에서 구매한 건 아니었고 따라서 나도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행히 카드사에서 대리로 환급절차를 진행해준다길래 엄마한테 다시 은행에 가셔서 담당 직원한테 접수하시라고 전화로 일러드렸다.


그날 오후 늦게 맑은 목소리로 엄마는 다시 전화를 하셨다.

"세상에 좋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엄마가 세상 공부 제대로 했다. 경찰서 가니까 울고 있는 나를 여럿이 와서 물 주면서 달래주고, 은행 가니까 하나하나 자세히 안내해주고 세상에 그리 좋은 사람들이 많은 줄 내가 어찌 알았겠니. 참 감사해 감사한 일이야."

그러시면서 한 마디 덧붙이셨다.

" 걱정말라더라. 다 받을 수 있데. 조금 기다리래. 애썼다."

엄마는 그 말이 가장 기뻤을 것이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남편 눈치 봐가며 자식들이 준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저축한 그 돈을 정말 앉아서 그냥 줘버린 꼴이 됐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우리 아버지는 사법고시에 실패하시고 공직에 계시다 퇴임하셨다. 재임기간 동안 무궁화훈장을 두 개나 받으셨고 누구든지 붙잡고 자신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어려운 문자를 써가며 이야기하기 좋아하며 돈보다 명예가 중하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아주 영리하고 본디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주변에 사람이 없다. 누구나 다가가기 쉽지 않았고, 언행이 일치하지 않으며 틀린 건 그 자리에서 꼭 틀렸다고 말해야 성미가 풀리는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 눈에 엄마가 얼마나 어리석어 보였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하나에서 열까지 다 해주니 세상 물정 모르고 당했지. 그래서 이번에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두 손 놓고 있었다. 나 없을 때 이런 일 당하면 또 속수무책으로 당할 거 아니냐."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다.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럽다. 부부가 뭘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등 돌릴 때 그 사람 하나 만은 내 곁에 남을 수 있고, 오롯이 내 편을 들 수 있으며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남편이고 아내가 아닐까? 그런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셨을까? 이렇게 재고 저렇게 잴 수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정의를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더니 이 일은 명목이 없어서일까?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금할 길이 없다. 

아무래도 이 두툼한 벽은 조금 오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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