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집중할 것
그 여자는 무섭게 집중하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지도 않았다. 겁을 먹고 떨어질까 봐 그랬을 것이다. 심판하는 사람들을 올려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이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는 걸 알면 두려움이 밀려들까 봐 그랬을 것이다. 그저 무섭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가 내게,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가의 시작 p118
우연히 들른 미술관에서 피에르 보나르의 곡마사라는 그림을 보고 삶의 용기를 얻었다는 줄리아 알바레스. 대체 어떤 그림일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어떤 모습이 여자가 무섭게 집중하고 있다고 느낀 걸까? 그림에 무지한 나의 잘못인가? 무튼 저마다 느끼는 건 다르니까.
어느 순간 나는 집중은 곧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내가 오로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그냥 스쳐 지나가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작가의 삶이 그렇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소개할 때 반드시 놓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작가 소개. 작가의 이름과 주목할 만한 배경을 꼭 짚어준다. 그럴 때마다 놀라운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하는데 작가 소개에 인용된 사진 한 장, 책 표지 하나를 보고 그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작가의 인생을 줄줄이 외울리는 없고 그만큼 몰입해서 읽었다는 것.
운동
주 5회 2시간 이상 걷기. 20대에는 운동에 집착해서 주 5회 4시간을 운동하는 시간에 쏟아부었다. 이유는 단 하나. 나도 가녀리고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신 강철체력을 얻었다. 지금은 시간도 부족하거니와 그렇게 운동할 수 있는 체력이 안된다. 대신 운동에 대한 열정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져 두 아이 모두 매일 운동은 하고 있다. 사회생활하며 잠시 머물렀던 이모집에서 이모는 내가 건넨 한 마디에 지금까지 열심히 운동하고 있고 덕분에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이모는 왜 운동 안 해?"
활자 읽기
굳이 책 읽기라고 쓰지 않은 건 닥치는 대로 읽기 때문. 활자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은 읽고 나서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메모를 하고 있다. 앗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건 집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그럼 활자 읽기가 좋아하는 일에서 낙오되었을까? 이 부분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아침에 꼭 좋은 인사 건네기
우리 부부는 새벽형이다. 둘 다 잠이 없는 관계로 5시면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은 5시에 일어나 잠시 책을 보고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6시에 출근을 한다. 나는 곧바로 양치를 하고 옷을 입고 산으로 향한다. 내가 나가기 전에 꼭 남편에게 좋은 하루를 보내기를 담은 인사를 건넨다. 새벽길을 걷고 부지런히 돌아오면 다음은 아이들 차례다. 우선 첫째에게 한 시간 뒤에는 둘째에게 꼭 문밖에 배웅을 하며 꼭 껴안고 사랑한다고,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응원해준다. 이런 의식은 사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내게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상대에게 내가 지닌 좋은 에너지가 전해지기를 바라는 성스런 기도와도 같다.
글쓰기 수업을 한다고 목요일 2시면 이제 막 봉우리를 터트릴 여자 친구 넷이 나를 찾아온다. 같은 책을 읽고 1200자 분량의 독서감상문을 숙제로 냈다. 공개적으로 읽고 다 같이 감상해보자고 제시했는데 아이들이 무슨 엄청난 대회의 수상자라도 발표하듯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우와 대단한데. 글이 막힌 곳 없이 깔끔하고 구성도 좋아. 맞춤법도 거의 안 틀렸네."
주인공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내가 하는 한 마디에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집중의 순간이다.
나도 똑같다. 남에게 공개된 글을 쓰는 건 혼자 일기장에 쓰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이 순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설사 누군가 내 글을 비판하고 평가한다 할지라도 오늘 쓰지 않는 나보다 글을 쓴 나를 칭찬한다. 그게 바로 작가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