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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 Jul 01. 2021

되돌려 준 시선

집에서 일터까지 15분 컷인 루트가 있다. 출근할 때면 늘 같은 시간에 꼭 그 길로 간다. 단지 옆에 길게 나있는 나무 산책로가 너무 예쁘기도 하고 아스팔트가 아닌 흙을 밟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불쾌한 일이 생겼다. 산책로 끝에서 일터까지 단 시간에 가려면 지나야 하는 공원이 있는데 언젠가부터 그곳 벤치에 앉아 매일 내가 지날 때마다 위아래로 훑는 것은 물론이고, 얼굴도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년 남성의 존재가 인식됐기 때문이다. 


왜 그런 아저씨들은 사람을 그렇게 당당하게 훑는 걸까? 나의 뭐가 그렇게 궁금하세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걸을 때도 자주 느껴왔던 권위적 시선들. 아주 오래된 불쾌함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선을 피해버리거나 빠르게 지나치는 것을 선택해 왔지만 1,2년 전부터 그러지 않기로 혼자 다짐했다. 그냥 똑같은 방식으로 쳐다봐주기로 했다.


-


똥은 더러우니까 피하는 거지 생각하며 다른 길로 출근을 할까도 잠시 고민했었지만. 그 남성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나무 길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되었기에 여느 때처럼 공원길로 향했다. 역시나 그 아저씨가 앉아 있었고 그 앞을 지나기도 전부터 시선이 느껴졌다.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아저씨 얼굴을 쳐다봤다. 사실 시선을 느끼는 것이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2%의 가능성이 있었는데 역시나 였다.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앞을 지나며 천천히 그의 행색을 위아래로 노골적으로 훑었다. 신발부터 얼굴까지 내 시선이 올라오니 시시하게도 그 아저씨는 놀란 듯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떨구었다. 참 한심한 사람이구나 한숨이 나왔다. 시선의 주체가 내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


그래서 다음날 어떻게 됐냐면, 놀랍게도 그 남성은 공원 내 운동기구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일부러 고개를 크게 돌리지 않으면 자신을 보지 못하는 곳이었다. 서서 운동을 하는 기구여서 벤치에 앉아있을 때 보다 눈높이는 더 올라가 있었다. 역시나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 며칠은 찰나의 순간이기에 인식하지 못해서 그냥 지나왔었는데 오늘 아침엔 마음을 좀 먹고 현관문을 나섰다.


산책로가 끝나갈 즈음 눈을 들어 미리 살피니 두리번거리며 운동 기구 위에 가만히 서있는 남성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가 지난번처럼 위아래로 그를 훑으며 운동기구 뒤쪽으로 갔다. 그 상태로 반 바퀴를 돌며 그의 옆태 뒤태까지 쭉 보느라 그 남성은 졸지에 진열대에 놓인 물건처럼 내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뒤통수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지막에 얼굴을 쳐다보니 역시나 내 눈을 피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 모든 것은 5~6초 정도에 일어난 일이다.


내일 출근길에 그 한심한 사람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불쾌한 시선을 억지로 감당하거나 길을 돌아서 가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고, 나는 가던 길 계속 가야징.



오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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