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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 Dec 26. 2022

너의 뒷모습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중심가에서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외진 곳에 자리해 있던 우리 학교는, 봄이면 벚꽃 만개하는 정문과, 소나무와 벤치들이 어우러져 있는 야외 강당을 자랑하는 여고였다. 교복 예쁘기로도 소문이 나있었는데 정작 우리들은 치마 밑에 형광색에 가까운 촌스러운 민트색 체육복 바지를 받쳐 입고 생활했다.

중학교 생활 내내 귀밑 3센티를 강요받았었던 우리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각 학교들에 두발 자유화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는 너나 할 거 없이 치렁치렁 머리카락을 기르고 다녔다. 보다 못한 국어 선생님은 손목에 노란 고무줄을 몇 겹씩 끼워놓고 다니면서 산발한 아이들이 눈에 띄면 그 자리에서 머리를 묶어주곤 하셨다. 두피가 너무 당겨져서 눈 꼬리가 사납게 올라갈 지경으로 꽉 잡아당기시며 "풀지 마! 안 예뻐! 안 예뻐 이 녀석들아." 하셨다. 선생님의 그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왜냐면 우린 예뻐지려고 기른 게 아니라 주어진 자유를 누리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기른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2학년이 되고, 자유가 일상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 둘 머리를 자르거나 묶기 시작했다. 국어 선생님도 더 이상 노란 고무줄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셨다.


학교에서 나는 조용한 아이였다. 음악 학원이나 교회에서는 제법 활발했지만 학교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좋아하는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싫어했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고 답답한 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에 매일 지치지도 않고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학교에서는 최대한 정신을 흐리고 있었다. 친구를 적극적으로 사귀지도 않았고 말썽을 부리지도 않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저전력 모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혼자 다니게 되었는데, 그런 나를 가끔씩 무리에 끼워주던 반 애들이 있었다. 그 애들은 서로를 동물 이름으로 불렀다. 낙타, 거북이, 펭귄, 나무늘보가 그 애들의 별명이었다. 생김새가 묘하게 닮았거나 행동이 비슷해 붙여진 듯했다. 무리의 온전한 일원이 아니었던 나에겐 동물 이름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나를 춘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게 있거나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말을 걸면 실없이 웃기만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나에게 이름 하나가 더 생겼구나. 하는 정도로 받아들였다.


착한 애들이었다. 나를 좋아해 주었다. 점심시간이면 다 같이 급식실로 달려가 밥을 먹고, 식사 후에는 들어갈 때와는 다르게 여유로운 걸음으로 매점에 들렀다. 가지고 있는 동전들을 모아 과자 몇 봉지를 사서 교실로 돌아와 함께 먹었다. 양파깡 새우깡 같은 각종 깡들을 섭렵하다가 누가 지폐를 내는 날엔 다이제스티브를 사는 식이었다. 누구 생일에는 초코파이 한 상자를 사서 탑을 쌓아 그 위에 요거트를 뿌리고 초를 꽂아 파티를 해주었다. 즐거웠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이곳에 있기 싫어." 하는 내 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나는 슬그머니 무리에서 빠져나온 뒤 내 자리로 돌아와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창가 맨 뒷자리에 있던 내가 오전 수업 시간 내내 잠을 자도 선생님들이 깨우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건 나를 운동부로 착각하셨을 때다. 그날도 그랬던 거 같다. 침을 닦으며 일어나 보니 책상 위엔 나를 깨우다 실패하고 먼저 밥 먹으러 간다고 적혀있는 낙타의 쪽지가 있었다. 빵이나 사 먹을까 생각하며 턱을 괴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비가 올 듯 어두운 회색빛 하늘. 제각각의 모양으로 기괴하게 뻗어있는 소나무 가지들. 저 멀리 보이는 낡고 더러운 후문.



"우리 내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로 가는 거 알아?"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니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창밖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혼잣말인가 싶었지만 이내 그 아이는 몸을 돌려 날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학교 안쪽에 공사하고 있잖아. 못 봤어?"

"으응. 뭐 짓고 있는 건 아는데...... 우리가 들어간다고?"

"응. 고3을 위한 건물이래. 우린 새 건물에서 수능 공부하는 거야."


그렇구나...... 그런데 넌 누구야? 언제부터 내 앞자리에 앉아있었던 거야?라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여느 때처럼 말을 아꼈다. 조금 귀찮았다. 그러자 우리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이상하게도 그 침묵이 참 편안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그 아이는 내 쪽으로 더 바짝 다가와 물었다.


"너 내 이름 모르지?"

"...... 응."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나도 니 이름 몰라. 춘삼이가 니 본명은 아닐 거 아니야."

"난 한소리야. 한솔이 아니고 판소리할 때 소리."

"아 그렇구나. 이름 특이해서 좋겠다. 나는 지혜. 김지혜. 존나 평범하지."

"아니야. 예쁜데 왜. 난 내 이름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들 없어서 싫어."


거짓말이었다. 나는 내 이름을 좋아했다. 참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지혜는 나를 흘겨보는 듯하더니 앞으로 휙 돌아서며 말했다.


"거짓말."


거짓말. 그게 우리 대화의 끝이었다. 이후로 지혜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습관처럼 지혜의 뒷모습을 보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창밖 보듯 그 애의 머리를 보며 멍을 때렸던 것 같다. 빛에 따라 갈색이 되거나 진한 검정으로 변하는 머리 색. 곱슬기 없이 곧게 뻗은 머릿결을. 그러다 겨울 방학을 맞이했고, 우린 3학년이 되었다.



지혜가 말 한대로 우리 학년은 방학 사이 완공된 새 건물로 들어갔다. 기역 자 모양으로 지어진 3층짜리 건물이었다. 우리 반은 무용, 미술, 플로리스트, 연기, 실용음악 등 예체능 쪽으로 진로를 잡은 아이들을 모아놓은 반이었다. 최초라고 했다. 우리 이전에는 예체능 반 같은 건 없었다고 감사해야 한다고 담임 선생님은 말했다. 그냥 공부 못하는 애들 한곳에 몰아넣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애들도 있었다. 실제로 우리 반에서 수업을 진지하게 진행하는 선생님들은 없었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세계사 선생님만 빼놓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어느 때보다 편안한 1년을 보냈다. 언제나처럼 혼자였지만 나 같은 애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에 외롭지 않게 혼자일 수 있었다. 나의 자리는 이번에도 맨 뒷자리였다. 번호가 뒷자리였기 때문이다. 그 번호라는 것은 가나다순으로 매겨졌고 나는 한 씨였다. 이 어쩔 수 없음을 나는 다행으로 여겼다. 가끔 랜덤으로 자리를 배정하는 학기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뒷자리에 앉은 애들의 얼굴을 살핀 다음, 불만이 있어 보이는 아이를 찾아가 자리 바꾸기를 제안했다. 그게 내가 교실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자,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평범한 학교생활이 이어졌다. 그렇게 여름 방학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거북이의 생일을 맞아 나의 동물 친구들은 오랜만에 복도에 모여 초코파이 케이크를 들었다. 요란하게 축하 노래를 부르고, 지나가는 아무나랑 과자를 나눠먹었다. 그때였다. 지혜가 시끄럽다는 듯 인상을 쓰고 우리 옆을 지나갔다. 나는 왠지 모르게 반가운 마음에 "어?" 하는 소리를 냈다. 내가 그런 소리를 내든 말든 지혜는 익숙한 뒷모습을 보이며 빠르게 멀어졌다. 내가 "머리 많이 길렀네."라고 혼잣말을 하자 낙타는 물었다.


"너 쟤 알아? 우리 반 앤데."

"응. 알지 왜 몰라. 작년에 같은 반이었잖아. 내 앞에 앉았었고."

"2학년 때 우리 반이었다고? 아니야. 무슨 소리야. 그랬으면 내가 기억했겠지. 으이그 춘삼아."


낙타는 꿀밤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때 수업 종이 쳤고 우리는 방과 후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각자의 반으로 흩어졌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다고? 김지혜가 우리 반이 아니었다고? 그러면 내가 매일같이 보던 뒷모습은 누구였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학교가 마치기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1층에서 다 같이 만나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생일자가 쏘는 것이었다. 나는 일부러 낙타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낙타의 말에 따르면 아까 복도에서 마주친 그 애 이름은 '김지혜'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2학년 때 내 앞자리에 앉았던 아이는, 이름이 '김지혜'이긴 하지만 다른 아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둘이 좀 닮긴 했네."라고 말하던 낙타는 나에게 착각한 거 같다고, 그래도 1년을 한 공간에 있었는데 그걸 헷갈리냐며 대단하다고 놀렸다. 내가 선뜻 인정하지 않자 낙타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김지혜 기억하는 사람 있어?"

잠깐의 정적 뒤에 아이들은 저마다 이야기했다.

"춘삼이 앞에 앉았던 애잖아."

"그림 그리는 애 아니야? 예체능이니까 지금 춘삼이랑 같은 반이겠네."


다음 날 나는 그림 그리는 김지혜에게 다가가 우리가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냐고, 내 앞에 앉았었냐고 물었다. 그 애는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조금 서운해하며 그렇다고 했다. 나는 미안하지만 우리가 대화 나눈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 애는 가만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그런 적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며 진짜 김지혜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최근에 자른 듯한 짧은 단발이었기에 내가 보아온 그 머리가 맞는 걸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낙타는 복도에서 마주친, 그러니까 내 기억 속 김지혜의 원래 이름을 말해주었다. 조금 독특한 이름이었다. 갑자기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거짓말."


가짜 김지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가끔 무서운 꿈을 꾼다. 실체 없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봐야 하는 꿈이다. 낙타에게 그 애의 본명을 들었을 때 찾아가 따져 물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이따금씩 진실을 유추해 보고는 한다. 가짜 김지혜와 대화를 나누었던 그날로 돌아가 보자.


그 애는 우리 반 교탁에 출석부를 올려놔 달라는 선생님의 부탁을 받았을 것이다.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그 애는 자기 반 창문에선 보이지 않는 소나무들을 구경하기 위해 발길을 돌린다. 창가 쪽 빈자리에 앉는다. 책상 위 교과서에는 '2학년 몇 반 몇 번 김지혜'라고 쓰여있다. '이 책상 주인은 김지혜구나...... 이름 참 평범하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뒷자리에 엎드려 있던 내가 잠에서 깨어난다. 비몽사몽간에 낙타가 두고 간 쪽지를 펼쳐 읽기 시작한다.


"우리 내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로 가는 거 알아?"

그 애는 아까 교무실에 들었던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원래 아무에게나 쉽게 다가가는 성격인 것이다. 보통 이렇게 말을 걸면 '왜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이지?'하는 표정으로 무시하거나 "너 나 알아?"라고 묻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멍청한 얼굴로 대답한다.


"으응. 뭐 짓고 있는 건 아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그 애는 생각한다. '얘...... 모르는구나. 나를 같은 반 애라고 생각하는구나. 지금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살짝 떠본다.

"너 내 이름 모르지?"

나는 당황한다. 그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한다. 그때 나의 손에든 쪽지에 적힌 '춘삼'이라는 글씨를 본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나도 니 이름 몰라. 춘삼이가 니 본명은 아닐 거 아니야."

그렇게 그 애는 잠시 김지혜인 척하기로 한다.

"나는 지혜. 김지혜. 존나 평범하지."


...


이렇게 된 것 아닐까. 아니고서야 설명되지 않는 일이 아닌가. 내가 반년 넘게 멍 때리며 바라본 뒤통수는 당연하게도 진짜 김지혜의 것이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날 속인 가짜 김지혜를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따가운 시선에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은 진짜 김지혜를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낙타 말대로 1년 넘게 앞자리 친구의 얼굴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학교생활을 한 내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된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왜곡된 기억이 소재로 등장하는 작품을 보면 묘한 공포를 느끼곤 했다. [메멘토]나 [바닐라 스카이] [장화, 홍련]같은 영화들 말이다. 당시 내가 저전력 모드를 해제하고 조금만 더 맑은 정신으로 학교생활을 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진짜 김지혜에게 말도 걸고 때맞춰 급식도 잘 먹고 다녔다면? 만약 그랬다면, 적어도 누군가의 뒷모습이 나오는 악몽은 꾸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한 아이의 거짓말에 나의 무신경함이 더해져 예기치 않은 미스터리한 경험담 하나가 탄생한 거라 생각하면 그리 나쁜 일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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