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병에 걸리면
장면 1.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그러나 카메라가 바깥으로 빠지며 우리는 알게 된다. 그 물고기는 아주 작은 어항 속에 갇혀 같은 자리만 맴도는 중이라는 사실을.
장면 2.
요란한 알람 소리에 깨어난 남자. 그가 변기에 앉아 신문을 보는 모습과 함께 혼잣말 같은 내레이션이 깔린다.
'뜬금없는 꿈. 꿈속의 금붕어는 먹고 헤엄치고 먹고 헤엄치고 또 먹고 헤엄치고. 어항 속 금붕어는 뭘 위해 사는 걸까. 누군가 커다란 존재가, 우주적인 존재가 내 삶을 내려다보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장면 3.
서점으로 출근 한 남자. 그가 서있는 진열대에는 이런 홍보 문구가 쓰여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삶이여'
슬그머니 다가와 한 여성을 가리키며 귀엽지 않냐 묻는 동료. 그를 세상 한심하게 바라보며 남자가 하는 생각.
'슬프지도 우습지도 않다. 화가 나지도 즐겁지도 않다. 문득문득 한숨이... 한숨을 쉬면 갈비뼈가 시옷자로 갈라진 그곳이. 구멍이 뚫린 듯 시렵다.'
장면 4.
하늘을 올려다보며 터덜터덜 걷는 퇴근길. 남자의 존재론적 고민은 계속된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절대적인 운명. 그것은 소멸. 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생명을......'
깜빡 거리는 신호등을 보고 놀란 남자. 그 순간만은 삶의 의지를 가득 담은 빠른 걸음으로 헐레벌떡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러고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시 천천히 걸으며 철학적 질문을 이어간다.
'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생명을 어떻게 살아가야 되나.'
2006년 한국 드라마 [연애시대] 8화 오프닝 장면이다. 알 수 없는 허무함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남자 주인공 동진에게 전 부인이자 이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인 은호는 다정히 위로를 건넨다.
사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 같다는 동진의 말에 그의 커피에 설탕을 넣어 섞어준다. 그런 은호에게 동진은 이런 말을 한다. "너는 좋겠다. 아무 생각 없어서. 언제든 나는 허무해서 죽을 거야. 더 이상 이 허무를 견딜 수가 없어서. 내 안의 세포가 스스로 죽는 거지 그냥. 왜! 왜 나는 이 허무를 빨리 알았냐 이거야. 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았으면 좋았을걸. 난 저주받았어." 점차 표정이 썩어가던 은호는 냅다 소리를 지른다. "에라이 인간아. 작작 좀 해라. 사춘기냐? 요즘 고딩들도 안 그래. 무슨 자기 연민에 빠져서 완전 배영을 치시는구만." 그러면서 최근 끝난 그의 연애사를 콕 집어내, 그냥 외로워서 그런 거 아니냐며, 말로 동진의 뼈를 때려버린다.
오래전 드라마임에도 촌스럽지가 않아 몇 번을 다시 보게 되는 [연애시대]에는 이렇게 피식피식 웃게 되는 장면과 대사가 많다. 최근에 이 8화 오프닝 장면을 떠올리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요즘 자주 멍 때리며 존재론적 질문에 빠지곤 하는데, 알고 보면 대단한 이유가 없는 배부른 자의 얄팍한 사유 같다는 면에서 동진과 비슷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머리가 좀 비어있는 기분이다. 분명 좋아하고 기다리던 영화나 책이 나왔는데 설레지가 않고. 어떤 흥미로운 제안에도 의욕이 잘 안 생기고 재미, 의미, 미래, 의지 이런 게 상실된 것만 같다. 그렇다고 막 우울하지는 않은데 좋은 걸 봐도, 화가 나는 걸 봐도 '내가 뭘 어째....' 싶어서 반응을 안 하게 된다.
일을 쉬고 싶거나 출근하기 싫거나 그런 것은 또 아니다. 일을 안 하면 오히려 더 허무해질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양배추를 갈아서 두꺼운 전을 해 먹고 싶다거나 오랜만에 미술 도구들을 꺼내 수채화를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그 마음이 5분을 안 가는 거다. 귀찮아져서가 아닌 허무해져서. '그거 해서 뭐 해....'이런 김 빠지는 기분이 순식간에 나를 덮친다. 그러면 그냥 멍하게 넷플리스를 보거나 sns에 들어가 무한 스크롤 내리기를 한다.
좋아하던 팟캐스트들도 다운만 잔뜩 받아놓은 채로 듣지 않고 있다. 삶에 대한 권태인 건지 뒤늦게 찾아온 코로나블루인 건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드라마 속 동진처럼 개똥철학자가 되어 혼잣말을 해보는 거다.
나는 왜 이 허무를 빨리 알았냐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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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바삭바삭 소리를 내는 낙엽들도 내 기분에 한몫을 하는지 모른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도 길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밟히는데 나는 아름답지도 않으면서 매일 공기와 음식을 먹고 쓰레기들을 배출하고 있구나. 어쩜 이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지구에 민폐인가. 한 번 그런 생각이 들면 답도 없이 몇 시간이 지나간다.
오래전 트위터에서 보았던 글을 떠올린다. 환멸을 흩어버리는 것이 인생에서 참 중요해진다는 누군가의 말이었다. 문제와 싸우면서도 문제를 내 안에 쌓아두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나에겐 그 문장이 특정 감정에 매몰되지 말자는 말로도 다가왔다. '존재에 대한 환멸을 흩어버리자.' 주문처럼 말해본다. 쉽지 않다. 그러나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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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하철로 30분이 걸리는 큰집에 들른다. 할아버지의 저녁을 챙겨드리기 위해서다. 늘 할아버지를 돌보시는 큰엄마가 가끔 외출할 일이 생기면 이렇게 나를 부르신다. 얼마 전만 해도 사과나 상추 정도는 씹어서 드셨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믹서에 갈아서 드셔야 한다. 턱을 괴고 할아버지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빠에게 전해 들었던 젊은 시절 할아버지의 모습은 아주 무섭고 폭력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할아버지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는데 아빠의 이야기 속의 그 남자는, 그런 남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묘한 괴리감을 느끼며 할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식사가 끝난 식탁을 정리한 뒤 들쭉날쭉한 할아버지의 눈썹을 가위로 다듬는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미국에 가서 박사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장관을 하라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나는 웃음이 터져서 꼭 그렇게 하겠다고 큰 소리로 거짓말을 했다.
어둠이 내린 집에 할아버지 방만 불이 켜져 있다. 침대에 걸터앉아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손 인사를 하는 할아버지를 향해 사랑한다 외치고는 현관을 나선다. 지하철로 가는 발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사람은 제각각의 모양으로 아주 다른 인생들을 살다가 비슷한 모습으로 늙어간다. 나는 노인이 될 수 있을까? 우리 할아버지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살 수 있을까? 오래 살기보다는 적당히 건강하게 살고 싶다. 멋있게 살기보다는 그저 주변에 민폐 끼치지 않으며 살고 싶다. 어떤 부귀영화도 인간과 같이 늙어버리는 것을... 인생 뭘까... 그런 생각을 하며 비둘기에게 말 좀 걸다가 뒷짐을 지고 바삭바삭 낙엽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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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허무함도 적당히 즐기다 사라지면 나쁠 것도 없겠으나. 일상을 수제비 반죽 떼어내듯 뭉텅이로 자꾸 버리게 된다면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몸을 좀 움직이면 된다. 빠르게 좀 걷거나 살짝 뛰면 된다. 집 청소를 하고 책장 정리를 하면 된다. 생각이 몸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몸이 생각을 지배하고 컨디션이 기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렇게나 단순하다.
요 며칠 허무 병에 걸려 각종 난해한 질문들을 꺼내보았으니 (답은 필요 없다. 질문만 던지는 것이 허무 병의 핵심.) 이제 좀 나올 때가 된 것 같다. 스크롤 내리기도 그만하고 내용 파악도 못하면서 미드 보는 것도 그만해야지. 더 하다가는 어디서 은호가 나타나 "에라이 인간아. 작작 좀 해라!" 하고 면박을 줄 것만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