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룩백> 을 보고
<룩백>은 한 시간이 좀 안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유튜브에 있는 짧은 예고편을 보고 무조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버려서 개봉관이 있나 검색을 해보았다. 다행히 메가박스에서 수입을 해서 3시 영화를 예매해 볼 수 있었다.
밤 하늘에서 시선이 내려오며 한 집을 향해 간다. 창밖으로 스탠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주인공 후지노의 방이다. 이어서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열중해 작업하고 있는 후지노의 뒷모습을 한참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 안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두 주인공의 작업하는 뒷모습에서 감독이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위로가 느껴졌다.
학보에 네 컷 만화를 연재해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초등학생 후지노. 나중에 유명한 만화가가 되는 것 아니냐며 싸인을 미리 해달라는 친구들의 호들갑이 후지노가 만화를 그리는 첫 원동력이었을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히키코모리 생활로 학교에 오지 않는 옆 반의 쿄모토라는 학생의 그림도 학보에 실릴 것이라 말한다. 후지노는 아마추어의 그림이 학보에 실려서 괜찮을까? 하는 다소 거만한 걱정을 하는데…. 처음 쿄모토의 그림이 실린 학보를 본 후지노는 경악을 하고 만다. 스토리는 재미있지만 작화가 어설픈 자신의 그림과 확연히 비교되는 어마어마한 완성도의 작화 실력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후 후지노가 미친 듯이 그림 연습을 하는 뒷모습과 함께 창밖으로 사계절이 흐르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 초반엔 어린 학생들의 따듯한 성장 영화인 걸까? 싶으면서 지브리 영화 <귀를 기울이면>이 떠올랐다. 2024년 최고의 성장 영화!라는 소개 문장도 본 듯하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본 나는 어째서인지 ‘성장’이라는 단어는 잘 떠오르지 않고 ‘훼손되지 않는 과거’라는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쿄모토와 후지노가 따로, 또 같이 쌓아오고 지나 보낸 시간들은 과거이기에 돌이킬 수 없고, 또 과거이기에 훼손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는 일. 그 일은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나를 갉아먹는 일일 수도 있고, 사진처럼 남아있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되새기며 현재를 견디게 하는 일일 수도 있다. 영화가 말하는 ‘룩백’은 아마도 후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근래에 본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다.
한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