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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Dec 06. 2022

매끈하고 달콤한 사치



나는 작고 예쁜 걸 좋아한다.

결혼 전에는 꽃꽂이 클래스 접시에 그림 그리는 포슬린 페인팅도 해봤다. 배워두면 창업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면서 말이다. 

돈 걱정 없이 즐겼던 취미생활은 결혼 후 점점 멀어져 갔다. 

블로그에 클래스 공지만 보면 마음이 싱숭생숭 수강료만 열심히 물어보는 걸 보니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닌가 보다. 





                                                 “마카롱 클래스 모집합니다.” 


다음부터 20% 인상된다는 말과 함께 댓글이 순식간에 100개나 달리니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내 손가락은 이미 입금계좌 안내 부탁드린다는 글을 쓰며 이번에 수강 못 하면 어쩌나 초조함이 더 해져 인증서만 만지작거렸다. 70만 원이 한순간 쉽게 나가는구나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수업 첫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들어간 스튜디오 안은 처음 보는 민트색 싱크대에 반짝이는 스텐볼,

금테 두른 커피잔과 엔틱가구들까지 여자들의 로망을 다 모아 놓았구나 싶었다. 

수업 후 내어주신 마카롱과 홍차는 선생님의 말씀과 라디오 소리가 한데 섞여 부드럽고 살살 녹는지 프랑스는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수업 끝 무렵에 베이킹 도구 구매처와 꼭 연습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신혼가전으로 구매한 오븐이 이제야 진가를 보일 때라며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알록달록 쨍한 색감에 오백 원짜리 크기에 마카롱이 뭐라고 이리도 쫀득하고 부드러운지 필링이 순식간에 녹아 감탄사가 나왔다. 

그날부터 열심히 집에서 만들어간 마카롱은 친구와 직장동료까지 칭찬과 만들어 달라는 주문까지 들어왔다.      


동그란 반죽이 익어 봉긋 부풀어 오르면 호빵처럼 매끈한 광택과 프릴이 생기는데 신기하게도 매번 구울 때마다 가슴이 설레었다. 주위에서 파티시에 같다는 칭찬을 듣자 내 귀는 팔랑팔랑 한번 에 더 많이 굽고 싶다는 욕망이 슬금슬금 다시 올라왔다.    




 

오븐 온도에 민감한 마카롱은 가정용 오븐으로 만드는 게 쉽지 않은 베이킹이라 더 완벽한 프릴이 만들고 싶어졌다. 돈 안 쓴다는 다짐은 언제 했던가 내 눈은 오븐계의 벤츠를 바라보며 지금 주문하면 언제 올까 달력까지 보면서 체크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날부터 230만 원짜리 스텐을 어디야 둬야 하는지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집에는 더 이상 둘 곳도 없었고 신형 오븐이 있는데 취미로 업소용을 사고 싶다는 말이 입안에서 맴 돌뿐 차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때 홍대에서 꽃집을 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작업실 한편에 오븐만 맡겨 달라는 어이없는 부탁과 앞으로 마카롱 원 없이 먹게 해 준다는 달달함도 추가했다. 

친구에 허락이 떨어지자 1초에 망설임도 없이 내 마지막 남은 퇴직금은 그렇게 사라졌다. 





막상 오븐이 들어오니 소비 욕구는 더 활활 타올라 이거 저거 하나씩 사들이게 되고 짐도 한 칸 두 칸씩 늘어갔다. 친구는 이럴 거면 오븐 값이나 벌어보라며 마카롱 클래스를 해보라고 제안해 주었다. 

자격증도 없이 뭘 믿고 나에게 배우러 오겠니 말은 이렇게 했지만 웹디자이너 친구까지 소환하는 열정까지 보태며 정성을 다해서 블로그에 공지 글을 올렸다.




한 명 두 명 문의 댓글만 달리더니 밸런타인데이와 맞물려 정말 대박이 터졌다. 하루 한 타임이던 수업이 두 타임 주말까지 이어졌고 마감 공지글까지 올렸다. 나는 그렇게 2달 만에 오븐 값을 회수했고 사치스러운 새댁에서 선생님이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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