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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Dec 13. 2022

죽음보다 두려운 늙음

평안하게 늙을 권리






100세 시대 먹고 빼고 먹고 빼고 반복하는 루틴의 삶을 아주 잘 지키는 고기병 걸린 사람들이다.  우리는 조금만 몸에 신호가 오면 각종 검사와 좋다는 영양제를 투하하고 매년 받는 건강검진으로 미리 아픔을 걸러낸다. 

칠십은 이제 늙은이 축에도 못 낀 세상이 왔노라 팽팽한 얼굴로 지하철 노약자석은 궁둥이 싸움으로 앉겠다며 네가 나이가 많니 적니 목청 배틀이 해프닝처럼 벌어진다. 






옛날 갖은 고생과 못 먹음으로 수명이 길지 않았다.  환갑에 노래 가락이 울리고 잔치상은 잘 키운 자식들 효의 크기를 보여 줬었는데 이젠 가족여행으로 퉁친다. 칠순쯤 되어야 건강하게 살았구나 현수막과 돈다발 팡팡 터지는 이벤트까지 더해지면 부모님 함박웃음과 덕담으로 고맙노라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아버님 칠순을 치르고 뿌듯한 마음은 며칠 가지 않았다. 갑자기 늙음에 두려움이 뜬금없이 나타났다.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뀌자마자 신체리듬과 몸뚱이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질 않으니 현실 자각이 왔다. 평소 운동이라는 건 숨쉬기뿐이고 몸으로 일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 삐걱삐걱거려서 기름칠 좀 해주세요 신호가 들린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최소 30년~ 60년일 텐데 과연 70살에 나는 아버님처럼 정정할까? 어디 아파서 누워있으면 어쩌나 지은 죄도 없는데 평소에 안 하던 기도를 한다.

  "하느님 오래 안 살아도 됩니다 아프게만 살게 하지 말아 주세요 앞으로 착하게 살게요."




인구는 줄고 기대 수명만 대책 없이 늘어 유치원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요양원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게 솟구치고 반면에 노후자금과 건강한 신체는 그것만큼 따라오지 못하게 되었다. 어화둥둥 금지옥엽 키 운자식들과 같이 사는 건 미래에 볼 수 없는 풍경이요 바라지도 않는다. 제 때 자립만 해주어도 감사해서 덩실덩실 어깨 춤추며 우리 얘들 독립했다고 만세삼창 자랑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친정엄마는 환갑이 넘었지만 아직도 자식과 본인 노후를 위해서 요양보호사로 일을 하신다. 

"엄마 나는 오래 살고 싶지가 않아. 늙으면 무기력하게 먹고 자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 살잖아 몸이라도 아프면 고통스러운데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고 길어진 수명이 나는 너무 두려워"


종종 들려주는 노인들의 생활은 내가 상상하는 노년이 아니었다. 개인 공간이라고 해야 침대에서 주는 데로 밥과 간식을 먹고 텔레비전 보거나 프로그램에 맞춰서 노래 부르기 종이접기 소소한 일상이 다였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그것 조차 누리지 못하고 음식을 먹다 못 먹으면 갈아서 주거나 유동식으로 생명을 연장한다. 

약도 따박따박 제시간에 주다 보니 건강하게 더 오래 산다고 괜찮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그것이 더 싫었다.



 

탱글 했던 엄마의 손은 뼈마디도 굵고 쭈글쭈글하다. 볼 때마다 마음은 아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쉬는 날이면 더 열심히 놀러 다니라고 말씀드리는 게 전부다.

"나는 엄마가 일하다가 죽는 거 말고 열심히 놀다가 돌아가셨으면 좋겠어. 엄마 소원이 새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거잖아. 아직도 자식 셋 걱정하느라 엄마 인생 못 누리는 거 같아서 쉬는 날이라도 신나게 놀다 가시면 나는 덜 슬플 거 같아."


엄마가 야간 근무할 때면 영상전화가 가끔 걸려 오는데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보여달라고 하신다며 잠깐만 통화하라고 재촉한다. 처음엔 왜 이러나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처음 보는 노인들이 무서웠는데 우리를 보면서 곱다 예쁘다 하시면서 활짝 웃는 모습에 할머니도 젊은 시절에 기억이 그립겠구나 이렇게 보고 있으면 마음이 어떨지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지안(至安) 이를지, 편안 안 '편안함에 이르다'

훗날 늙음에 두려움 말고 편안함에 이르기를 이 세상 잘 살았노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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