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지랄 맞았을까? 아마도 태생이 그랬나? 아니면 선천적이었는지 내 지랄 맞은 뿌리가 새삼 궁금하다. 엄마는 성격이 온화하고 너그럽다. 그런 엄마에게 쌈닭이란 별명이 있다는 건 내가 한참 자란 후 알게 되었다. 쌈닭의 특징은 평소에 가만히 있지만 한번 싸움을 붙이면 눈이 돈다. 엄마가 우리 삼 남매에게 화를 내거나 때린 적은 평생 기억이 없다. 그 흔한 등짝 스매싱도 없는 걸 보면 쌈닭의 기질은 어디서 보이는지 궁금했다.
엄마와 함께한 40년 중 살면서 딱 두어 번 봤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연락이 끊겼던 아빠형제들에게 부고 문자를 보냈다. 큰아버지는 일찍 술로 돌아가시고 셋째는 여러 차례 돈을 빌려주다 마지막으로 편의점 차릴 돈을 안 빌려준다 서운함을 토로하며 연을 끊었다가 후회하며 둘째 형(아빠)의 장례식에 왔고 제사 문제로 다퉜던 막내는 끝내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큰엄마 작은 아빠 삼촌은 사이가 좋아져 다시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큰엄마는 그 모임을 소집하며 제사 문제로(큰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종교가 생겼다) 서운한 감정이 있었는데 안 가려다 장례식에 왔다는 말을 던졌고 그간 세월에 작은집며느리로 한마디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다 엄마가 요목조목 속사포처럼 이야기하자 놀라며 오히려 화를 내며 전화로 말싸움하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도 화를 내는구나 그때 알았다.
두 번째로 엄마의 화난 모습은 옆집 아줌마와 임대료를 논하면서 내 카페나 처분하라는 말을 하자 폭주 기관차가 되었다. 아무리 온화한 주인이라도 가족을 건들면 안 된다는 걸 상도덕을 지키지 못한 자 그날 이후 배려는 끝났다. 항상 말을 할 때 역지사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그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꼭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맛을 아는가 사람의 마음도 한도가 존재한다.
다른 반쪽의 유전자 아빠는 사실 가타부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엄마는 순한 양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단, 술을 먹지 않았을 때 자식들에게 싫은 소리 학업, 직업, 사위 그 무엇을 바라시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전 10여 년 세월에 술사람으로 살았을 때는 알코올홀릭으로 술에만 지랄 맞으셨다고 하고 싶다.
그렇담 왜 그리도 지랄맞고 짜증이 많았는지 좀 유하게 살면 좋을 텐데 뭘 그리도 뾰족 궁둥이처럼 살았을까 나이가 들어가니까 그 성격이 싫다. 싫은 소리 하면 바로바로 반응하고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입에 바른 소리도 못 했다.
그 지랄 맞은 성격에도 장점은 있었는데 1 금융권 적금 같은 사람이다. 딱 매달 적립한 만큼 12번을 채워 일 년이 되면 따박따박 찾아가는 적금 말이다. 더도 덜도 말고 세금 제하고 나면 정말 코 묻은 돈 같은 그것을 풍차 돌리는 심정으로 받아 갈 때 좋았다. 결혼과 동시에 그것도 힘들어지자 번 아웃이 왔다. 인생사 지랄도 마음의 병이 오니 지랄총량의 법칙처럼 지랄할 기운도 남지 않았다.
글쓰기를 하고 책을 보면서 사람의 감정을 들여다보았다. 내 생각과 다르고 공감하지 못하는 감정을 애써 틀릴 수도 있다고 이해해 주고 공감해 줬다. 행여 말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전과 달리 손이 발이 되도록 미안하다 실수했다 그것이 아니라고 사죄했다. 물론 그 감정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감정도 있었고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실수를 하는구나 친근한 표현이 실수를 불렀구나 말을 줄이고 싶어졌다. 이 감정들이 나쁜 것은 아니나 에너지가 다시 고갈되는 느낌이 들면서 적신호에 근접했다.
소란했던 감정을 다스리고자 푹 빠져 읽었던 소설책마저도 이럴 때가 아니야 내년에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이런 책들로 시간을 빼앗기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마저 지배했다. 안 읽던 경제서적과 자기 개발서를 꾸역꾸역 넣어보는데 자꾸 뭘 도전하고 찾으라고 채찍을 들고 후려친다. 그동안 조급한 반평생 지랄 같은 마음을 내려놓았거나 외면했더니 맷집이 생겨서 타격감이 없다. 허허허 미치겠구먼 웃음뿐이다.
결국 터졌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느라 정작 나를 챙기지 못했다. 인스타도 시끄럽고 하루종일 들락거린 카톡과 릴스 덕분에 핸드폰을 쥐고 있는 시간이 7시간 미쳤구나. 오히려 브런치에 글도 책도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내 지랄 맞음을 마주하자. 어쩌면 지랄 맞음이 아니라 섬세함이 아닐까 포장하려 한다. 적어도 온전히 나와 마주할 시간 나다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랄도 풍년이면 잘 여물어 평년보다 수확을 많이 하지 않을까 한다. K장녀로 적어도 도리를 모르는 사람 으로 키우지 않았으니 부모님 얼굴에 먹칠은 안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