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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Dec 28. 2023

노력했는데 이런 18.

AM 5:20분 알람이 울린다. 몸은 천근만근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느낌이다. 새벽에 두어 번씩 깨고 있어 수면 질은 좋지 못하다. 누가 흔들어 깨우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오줌소태도 아닌데 섬세한 어미는 아이들 이불 걷어 차고 자는 것이 여간 불편하다. 남편과 같이 침대에서 자보려고 분리수면을 해보았지만 돌아가며 아픈 애들 덕분에 다시 원점이다. 



11월이 되기 전 난방텐트는 펼쳐졌다. 한 겨울 텐트 속 어느 정도 큰 아이는 수면조끼까지 입고 자면 괜찮을 거 같은데 쉴 새 없이 이불을 걷어 차는 애들을 번갈아가며 덮어 주는 건 여전하다. 일부러 곯아떨어져 자기 보기도 반대로 일찍 자려고 노력해 보고 잡생각도 안 해 보려고 인스타도 덜 본들 수면 질은 똑같다. 



AM 5: 25분 일어나기 싫다는 마음에 흔들렸다. 두 번째 알람이 무엇인지 생각이 스치자 벌떡 일어났다. 새벽수영 강습 마지막날 감사한 마음에 알람도 쿠키전달로 해뒀다. 1월엔 수업스케줄이 달라지니 혹시 몰라 준비한 쿠키를 드렸다. 활짝 웃는 모습을 보자 잘 나왔구나 싶고 민원으로 마음 써 주셔서 고맙다는 말로 서로 감사함을 주고받았다. 훈훈하게 12월 운동을 마무리했다 즐거이 집으로 돌아왔다. 






띠로리 코자방 문을 열었다.  와우 놀래라. 아이야 이건 뭐니??? 텐트에 머리가 튀어나오고 이불 삼아 텐트를 붙잡고 자는 둘째와 첫째는 방향은 뭐지 손도 아닌 발이 나왔구나 이런 환경 중간에 자니 꿀잠을 꿈꾸는 건 사치다. 



서둘러 아이들을 깨웠다. 방학이라 늦잠을 자고 싶다는 둘째를 달래고 늦었다고 궁둥이를 조물딱 거리며 얼러준다. 그렇게 아이들을 깨워 씻으라 보내놓고 머릿속은 복잡스럽다. 일 년간 내 노력이 혹은 첫째의 평가를 받는 날이다. 유난히 마르고 작은 첫째 덕분에 돌 때부터 많이 좀 먹이라는 소리를 8년째 듣다 올초부터 성장 클리닉 검사를 했다. 6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인데 일 년이니 이제 데이터가 나올 터 첫째도 기대를 하겠지만 나 역시 훌쩍 자란 다리 길이에 내심 기대를 해도 될까 희망을 품어 본다. 



가는 길 기분 좋게 차에 기름도 배부르게 넣고 도서관에서 희망도서로 신청한 안보윤 소설책까지 찾아 병원으로 향했다. 수납을 하고 검사에 빠진 엑스레이 사진도 찍고 이름이 호명되기까지 한 호흡 크게 쉬어본다. 아이는 겉 옷을 벗어두고 측정기에 살포시 발을 올려본다. 조금만 더 조금 더 힘주어 마음을 얹었다. 



123.9cm / 18.9kg  아들은 0.9를 넘지 못했다. 어떻게 주머니에 자갈이라도 하나 올려주고 싶은 내 심정을 알랑가 몰라. 아이도 알고 있다. 어미가 얼마나 간절하게 키보다 몸무게가 늘기를 바라는지 이제는 너구리도 하나 다 먹을 줄 아는데 너무 적게 나왔다며 볼멘소리가 나왔다. 옆에 있던 둘째는 나도 나도 측정할 거라며 올라갔다. 113cm / 19.0kg 오 마이갓!!! 드디어 오빠를 넘겼다. 며칠 전부터 방 실한 궁둥이를 보면서 잘 크고 있구먼 흐뭇했는데 몸무게를 보는 순간 머릿속은 노란 참외가 되었다. 



아침에 똥을 너무 많이 싸서 그런 거 같아 점퍼 입고 올라갈걸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보면 내심 동생보다 적게 나가는 무게에 본인도 속상했나 더 이상 나오는 실망을 내비칠 수 없었다. 진료실에서 상담은 쉽고 짧게 끝났다. 



정상입니다



모든 검사에서 정상이다. 살코기를 더 많이 먹이세요. 평균 4cm~ 6cm 크는데 1년 사이 4.5cm 자랐으니 소견으로 정상으로 보고 있다 말씀했다. 처음부터 성장주사를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정상이란 말이 기뻐야 하는데 몸무게를 어쩌나 싶다. 여동생보다 더 작게 나가는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그간에 축구도 해보고 주 2회는 오히려 살이 빠진다는 조언으로 심한 운동은 안 했고 먹여보려고 일부러 햄도 빵도 면을 좋아해서 파스타나 라면을 주며 봄엔 한약을 가을엔 운동선수들이 먹는다는 북방산개구리즙까지 줬다. 조금이라 더 먹이고픈 마음은 국거리 소고기도 백숙닭도 압력솥에 푹 삶아주는 모성애를 보였는데 다 똥으로 나간 거니 잔병이 줄어든 걸로 만족하며 병원을 나오지만 씁쓸했다. 





평가야 야박했지만 보상까지 그러면 아이도 실망한 하루로 남을 거 같았다. 어른도 하기 싫은 채혈을 6개월마다 5통씩 뽑았으니 장하다며 치켜세우고 더 먹어보자 한결같은 다짐을 해본다. 맥도널드로 달려가 해피밀 시간을 기다려 햄버거를 사줬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햄버거는 잘 못 먹고 탈이 나면 큰일 나는 걸로 철석같이 믿었다.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어 버린 아들 앞에서 더 이상은 모르겠다 싶어 사줬다. 반쪽도 겨우 먹던 아이는 불고기버거 하나를 클리어하고 나 잘했지 하며 씩 웃어 보인다. 그려 장하다 장해. 누굴 닮아 위가 계란 한 알 만한가 불만이 쏟아진다.  




삶은 업보다


내가 그랬다. 초등학교 2학년 몸무게 18kg 돌고 돌아 아이를 낳았더니 그 아들도 2학년 마지막날을 코앞에 두고 18kg이다. 친정엄마의 고민을 고스란히 내가 하고 있다. 몸무게만 닮으면 참 좋을 텐데 성격도 나다. 예민하고 조금만 아파도 매가리가 없다. 남편이 수더분하고 둥그런 딸을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면 약이 오른다. 마치 아들이 날 닮아서 저런가 싶고 느낌적 기분 탓으로 더 호대게 훈육하는지 똑같이 대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아들도 귀가 퍽 예민해 피아노 소리를 좋아하고 빗소리에 센티해지며 지나가는 냄새로 두부를 굽는구나 입맛도 톡톡하여 당귀쌈도 고수도 먹는 아이인데 내 사십 년 살아온 성격을 지레짐작하지 않고 편견을 아이를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3일 남은 기간 동안 좀 더 먹고 100그람 늘려서 19kg로 마감해 보자. 일 년 동안 큰 병 없이 커줘서 고맙고 내 어린 시절과 오버랩되는 성격은 좀 자제하고 섬세함으로 자라거라. 매너남까지 바라지 않을게 아빠보다 네가 더 좋다. 으흐흐 내 첫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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