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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Jan 10. 2024

차 때문에 이혼을 결심했다

1부. 소란하다


겨울이면 고질병인 수족냉증으로 종일 매장에서 시린 발끝으로 머물러 있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다 보면 둘째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독박육아 시절 남편이 퇴근하여 오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딸아이가 오면 서둘러 매장을 정리한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향해 가는 길은 4년째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주택살이의 최대 장점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과 반대로 주차할 때마다 남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양면의 칼날이 존재한다. 골목길 주차에 룰은 제일 안 쪽에 주차한 차량보다 앞서 먼저 차량이 나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다. 다행스럽게 새벽 수영으로 5시 35분에 제일 먼저 나가는 1번 타자가 되었는데 내 앞에 다른 차가 들어오면 그날은 수영을 못 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수학 공식도 아닌 눈치 게임이 시작되었다. 제일 안쪽 3번 타자로 주차한 아저씨는 6시 30분 출근 2번 타자 1번 타자가 존재하기에 2번으로 들어온 차량이 없으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1번으로 나가려고 차 궁둥이를 뒤로 빼 주차하고 전화가 오면 그 차가 먼저 들어오고 내가 앞쪽으로 다시 나가는 계획을 세우고 집으로 들어와  정신없이 저녁을 준비했다. 이쯤이면 차 빼달라고 전화가 올 때가 되었는데 전화기가 이상하게 조용하다.



띠리리 도어록이 풀렸다. 다녀왔습니다는커녕 남편은 들어오자마자 차를 그렇게 주차하면 어떻게 하냐고 다음 사람 생각도 안 한다고 속사포 랩을 토하며 생각 없는 여자로 만들었다. 안쪽으로 주차하면 내일 수영 가야 하는데 그 새벽에 차 빼달라고 할 수 없으니까 전화하면 빼주려고 했어 그리고 골목 주차 하루이틀도 아니고 다 아는 룰 아니냐며 쏘아붙였다. 오빠 지금 누구 걱정하는 거야? 옆집 아저씨 알아서 하니까 오빠나 들어오기 전에 전화만 했어도 내가 바로 빼주잖아 괜스레 짜증이야 오자마자.



빠빰... 전쟁의 뿔소라 나팔이 울렸다. 당신 말이야 11월 25일 서울 갈 때 하루종일 나갈 거면 차를 밖에 주차해야지 골목에 주차하고 가면 내가 2대를 동시에 어떻게 빼 맨 앞집 아저씨가 차 빼달라고 해서 내가 얼마나 곤욕스러웠는지 알아? 차를 샀으면 네 차는 알아서 신경 안 쓰게 해야 하는 거 아냐? 회사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너처럼 차에 신경 안 쓰는 사람도 없다고 하더라. 네 차는 제발 알아서 관리해.



오빠 네 차 내차 구분하는 거야? 차를 나 좋자고 타는 거 아니잖아 애들 아프고 따라다니려고 산 거지 카페에 왔다 갔다 할 거면 나도 차 필요 없어! 그리고 11월 25일은 새벽에 일어나서 애들 먹일 점심 저녁까지 다 하고 가느라 늦어 말 못 했고 솔직히 오빠 자고 있었잖아. 앞집 아저씨도 토요일에 카페 일하러 나가는 거 알아서 그 정도는 이해하는데 가족이 남보다 못하게 말하는지 모르겠어. 매번 네 차 네 차 그러는데 왜 아이들도 네 아이 내 아이 반으로 나누지 그래 아플 때 행사 있고 자잘한 티도 안나는 일들은 내가 다 처리하는데 그건 왜 당연한지 모르겠어. 너라고 말만 하면 넌 꼭 과민반응이더라 한마디를 쏘아붙이고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녁 반찬을 만들면서 머릿속은 온통 너라는 말로 가득 찼다. 국어 시간에 배운 너 나 우리를 떠올리며 우리에는 어디까지 속할까 거기에 나는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전기밥솥에 밥은 3인분만 덩그러니 있었다. 하필 이런 날 밥은 왜 이모양인지 불평을 해봤자 그건 내 몫이었다. 그들에게 정성스럽게 밥을 내어주고 내 몫의 짜파게티를 끓여 냄비채 식탁 위에 올렸다.



남편은 나에게 짜파게티는 파김치랑 먹어야 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던졌고 그런 시답잖은 소리에 기분이 좋을 리 없는 난 기분이 나쁘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말로 화답해 주었다. 여기서 멈췄으면 좋으련만 남편 가라사대 항상 말 한마디에 꽂혀서 그러니 아무 말도 못 하겠다며 울화를 돋우고 꼭 밥 먹을 때 그래야 해? 일부러 사람 열받게 해서 밥 먹지 말라는 거야 뭐야! 응 너 밥 먹지 말라고 일부러 그러는 건데 라며 응수해 준 남편 덕분에 짜파게티는 그렇게 싱크대로 향하며 우리는 38선이 그어졌다.




2부. 먹먹하다


결혼 10년 차 부부 우리가 아닌 너와 나가 되었다. 귓가에 닿는 칼바람은 매서웠고 아렸다. 평소 시부모님의 다정함을 받아본 적 없는 그였기에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포장하며 살아왔다. 그냥 넘기고 서로 아무렇지 않게 하하 호호할 수 있는데 이런 시시껄렁한 반복이 이젠 지친다. 10년 후 아니 20년 후 평생을 이렇게 지내야 하는가 의문의 꼬리에 꼬리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부모의 도리는 끝난다 딱 거기까지만 하자로 마음먹고 빗장을 닫았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현관 앞 쿠팡이 쌓여있다. 시킨 것이 없는데 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즉석식품들이 도착했다. 남편 역시 그렇게 쏟아내고 네 거 내 거 따진 마당에 내가 한 밥을 얻어먹을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저울처럼 그렇게 반반 나뉜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갔다. 남편은 라면 아니면 즉석식품으로 저녁을 해결했고 아이들에겐 오히려 더 따스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니 이 생활도 나쁘지는 않구나 마음이 고요해졌다. 빨래를 돌려라 정리해라 설거지거리를 식기세척기에 넣어라 이런 대화조차 오고 가지 않고 눈치껏 나눠하는 삶이 편할 줄 꿈에도 몰랐다. 소소한 신경전이 사라지다니 이 또한 할만하다는 생각과 감정이 평온해진 것이 소름 돋게 좋았다.



일주일이 넘어가자 남편 배에 시선이 멈췄다. 가뜩이나 복부비만인데 더 앞으로 나와 있는 모습에 할 말을 잃어갔고 아직은 애정이란 것이 있나 저러다 없던 병도 생길 거 같다 혀를 찼다. 지독한 놈 열흘이 다되어 가는데 저렇게 먹다니 안쓰러움 보다 아둔하다 생각했다. 한번 생긴 상처와 골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월요일 한파가 찾아왔다. 다행히 디저트 택배 배송만 있고 쉬는 날이라 걱정이 없다. 우체국에 택배를 발송하고 차에 앉아 시동을 걸었는데 걸리지 않는다. 두어 번 브레이크를 밟은 터라 잠기면 안 되는데 이 놈에 차는 스마트키를 인지 못하고 있고 결국 브레이크는 더 이상 밟히지 않는다. 그렇게 영하 -15도에 차 안에서 긴급출동 차를 기다렸다.



깜빡깜빡 비상 깜빡이도 방전된 배터리 마냥 힘이 없다. 2시간을 얼어터지듯 아린발과 손을 주무르며 지나가는 차와 사람을 보고 있자니 밖에서 일하는 남편이 떠 올랐다. 인생 한 치 앞도 모르는데 당신과의 마지막이 이런 거라면 10년 함께한 부부의 사랑은 무엇일까 오히려 남을 더 배려하고 지독스럽게 닮고 싶지 않았던 시어머니의 모습을 나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저녁 뜨끈한 쌀국수를 만들어 식탁에 차렸다. 입이 옴찔옴찔 오빠 밥 먹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아이들의 힘을 빌려 아빠 밥 먹어를 외쳤다. 남편은 나오지 않았고 나도 할 만큼은 했어 포장하며 쌀국수를 싱크대에 쏟아부어 죄책감을 덜었다. 그다음 날도 옹졸한 마음이 동하여 아이들을 시켰고 똑같이 음식물은 싱크대로 향했다.



먹먹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적당하게 뜨뜻미지근한 생활은 할만했다. 더 조용해진 전화기에 모르는 번호가 뜬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떨림이 전해진다. 조금 전 차를 박고 갔다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과 보험사를 불렀고 차주인지 확인을 요청했다. 이런 젠장. 그간의 냉랭함을 내가 먼저 끊어야 하나 전화를 하게 만드는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 본 내 차는 어여쁘게 긁혀 있었고 반듯하게 주차함은 상관없었다. 신께서 화해를 하라고 이렇게 만들어 주시는구나 헛웃음이 나온다. 차주인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상황을 말했다. 그날 저녁 마음을 고쳐 먹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아이들을 시켜 '아빠 밥 먹으세요.'에서 '오빠 밥 먹어.'가 되었다. 그냥 마음이 그랬다. 절대 차가 긁힐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곱씹으며 그만하면 되었다 뭔가 더 일이 생기는 게 싫었다. 남편은 그제야 나와서 밥을 먹었다.



3부. 따뜻하다

2주간 이어지는 감정소모로 주말 컨디션은 바닥이 되었지만 늘 그렇듯 밥과 아이들 케어는 엄마의 몫이다.

아뿔싸 새벽배송 장보기를 안 했구나 뒤늦은 후회를 하고 현관을 나서는 순간 문이 묵직하다. 네모난 스가 하나 배송되어 있다. 살포시 열어본 박스 안에 돼지고기 목살이 들어있다. 우리 집에서 목살은 남편 담당이다. 똑같은 고기인데 내가 구우면 육즙은 고사하고 맛이 참 없고 퍽퍽해서 유일하게 남편 손을 타는 음식이 고기 굽기이다. 어머 이거 뭐 그린나이트야 모르는 척 다시 문을 살포시 닫고 집으로 들어왔다. 일단 저녁은 해결되겠구나 야호 소리쳤다.



시름시름 앓던 몸은 더 곤두박질 내려앉아서 평소에 안 자던 낮잠을 잤다. 귓가에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설거지가 한가득인데 그것을 남편이 하나보다 싶었고 이어서 들리는 치치 삑-- 쿠쿠하세요가 들린다. 어머 몇 시간을 잔 건가 창밖을 보니 어둠이 내려 깔린다. 아이들에게 고기 먹을 거니까 준비하라는 말이 들린다. 힘주어 말하는 걸 보니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 밥 먹어라 말이구나 싶어 나왔다.



식탁을 바라보니 밥과 쌈장만 덩그러니 있고 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전에 나가는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아들이 롱패딩을 입고 쪼르르 나간다. 이 엄동설한 -10도에 지금 밖에서 고기를 굽는 건가? 이상했지만 나가지 않았다. 쌈장이 있는 걸 보니 쌈채소가 있을 터 냉장고를 열어보니 쌈채소가 소복하게 담겨있고 그 옆에 맥주캔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단언컨대 10년 동안 살면서 남편은 시키지 않는 한 먼저 맥주를 사 온 적이 없다. 치킨에 콜라를 외치는 사람이고 반대로 치킨엔 맥주를 외치는 사람이 만나 그간 서러움이 있었다.



쌈채소만 꺼내고 모르는 척 냉장고 문을 닫았다. 딸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고기를 기다린다. 모락모락 연기가 올라오는 고기를 아들이 가져왔다. 엄마 이거 무지 맛있어를 외치며 귀여움을 더한다. 쌈을 싸서 입으로 한가득 넣었다. 맛이 이상하게 늘 먹던 그 맛이 아니다. 이 것은 캠핑장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그 맛이다. 아들에게 밖에서 고기를 어떻게 굽냐고 물어봤다. 아빠가 장독대에서 불을 활활 타오르게 숯이랑 장작 넣 구워서 아주 맛있는 거라고 신나게 떠들어 준다. 어머머 입이 떡 벌어진다. 그간 시간이 힘들었나 수많은 날 중에 붙박이장 같은 당신이 한파를 뚫고 나가서 장을 보고 장작불을 피우고 있다니 낯설다.



의기양양하게 나머지 고기를 들고 온 남편은 아차차 탄성을 지르며 용맹스럽게 냉장고로 향했다. 양손엔 차갑고 묵직한 그것이 들려 있다. 단 한 번도 먼저 사 온 적 없는 시원하고 목을 탁 치는 후련한 나만 아는 그 맛을 잔에 그득히 담아 나에게 건넨다. 어색한 순간 남편은 아이를 동원하여 건배하자고 했다. 아빠의 제안에 아이들은 웃으며 '짠'으로 화답한다.



차 때문에 이혼을 결심하고 차 때문에 그 결심이 와해되었다. 달콤한 가족애가 아니더라도 한파의 날씨 속에 숯불고기를 굽는 남자라면 한 번쯤 넘어가려 한다. 당신의 그린라이트는 언제까지 유효할지 더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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