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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Jan 17. 2024

활짝 피자

다시 출발

작년 한 해 동안 나 홀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고 독서와 글쓰기로 마음을 다독거리며 적립 쿠폰처럼 차근차근 적립했고 무료쿠폰을 깨알같이 모은 덕분에 셀프 free도장을 완성했다. 그 마음은 아메리카노 1잔 + 생크림케이크 소박한 무료교환권 정도 되었다. 



마음 돌봄 시간을 연말 정산해 보니 50권 남짓 책을 읽고 100편이 넘는 끄적임으로 번아웃에 빠지지 않았다. 발버둥은 열심히 쳤구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평가했다. 새해부터 마음을 채근하지 말고 생각했던 바를 단단하게 실행하고자 했다. 늘 그렇듯 혼자 생각하고 실행하는 건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시작부터 달력과 통장 잔고를 튕기고 결혼한 여자들이라면 보통의 고민이라 생각한다. 작년보다 딱 한 뼘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모자라면 모자란 만큼 더 하고 싶은 일들은 노력으로 채우고자 요리조리 퍼즐을 맞춰 본다. 



새해가 보름 지났다. 겨우 이만큼 지났을 뿐인데 그놈에 성장이 무엇인지 시작부터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고전 읽기로 시작했다. 완독의 목표를 채우고자 달려보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오호 내 인생사 같구나 헛웃음과 돌림노래 같은 내용은 덤이다. 한글은 한글인데 마치 올해 학교를 들어가는 둘째가 코스모스를 집어 들고 읽으면서 왜 코스모스 꽃은 안 나오냐는 물음을 한 것과 같았다. 



운명의 수레바퀴

74일 대장정의 기간은 첫째의 방학기간이다. 남들 방학 때조차 돌봄을 가야 하냐는 작은 투덜거림을 올 겨울 멈출 수 있었다. 석면공사로 돌봄이 없어졌고 아이는 함박웃음이다. 행운을 한 스쿱 더 올려 피아노 학원마저 방학을 했다. 근심걱정 없이 노는 맛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는 꽉 부여잡았다. 덕분에 둘째도 유치원을 땡땡이치는 행운을 선사받고 24시간 치고받고 서로를 놀아준다라고 표현하고 어미는 징그러 징그러 고만하라는 외침만 있다.



카페에서 일할 때면 남동생이 아이들을 돌봐준다. 주요 임무는 점심 챙겨주기와 논쟁을 말려주거나 비워진 가식 채우기다. 사실 그런 소소한 일들 말고 제발 올해는 취업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꼰대의 마음을 집어 치운들 어찌 다 늙은 친정엄마는 일하고 붙박이 장처럼 방구석에 있는 남동생을 있는 그대로 너그러이 바라봐줄 호인은 못 된다. 간간히 용돈을 주지만 내 사정이 여의치 않자 너도 뭐라도 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러던 남동생은 생에 첫 코로나에 걸렸다. 그간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타격이 없을 리 없다. 오픈했던 카페를 바로 닫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복귀했다. 금요일에 코로나에 걸려서 다행이다. 하루만 가게를 닫고 토요일은 남편이 아이들을 보면 되겠구나 이기적인 모습을 보았다. 내가 코로나에 걸려 친정집에 혼자 격리하며 받았던 것들이 떠올랐지만 내 새끼가 우선이 되어보니 재빠르게 짐을 싸들고 집으로 오기 바빴다. 



친정엄마의 걱정이 딱 이것이다. 막내도 얼른 취업하고 자리 잡아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에 나는 동조하지 않았다. 각자의 삶이 있고 결혼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막상 동생이 코로나에 걸리자 누나들은 자기 살기 바빠 앓아누운 동생을 챙기는 건 친정엄마의 몫이 되었다. 남동생에게 해준 것은 안부전화뿐이었다. 엄마의 걱정이 이런 것이구나 너무 쉽게 깨달았다. 병간호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 무엇이든 하는 원동력이 가족이 될 수도 있겠다. 누군가를 만나고 하고 싶은 것들 해주고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가족이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 남동생의 코로나는 엄마에게 옮겨졌고 마냥 문을 닫을 수 없어 첫째 아이와 카페 생활을 시작했다. 아침에 도착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책과 장난감을 쌓아두고 노트북과 책도 얹어 둔다. 아이는 카페에서 운동을 한다며 깡충거리거나 블록을 가지고 놀거나 그마저 지루하면 책을 펼친다. 물론 자발적이 아니고 어미의 호랑이 눈빛 이제는 책 좀 보자의 외침에 응답할 뿐이다. 



점심은 한솥 도시락을 먹으며 짠한 마음과 달리 아이는 재미있단다. 둘째 날은 생선에 콩나물 국을 먹다 손님이 오자 그 어린아이도 눈치가 있는지 손님이 돌아가자 엄마 밥 먹는 거 좀 민망했지 라며 오히려 내 불안한 눈빛을 읽는 아이가 되었다. 카페체험을 하듯 하루 이틀을 삼일을 보냈고 잘 지내준 아이에게 보상처럼 주말에 쿠키 만들기, 식당에서 삼겹살 먹기, 영화관람을 했다. 오랜만에 영화관 나들이까지 아이는 행복한 방학이라며 흡족했다. 



첫째는 그렇게 행복함이 최고조에 이르며 주말밤을 마감했다. 얼마나 행복한지 잠결에 잠꼬대하는 모습이 아직도 아이구나 싶다.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며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발그레 상기된 볼에 시선이 멈췄다. 행복이 무르익어 체온도 살짝 올랐지만 곤히 자는 아이를 깨우기 미안해 그냥 뒀다. 아침을 마주한 아이는 39도 고열과 함께 시작했다. 



아이는 작년 연말까지 매달 아팠다. 시작은 A형 독감이었고 마지막엔 폐렴으로 마무리하며 한차례 지나갔다. 보름뒤에 코로나에 걸리며 가지가지한다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이젠 끝이라 여겼던 아픔은 한 달 뒤에 A형 독감에 또 걸렸다. 몰아서 계속 아팠던 아이라 연말 가족파티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서럽게 울며 그간 아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었는지 행복한 순간보다 설움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해 가족 모두를 당황케 했다. 눈치 빠른 둘째는 우리 가족 모두 함께한 순간이 행복했다고 말해주는 딸 가진 엄마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줬다.



방학중에 아픈 거라 아이는 열심히 놀다 생긴 단순감기라 생각했다. 결과는 한 움큼의 약을 받아온 B형 독감이다. 온 가족이 돌아가며 걸릴 병을 이 아이가 다 짊어진 기분까지 든다. 



독감3번 코로나1번 폐렴1번 이젠 끝내자!!





독감이 걸릴 때마다 대학병원에서 맞춰주던 타미풀루 수액을 이번에도 또 맞아야 하냐며 의사 선생님이 묻지도 않았는데 하소연처럼 입에서 쏟아졌다. 그간에 대학병원 체험을 내심 좋아했던 아이는 이번에도 가는 건가 아픈 와중에도 눈빛이 반짝이고 의사 선생님은 B형 독감은 그 정도는 아니라며 그간 고생을 아이에게 다독거려 줬다. 



밖으로 나온 아이는 연신 수액 안 맞아도 되는 거냐 물었고 아쉬워했다. 어린것은 아픈 것보다 대학병원의 쾌적하고 신기함이 좋을 나이였고 대기하며 조금이라도 기운 차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빵과 이온음료 뭐든 먹으면 오케이 하던 어미 모습이 좋았나 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증상으로 오고 가는 병원이지만 아이와 달리 오고 싶지 않은 곳이 대학병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없던 병도 생길 거 같고 돌아가신 아빠와 동생의 아팠던 모습이 떠올라 주렁주렁 달린 수액을 보고 있노라 마음이 편할리 없음을 아이는 알지 못한다.



활짝 피자

집으로 돌아와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아이는 두통이 사라지자 무료함에 몸이 베베 꼬인다. 구세주처럼 때마침 도착한 씨앗 키우기 택배가 어찌나 반가운지 자발적으로 언박싱하는 손놀림이 가볍다. 요리조리 씨앗을 꺼내고 둘러보며 식물이 다 자랐을 때 예상 키와 발아되는 날짜를 물어보더니 위치를 체크하는 꼼꼼함을 보였다. 





 

아이는 씨앗을 심을 때마다 이름을 지어줬다. 첫 번째 키운 라벤더는 이루다, 이겨라 남들 다 클 때 안 크고 아직 살아는 있지만 더디 자라고 꽃을 피우질 않아 아이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두 번째 바질 쑥쑥이도 한파에 쑥쑥은커녕 똥자루로 생을 마감한다. 처음부터 잘 키워서 바질파스타를 해 먹는다는 말을 내뱉어 애가 졸았나 보다. 세 번째 포기하지 않고 지어준 이름은 활짝 피자로 정했다. 이름 작명소도 아니고 웃음이 나왔다. 아마 씨앗이 잘 자라서 피어나길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더해 내 마음도 보태 본다. 아이의 건강과 2024년 다짐들이 모두 활짝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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