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글 쓰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모르는 게 약이었는데 쓰다 보니 금방 들통이 나 버리는 필력이 창피했다. 본인 글 패턴을 질리는 작가라 당황스럽다. 잘 쓰는 작가를 보면 열심히 아니 죽도록 노력한 세월이 십 년이 되거나 아니면 문예창작과 대학을 나왔다. 솔직히 문예창작과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나다. 그만큼 책과 담을 쌓고 살았고 소설가는 그냥 만들어지는 줄 아는 무식이다.
거기까지였으면 딱 좋았을 텐데 주목받고 싶은 능구렁이였다. 다음에 내 글이 올라가는 순간이 짜릿하고 좋았다. 심지어 글쓰기 방에서 제목 장인 작가로 불리게 된다. 여러 번 다음이나 구글에 글이 올라가 보니 이제 사람들의 니즈를 파악하게 되어서 이 정도 제목이면 조회수가 뜨겠다는 느낌도 왔다.
조회수가 올라가면 무슨 일이 생기는 줄 알았다. 김칫국을 여러 번 마시다 보니 배도 부르고 마음도 허했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북클럽 독서량으로 글은 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북클럽 작가들은 이미 책과 친하게 지내는 지성인이었다. 요즘에 책 읽는 사람을 유물이라고 하는데 그 유물을 10명이나 알고 있다. 서로 책을 추천해 주고 신간이 나오면 알려주는 책 배틀이 심심찮아 재미있었다.
우연히 고전 읽기를 해보자는 말이 나왔고 제일 만만하게 도전해 보라 추천한 작가는 헤르만 헤세 작가였다. 처음 읽은 고전은 수레바퀴 아래서는 못 읽는 수준은 아니었다. 두 번째는 데미안을 시작했는데 세상에 한글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뭔 놈에 표징을 찾는지 천주교 신자인 내가 읽어도 그 징표가 뭔지 알 길이 없다. 페이지를 읽고 또 읽고 겨우 데미안을 읽었다고 말하며 끝났다. 세 번째 싯다르타를 읽을 때야 웃음이 나왔다. 싯다르타 당신도 별거 아니구먼. 결국 자식 앞에 무너지는 모습을 봤을 때 참 인간적이야 부모 마음이 다 그렇지 뭐 다른가 싶었다.
세 권의 고전을 읽다 보니 헤르만 헤세가 궁금했다. 100년 전에 나왔던 고전이 아직도 도서관 대출 중으로 쉴 새 없이 나가는 인기도서였다. 요즘 팔리는 작가라고 하지만 그들은 100년간 계속 증쇄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재미있고 좋지만,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없다. 북클럽 작가들에게 저는 헤르만 헤세가 되고 싶다고 망언을 했다. 그 정도로 읽히는 작가처럼 글이 쓰고 싶은 게 더 정확했다.
잘 쓰려고 책을 읽다 보니 23년에 읽은 책이 50권 정도 되고 새해부터 미디어를 줄이고 책에 집중해 읽다 보니 8권을 읽었다. 다독이 좋은 것이 아니라 읽다 보니 빠져들게 되어 작가의 다른 글을 찾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안보윤 작가, 은유 작가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좋았고 다른 사람들이 읽고 공감이 생기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오지랖도 부려본다.
아이들 책을 빌리러 들락거리다. 책 속에 빠졌고 내 삶의 방향도 좌우로 흔들어 봤다. 실패한 삶에 회복 탄력성도 붙어 탈진이 찾아오기 전에 좌회전하는 기술도 연마했다. 열심히 읽고 쓰다 보니 행운이란 기회도 찾아온다. 대단하지 않은 작가지만 도서관에서 브런치 소로소로 작가로 읽고 쓰는 삶에 대해 강연도 하게 되었다. 떨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떨리고 부끄럽지만, 사람들이 읽고 쓰며 위로와 외롭지 않은 삶의 힘을 얻기를 바란다.
헤르만 헤세가 되고 싶어 허세를 부리다 보니 죽기 전에 문학상도 받아보고 싶다. 평생을 공부와 담쌓았는데 봉평에서 상 하나 받으면 내 인생 참 기막힐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