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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Jan 22. 2024

양귀비

아이가 중학년이 되자 불안감이 걷히고 숨이 쉬어졌다. 지금부터 힘써서 가르쳐야 할 시기에 역으로 힘을 빼고 자기 주도를 시켰다. 초침 시곗바늘처럼 느리지만 정확하게 아이는 자기 할 일을 하기 시작했고 어미로써 모범을 보이고자 새로운 배움을 시작했다.



나중에 직업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다 플라워 입문반 수업을 신청했다. 오랜만에 배움이라 떨리는 마음보다 설렘에 마음이 일렁였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은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라일락 향기와 싱그러운 풀냄새가 어우러져 그 곁에 단정히 앉아 있는 그녀가 보였다.



선생님이 수업을 설명하는 내내 눈길은 그녀에게 향했다. 갈색 단발머리 복숭앗빛 시폰원피스는 움직일 때마다 하늘거리고 볼에는 생기가 돌고 웃을 때 보조개가 귀여움을 더해줬다. 그녀의 하얗고 긴 손에 들린 가위는 망설임 없이 소재들을 잘랐고 꽃바구니는 그녀처럼 우아했다. 처음 잡아보는 꽃과 바삐 움직이는 그녀의 손길을 번갈아 따라갔던 2시간 수업이 끝나 자리에 앉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는 가방에서 쿠키를 건네며 수업이 점점 재미있을 거 같지 않냐며 자신의 이름은 오영이라고 소개했다. 8주간의 수업이 끝나고 비슷한 관심사가 많았던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맛있는 반찬가게, 염가 판매, 아이들 학원, 추천 여행지까지 오영은 최신 정보들을 연신 알려주며 함께 하는 것에 행복하다 말했다. 아침에 시작한 운동과 굿 나이트 인사까지 카톡은 쉼 없이 울렸고 그칠 줄 몰랐다. 



오고 가는 정을 주고받다 서로의 지인까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얼기설기 엮인 거미줄에 빗방울이 내렸다. 방울방울 맺혔던 빗방울은 구멍이 나고 찢어졌다. 오영이 전해주었던 수많은 정보와 친절을 더해 주변 비교는 나를 소란하게 했다.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가지지 못해 불행했고 마음과 달리 좋아하는 척 연기할수록 감정이 없는 편이 오히려 편했다. 



섬세했던 그녀는 열을 내어주면 아홉 번 감사보다 표현하지 않는 단 한 번을 기억하며 섭섭하다 토로했고 그때마다 균열 간 마음을 연신 처음과 같이 메꿔보려 살가운 마음을 더 했지만 그럴수록 틈은 더 벌어졌다. 때론 오영은 섭섭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았음에도 다른 사람이 앞에서 철저히 나에게 친절함을 부여했고 그럴수록 제발 나와 소원해지기를 바랐다.



하늘하늘 양귀비 같은 오영이 좋았다. 그 모습에 취해 서서히 중독되어 가는지 모르고 어리석게 즐거워 웃고 괴로움도 비난도 하나가 되어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오늘도 연신 거짓의 언어를 찾아 오영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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