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의 그린라이트를 받아들였다

그가 웃었다.

by 소로소로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표어처럼 입에 착 감기듯 알고 있는 말이다. 알고 있지만 아플 때마다 병원을 가? 말어? 고민은 같이 따라다니고 죽을 때까지 병원이란 존재는 친해질 장소 같지 않다.



화상 치료가 끝나고 발에 물집이 생겨서 약과 연고를 처방받아 왔다. 습한 날씨 때문인지 오른쪽 발바닥에 수포가 생겼고 가려웠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유독 그랬던 거 같은데 발길 떼기 어려웠던 병원을 하루가 멀다 하고 다녔더니 고민도 없이 병원으로 향하는 용기를 주었고 이 와중에 아들 반깁스 하느라 정형외과를 3일 일마다 갔더니 옆집처럼 아무렇지 않게 병원과 친밀해질까 봐 겁이 난다.




들락날락거렸던 익숙한 공간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쾌적한 실내에 들어선 순간 제일 편안한 소파에 착석하고 은행 대기자처럼 가지고 온 책을 펼친다. 이쁘다 병원은 대기표를 뽑는 곳도 작성하는 종이도 없어서 환자들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들어오는 순서를 대충 눈으로 몇 번째구나 외워둬야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온 사람들은 어찌나 예민한지 서성이다 앉았다 일어섰다 미어캣이 망보는 진 풍경이 열린다.




진료시간 5분 전이 되면 이쁘다 병원 선생님은 칼같이 들어오신다. 뭔가 오차가 없는 이분은 더 신뢰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피부과의사인데 과잉 진료도 뭘 하라고 권하지도 않는데 치료가 끝나면 레이저 치료라도 권할 거 같아 조마조마 전혀 말씀이 없으시다. 이렇게 넓게 병원을 만들어 놓고 잔잔하게 벌어서 될 것이 아니란 생각에 빠져있다. 오신 순서대로 이름을 말하라는 소리에 삼천포에 빠진 정신을 챙긴다.



몇 번 보았다고 먼저 인사를 하는 아줌마책도 생겼다.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했더니 저번에 처방해 준 약을 먹고 가려운 건 없어졌는지 물어보신다. 없어졌는데 딱히 나아지는 것은 모르겠어요. 저 정말 약 꼬박꼬박 챙겨 먹었어요.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싶은 아이처럼 말을 보태고 있다. 선생님 근데 왜 더 심해지는 거 같은 느낌인가요 날씨가 습해서 그런가요?라는 물음에 맞다고 하시면서 나의 수다에 빙그레 웃으신다.


선생님이 활짝 웃었다
이때 다 드디어 그동안 부끄러워서 못했던 말을 하기로 했다.


선생님 그런데 말입니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요? 이제껏 떠들었으면서 물어봐도 되냐는 말은 참 웃기다.
네 말씀하세요.
저 발톱 무좀이 있는데요. 사실 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병원을 오다 보니 이참에 고치고 싶어서요. 약을 오랫동안 먹고 독해서 간에 무리가 가는 거라고 해서요.
아. 그런 약도 있고 기간이 조금 길고 일주일에 한 번 먹는 건 간에 무리가 덜해요.
네. 선생님 그런데요. 그 약을 먹으면 맥주를 못 마시나요? 저 맥주를 포기 못해서 치료 못 받았거든요.
선생님이 껄껄껄 웃으신다. 네 여름에 맥주는 포기할 수 없죠. 약 먹고 난 이틀은 드시지 마세요.
예스!!! 그럼 당장 약 처방해 주세요.




그렇다. 맥주 때문에 발톱 무좀을 방치했다. 지금도 딱히 치료를 해야 하나 잘 보일 사람도 없지만 두꺼운 새끼발톱을 가지고 다녀서 좋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 달에 한번 이쁘다 선생님께 약 잘 먹고 있다. 보고하러 올 참이다. 더불어서 발가락에 핫한 색깔 매니큐어도 칠해 보자.

아싸라 비아 콜롬비아 맥주 포항항~



병원은 환자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 주어도 긴장감이 맴도는 공간이다. 때론 웃음이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켜서 쉽게 하지 못하는 말 부끄러운 말도 나올 수 있다. 이쁘다 선생님처럼 다정한 의사 선생님이 많아지면 세상 발톱 무좀이 더 사라질 것이다. 발톱 무좀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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