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레슨 1회차 | 베짱이력이 상승하였습니다

by 박소록


레슨곡으로, 밴드보컬 러버는 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골랐다. 우선 레슨 시작하면 호흡 연습부터 한다. 몸을 가지런히 세우고 호흡을 서너 번 한다. 깊게 들이쉬고 깊게 내쉰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깊게 들이쉬고 풍선 바람 빼듯 공기를 빼낸다. 이때 나오는 숨의 양이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시간 체크를 함께 한다. 보통 40초 까지는 버틴다는데 나는 1분 20초가 나왔다. 오티 때보다도 30초나 길어졌다. 긴장이 좀 더 풀린 상태여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노래 부르기.


나는 쑥스러움이 정말 많은 성격이라 가족끼리도 노래방에 가면 잠자코 탬버린만 흔드는 편이다. 거의 초면에 가까운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게,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쉽지 않은 게 사실. 힘껏 불러내고 싶은데 과속방지턱에 걸리기라도 한 듯 기세가 훅 꺾여 버리는 편. 그러나 나는 노래를 배우려고 여기에 왔다. 그러기 위해 강습비도 지불했다. 노래를 안 하고 노래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노래방에서도 여러 번 불러보고 또 좋아해서 가사도 어느 정도 숙지되어 있는 곡으로 골랐다. 사실 선생님이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는 곡인가요?”라고 물어보셨는데 어떤 기대감을 갖게 할까 봐 “잘 안 불러봤다 “고 거짓말했다. 내 성격이 이렇다. 가끔 이런 성격이 귀찮아 죽겠다.


여자키 준비해 주셨는데 너무 편하게 불러서 느낌이 안 난다고 2 키 올려서 진행했다.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 “저렇게 열심히 부르는 곡인데 지금 소록님은 너무 쉽잖아요. 느낌이 영. “

그러게요.


역시나 리듬감이 없어서 노래가 밋밋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원곡 같이 들으면서 한줄한줄 디테일한 부분을 체크해 나갔다. 카피하며 불러보니까 노래가 좀 더 맛깔나졌다. 역시 프로들은 다르구먼. 마지막 녹음과 처음 녹음 같이 들으니 처음 녹음은 거의 자장가 수준으로 밋밋해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숙제도 내주셨다. 아이패드에 가사 복붙해서 호흡체크, 강세 체크해 보라고. 시간이 더 나면 끝음처리나 발음도 고민해 보라고. 전업작사가 지망생이라 노래를 부르면서 가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쓸모없어서 즐거운 일이므로 애써 쓸모를 찾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사를 읽고 부르고 발음을 떠올리다 보면 작사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니 곡분석할 때나 가수 분석할 때, 직접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입장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도 분명했었다. 촉박한 시간 안에 완성하여 보내는 것 자체가 이미 나에게는 챌린지였으니까. 특히 이번 노래처럼 한 노래를 여러 사람이 부르고, 부르는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다면 이 파트는 누가 부르게 될까? 고민하며 완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멤버의 이미지에 맞는 가사를 쓰거나 좀 더 매력적인 배치도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쓰기에 급급해서 분석을 등한시했다.


물론 이런 생산적인 사고가 없었어도 노래 부르는 일은 그냥 재밌었다. 이상하게 예—전 처음 보컬레슨 받아봤을 때보다 최근의 목상태가 더 좋다. 훨씬. 예전에는 레슨 막바지가 되면 목이 쉬곤 했는데 레슨 마지막까지 목이 쉬지 않았다.


목표는 3 키 올려서 불러보자는데, 왠지 가능할 것 같음.

아, 근데 진짜 심각하게 재밌어서 베짱이력이 더 상승할 거 같아.

안 그래도 좀만 느슨해지면 바로 베짱이처럼 사는데.


본업이 로테이션 근무라 스케줄 맞추기 쉽지 않은 거 빼면 재밌고 안 할 이유가 없고 순전히 재미만을 위한 시간이라 더 행복하다. 엄청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선생님이 노래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셨다. 베짱이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그냥 술 마시고 노래방 가서 스트레스 없이 좋아하는 노래 부르고 싶어요. 무언가를 배우는 일이니 당연 약간의 향상심은 동반되지만 달성해야 하는 구체적인 목표 같은 건 없으니 스트레스도 없다.


여기서 기타만 배우면 완벽한 베짱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건 쓸모없어서 즐거운 일의 다음 목록에 추가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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