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벌이기 좋아하지만 수습하는 데에는 영 꼼꼼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마라톤은 늘 신청날에는 의욕 뿜뿜, 막상 대회날이 다가올수록 도망가고 싶은 굴레. 그렇게 때문에 더더욱 강제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냐며 나름의 이유를 갖고 이번에도 마라톤을 신청해 보았다. 언제까지 5K 행복 달리기만 할 것이냐, 이제는 10k로의 도약이 필요하다. 여름부터 올해가 가기 전에 도약을 해보자며 직장동료들과 으쌰으쌰 의견을 모았다. 그러니까, 11월 손기장 마라톤에 나가자고 의견을 모은 것은 여름의 일이었다. 여름형 인간이라고 자부하는 나, 여름에는 의욕이 뿜뿜 했겠지. 날이 조금만 추워지면 이불 안이 동굴인 양 잠으로 겨울을 나는 동물처럼 도통 나올 줄 모르는 인간이란 것을 까먹고 말이다. 여름의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가을에는 날아다닌다는 말이 너무 달콤하여 여름 동안 제법 열심히 달렸는데, 굳이 그렇게 달려놓고 가을이 갈!처럼 지나가자마자 달리기와의 인연도 툭 끊기었다. 가을이 갈!처럼 지나가는 바람에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대회날이 이번 주 일요일.
5K도 아니고, 첫 10k를 단 한 번도 10k를 뛰어보지 않은 상태로 나갈 참이냐. 스스로를 나무랐지만 이 인간, 첫 5k도 3킬로 깔짝깔짝 뛰다가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기세로 나갔던 사람. 그래서 그런가, 분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배구를 하라는 연경신의 말이 통나무가 관통하듯 나를 으스러뜨리더라. 그런데 사람 쉽게 안 변하죠? 그런데 또 어떡합니까.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 그 날짜가 다가온 것을. 분명 나 혼자만의 약속이었다면? 나는 당일 불참했을 것이다. 좋아하지만 마냥 쉽지 많은 않은 직장동료와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도무지 ‘저 연습을 안 해서 그날 참석 못할 것 같아요.‘ 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게요, 사람에게 체면이란 뭘까요. 이번에는 기세로 나갔다보다 체면치레 하려고 나간 셈이다.
그래도 나가기 전에 7킬로는 뛰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일요일 대회를 앞둔 금요일, 출근 전에 7킬로 달리기를 감행했다. 오랜만에 그야말로 희로애락이 느껴지는 달리기였다. 희망과 좌절이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이 착 붙은 달리기. 아직 가을이 완전히 가지는 않았구나 싶은 날씨, 아침햇살, 대부분 사람들의 출근이 한창일 때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기만적으로 달리는 오만한 기쁨까지. 하지만 그 모든 기쁨의 요소를 다 합쳐도 종종 뛰던 5킬로를 벗어나자마자 지옥의 행군이었는데, 아무리 느리게 달려도 잘 걷지는 않는데 이게 안 걸을 수가 없었다. 천천히 가면 멀리 간다지만, 그런 당연한 말도 당연하지 않게 만드는 나의 체력이 허망할 지경으로 걷뛰를 반복했다. 이 달리기의 희망이라면 내가 평소에 5킬로도 힘들다고 했던 건 거짓부렁이었구나. 5킬로 정도는 매일 달릴 수도 있겠구나. 마음을 안 먹고 싶어서 핑계가 많았구나. 이 달리기의 절망이라면 내일모레 10K는 높은 확률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전략을 수정한다. 7킬로까지는 무조건 달린다. 하지만 그 이후는 전적으로 7킬로를 달린 나에게 결정권한을 넘기겠다. 걷뛰를 하겠다면 해라, 걷겠다면 걸어라. 중도 포기만 하지 말고 끝까지 최소한의 체면치레만 한다. 단지 직장동료와의 약속을 내팽개치지 않기 위한, 참석에 의의를 두는. 이 계획에 전략이란 말은 의미적으로 과대포장처럼 느껴질 정도의 허술한 전략. 이런 마음가짐이라서 그런지 배번호와 기념품 택배개 도착했지만 뜯어보지도 않았다. 대회 당일 새벽에서야 어쩔—수! 없다는 마음으로 배번호를 꺼내기 위해 택배를 뜯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10K는 완주했고 모든 결정권한을 넘겨받은 7킬로를 달린 나는 기가 막힌 날씨와 이런 게 러너스하이인가? 싶을 정도로 날아갈 듯한 감정 상태로 인해 계속 달리기로 결정하였다. 사실 당일에 전략을 하나 더 추가했다. 반환점에 갈 때까지 음악을 듣지 않는다. 초반치고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얼떨결에 페이스가 빨라지지 않도록 메트로놈만 켜고 일정하게 달렸다. 5킬로를 돌았을 때 분명 나는 ‘아, 온 만큼 또 가야 되네. 미친.’ 이런 기운 빠진 생각으로 내 의욕에 초를 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음악을 금지시키고 내 플리를 5킬로 반환점의 보상으로 남겨두었다. 그게 꽤 유효한 전략이었는지 에어팟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자마자 감정의 혈색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5-8킬로 구간 내내 힘들기는커녕 ‘이거 뭐, 조금 빠른 산책 아닌가?’ 하며 진짜로 웃으면서 달렸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막기가 힘들었다. 랜덤으로 틀어놨는데 플리에서 좋아하는 노래만 쏙쏙 골라 나왔다. 문제는 8킬로 이후였는데, 이때부터는 본격적인 나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깝잖아. 달렸는데, 이제와 걷자고? 이제와 걸어서 굳이 굳이 마음이 찜찜해지겠다고?‘
‘너, 산책 15분도 안 남음. 노래? 5곡도 못 들음.‘
‘뭘 걸어. 그냥 빨리 끝내고 집에 가자, 피곤한데.‘
나무라고 달래고 오만가지 설득 끝에 오늘 90분 안에 들어오는 게 목표라고 했던 나는 1시간 11분에 도착했다. 대단한 기록도 아니고 느리고 느린 달리기였는데, 난 좀 신기했다. 이게 되네? 이게… 되네? 인생을 벼락치기로 사는 사람은 이게 문제라던데. 이게 되네? 이게 말이다. 벼락치기가 통해버리는 순간들이 사람을 자꾸 벼락치기하게 만든다는데. 또 이게 되어 버렸다.
불과 지지난 글에서 흥미와 재미의 영역에 달리기를 두고 싶다고 했는데, 언젠가 60분 안에 들어오는 것을 목표로 또 마라톤에 나오자며 좋아하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은 직장동료와 약속했다. 체면치레 하겠다고 나온 마라톤의 경험이 생각보다 재밌었기 때문에, 아주 약간의 향상심은 추진력 같은 게 되어주지 않을까.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니까. 집에 돌아오며 오늘의 달리기, 조금은 목표 없는 취미생활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내가 그날 달렸던 기억 중 가장 생생한 부분은 5킬로 이후의 달리기였다. 특히 7킬로를 지났을 때, 그리고 8킬로 이후 한계라고 생각했을 때 나와의 대화 중 가장 내 멱살을 세게 붙들고 끌고 갔던 생각은 이거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지금부터는 모든 걸음이 그렇게나 새것이다. 설레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과정이 괴로움으로만 가득 찬 게 아니라 설렘, 기쁨, 뿌듯함, 절실함 같은 색색깔의 감정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모두 느끼려면 내가 나에게 섬세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옆에 누군가 함께 달리고 있어도 내 달리기는 오롯이 내 몫이니까, 그래서 섬세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내 안에 지금 괴로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생각해 보면 산다는 게, 옆에 누군가가 있어도 자기 몫을 해나가는 일인데,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온전하게 내 몫으로 할당된 매일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새삼스레 설렐 이유를 잔뜩, 잔뜩 만들어내고 싶다고. 매일을 완주해 나갈 힘을 바로 그 설렘에서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