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추석 때 내려갔다가 엄마의 친구-지만 나에게는 삼촌보다 더 삼촌 같은-인 아저씨에게서 “너 요즘 러닝한다며?”라는 말을 들었다. 5K 나갈 때마다 가족 단톡방에 이야기하곤 했는데 집에서의 내 이미지가 ‘운동은 잼병‘이라는 이미지에다가 운동을 싫어했던 어린 시절 덕분에 운동과는 담쌓고 사는 이미지인데, 러닝을 한다는 게 모두에게 신기했나 보다. 소록이가 글쎄 마라톤을 신청했는데 실제로 나가기까지 했대. 내가 하프를 뛴 것도 아니고 고작 5K에 나갔을 뿐인데 이 모든 사실이 가족들에게는 좀 의외였는지 아저씨에게까지 소식이 닿은 것이다. 가족 내의 운동에 관한 한 내 이미지가 어떤지 충분히 가늠되는 부분이다.
나조차도 운동이 특기까지는 아니지만 잼병도 아니란 걸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 이것저것 찍먹해 본 결과 처음 운동 시작할 때는 평생 운동에 관심 없던 티가 폴폴 나는데 몸에 익히는 과정은 빠른 편이다. 몸 쓰는 걸 싫어해왔던 거지, 써보니 몸을 못 쓰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꾸준함이 부족하고 게으르기까지 한 천성 덕분에 그럴싸한 실력향상을 맛보지 못하고 늘 중도포기한다는 거지. 러닝도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좀 다르다.
다르지 않은 부분은 꾸준함이 부족하고 게을러 중도포기를 밥먹듯이 해 실력이 전혀 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중도포기를 밥 먹듯이 한다는 건 시도도 밥 먹듯이 한다는 것. 바로 이 점이 다른 운동과 조금 다른 점이다. 나는 러닝을 심심풀이로 한다. 가끔 코인 노래방이 들르듯이, 가끔 예쁜 카페에서 분위기를 내듯이, 가끔 만화책을 읽듯이, 생각날 때마다 심심풀이로 달리기를 한다. 한 달에 네다섯번은 할까? 그러니 기록 향상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아래에 첨부할 최근 달리기 기록을 봐도 충분히 가늠되는 부분일 것이다. 이 인간은 기록에 전혀 관심이 없구나, 하는 점이.
아저씨는 풀마라톤도 뛰어볼 거냐고 물으셨는데,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에이, 절대절대 무리예요. 어느 날 목표가 생긴다고 해도 하프가 제 최선일 것 같은데요.”
그냥 날씨가 좋아서, 마음이 복잡해서, 야외활동이 필요한 것 같아서, 광합성이 필요해서. 이런 시시껄렁한 이유로 어느 날 불현듯 ‘달리기 해야지.‘ 하고 나갈 뿐이다. 올여름에는 좋아하는 밴드가 생겨 그 밴드 노래를 혼자 마음껏 듣고 싶어 플리를 짠 뒤 달리기를 나갔다. 집에 있으면 해야 할 일이 끝없고 그 할 일들을 하며 노래를 틀어둔다고 해도, 그럼 그 좋아하는 노래들이 언제 트랙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는 배경음악이 될 뿐이니까. 하지만 달리기 할 때 들으면 모든 트랙을 집중하며 들을 수 있다.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의 괴로움은 사람을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머물게 만드니까. 집에서는 배경음악이 되는 노래가 주인공이 된다. 되려 내가 달리는 풍경이 들을 때마다 벅차오를 만큼 좋아하는 이 노래들의 배경이 되어준다. 그때의 공기 냄새, 그때의 온도, 그때 하늘의 색깔을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 담아두고 싶어서. 그래서 때때로 그날들과 비슷한 계절이 오면 또 이 노래들을 떠올리고 싶어서. 한여름의 달리기는 내 음악감상에 이용당했다.
심심풀이로 달리기 하는 사람에게 풀마라톤이라니. 하프도 사실 굉장히 허황되다.
하지만 하프를 거론한 이유는 그래도 달릴 수 있는 길이나 시간이 늘어나는 게 신기하긴 해서. 나처럼 운동과 거리가 멀던 사람의 첫 달리기는 쉬지 않고 3분 달리는 것도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 내가 5km 정도는 ‘쉽지는 않은데 개운하네.’ 정도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생겨나는 변화’가 신기하기는 신기해서. 내가 10km를 달리네? 신기하다. 내가 15km를 달리네? 신기하다. 이런 식으로 나아가다 보면 하프까지는 꿈꾸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달리는 일 자체가 즐겁기도 하다. 즐겁지 않았다면 진짜 음악감상이나 하자고 한여름에 달리기를 하러 나갈 리가 없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의 벅차오름과 달리기 할 때의 벅차오름의 주파수가 잘 맞아떨어지니까 음악감상과 달리기를 이어 붙인 것이다.
아저씨는 풀마라톤은 왜 관심 없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제 한계에 도전해보고는 싶은데… 저는… 인간의 한계까지 도전해보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어라? 이게 되네?’라는 감정으로 도달하고 싶은 거리가 하프까지 일 것 같다는 의미였다. 하프 마라톤을 뛰는 분들도 그렇지만 풀마라톤에 출전하는 사람을 보면 경외심을 갖게 된다. 내게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심심풀이로 달리기 하는 사람이 언감생심. 그냥 지금처럼 얼토당토 하지 않은 핑계로 비정기적인 달리기를 하는 게 내 깜냥에는 알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즐거우니까. 좋아하는 일을 즐거울 만큼만 하려면 딱히 목표를 갖지 않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나에게 달리기가 영원히 쓸모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표를 세우고 향상심을 갖게 되는 일이 아니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즐거움의 일부를 상실한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냥 심심풀이로 동네 한 바퀴 달리면 그만, 하고 마는 일이기를.
현재는 그렇다, 지금은.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