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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악인

그 사람은 악인이겠죠?

by 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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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 이어 두 번째로 이상일 감독님의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분노>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이전 작품인 <악인>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 역시 요시다 슈이치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네이버 웹툰 <닥터 프로스트>는 가상의 심리학자 고든 엑스너의 말을 인용해서 시작합니다. "지구에 60 억의 인구가 있다면, 그들의 심리 상태와 기질, 성격은 모두 달라서 전부 60 억 가지의 심리와 기질, 성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 [한 사람]에 대한 60억 가지 표현일 뿐이다."


처음 웹툰을 보았을 때도 그랬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영화 <악인>을 보고 난 후에도 이 말이 한참을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의 TV 속, 핸드폰 속, 인터넷 속에 가득 채우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소위 말해 나쁜 사람들과 오늘도 반듯한 삶을 살고 있다는 선량한 사람들은 전부 우리가 믿는 그대로의 사람이 맞을까요?


줄거리

국도 변에서 한 여자가 사체로 발견된다. 여자는 보험 회사에 다니는 요시노. 경찰은 범인을 쫓고 여자와 마지막 만남을 가졌던 대학생 마스오, 사이트를 통해 즉석 만남을 가진 적 있는 유이치를 용의자로 꼽는다. 한편, 유이치는 다시 사이트를 통해 만남을 가지고 상대 미츠요 만나 진정한 사랑을 시작한다. 영화는 범인을 찾아나가 느 추리 스릴러라기보다는 범인의 로맨스에 가깝다. 일찍이 범인을 알려주고는 범인에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준다. 대신 질문을 합니다. 누가 악인일까?



악인이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을 우리는 악인이라고 하는 것일까? 영화 속 범인인 유이치는 요시노를 죽인 범인이지만 유이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착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경찰에서 조사를 나왔을 때에도 그저 젊은 아가씨가 안됐다는 이야기만 할 뿐 유이치에 대한 의심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유이치가 범인이라고 지목된 후 모든 사람들은 유이치를 악인으로 단정 짓는다.


악인이 결정된 영화에서 사람들이 어떤 행동하는가? 처음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마스오는 요시노가 죽는 데 어느 정도 직접적인 기여를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악인은 아니다. 비록 그가 자식을 잃은 요시노의 아버지에게 모욕을 주며 죽은 요시노를 비아냥거리며 한낫 재수 없는 경험담으로 떠벌리고 다니지만 죽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악인은 아니다.

요시노는 허영심 가득하고 매사에 거짓 말뿐이지만 피해자일 뿐 악인은 아니다. 순진한 유이치와의 만남에서 돈을 요구하고 지역과 출신으로 그를 무시하며 선약을 깨버렸어도 어찌 되었든 요시노는 피해자이다.

자식은 앞서 보낸 부모를 두고서도 그 딸을 모욕하고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용의자의 가족들의 삶을 뭉개버리는 사람들은 이 사건의 제삼자 일 뿐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는다. 외롭고 힘없는 노인들을 공략해 돈을 갈취하는 사람들 역시 좋은 약을 파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평소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동네 어른들의 병원일까지 나서서 챙기고, 말은 적지만 속은 깊은 유이치는 요시노를 죽인 범인이기에 악인이다. 다시 미츠요를 만나 그녀에게 삶의 이유를 선물했지만 이미 그는 요시노를 죽였기 때문에 그는 악인이다.


Villain.2010.Blu-ray.RE.720p.x264.DTS-MySilu.mkv_006458245.png 늙은 유이치의 할머니에게 추재를 위해 달려드는 기자들

인간은 결코 하나의 모습만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한 없이 순수한 사람으로 어느 누군가에게는 까칠한 사람이기도 컨디션이 안 좋은 어제는 무뚝뚝한 사람으로 즐거운 소식이 있는 오늘은 티 없이 밝은 사람으로 보인다. 우리는 너무 단편적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이치의 동기가 납득이 되는 것도 아니고, 요시노가 죽어 마땅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마스오가 더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악인이란 무엇일까?


말없이 유이치가 선물한 스카프를 다리에 걸어두고 간 할머니와 어김없이 딸이 죽어간 곳을 정리하러 오는 아버지. 세상이 바라본 유이치와 자신이 아는 유이치 사이에 있는 미츠요.

그 사람은 악인이겠죠?
할머니 잘못 아니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셔야 돼요.

이 영화에선 다른 말 보다도 버스 운전사가 할머니에게 건넨 무뚝뚝한 한 마디가 남았다. 기자들 사이를 건너오던 할머니와 죽은 딸의 발을 덮어주던 아버지의 힘없는 얼굴이 그렇게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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