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Let me In

12살 소년, 영원한 사랑을 만나다.

by 니니

오늘 수다 떨고 싶은 영화는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Let me In(2008)입니다.


이 영화는 2015년에 재개봉도 되고 그래도 꽤 유명한 영화인 것 같아요.

저도 인생 영화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이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고요하고 잔인하기도 한데, 그래서 아름다운 느낌이었거든요. 좀 어릴 때 보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설명할 수 없이 무작정 아름답고 매혹적인 인상을 받았어요. 그 경험이 아주 인상 깊었는데 아마도 제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 같아요.


일단, 영화가 전반적으로 고요해요. 정적인 영화가 지루하신 분들에게는 추천하진 않을게요.

영화의 첫 장면이 까만 밤하늘에 눈이 내리는 장면인데, 새까만 밤하늘에, 새하얀 눈에, 눈들이 부딪혀서 나는 소리에, 바람소리가 더해진 소리가 가득한 첫 장면.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그 소리가 첫 장면인 것은 어쩌면 오스칼과 이엘리의 외로움을 시, 청각적으로 담아낸 장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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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영화는 스웨덴 어느 마을에 살던 소년 오스칼의 옆집에 노인과 한 아이가 이사를 오면서 시작돼요. 오스칼은 이혼 가정의 아이이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으며 눈 내리는 마을에 마음이 고립된 소년이에요. 이엘리는 뱀파이어이고 영생을 살고 강한 힘을 가졌지만 삶을 살아가기 위해 흡혈을 해야 하는 오랜 시간 12살 몸에 소녀죠. 이 두 사람이 만나 가까워지는 이야기입니다.
제발, 나를 두려워하지 말아줘

영화 속에서 이엘리가 아주 매력적이에요. 뱀파이어가 영화의 소재로 다뤄지는 이유는 뱀파이어에게 존재하는 많은 요소들이 매력적이죠. 영생을 살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긴 시간의 축적으로 만든 많은 재산과 목을 물어 흡혈을 한다는 관능미도 존재하잖아요. 섹시하고 매력적이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뱀파이어가 가진 이런 요소들이 아름답지 않고 하나의 저주처럼 등장합니다. 인간들의 세상에 사는 뱀파이어는 주변인인 거죠. 이엘리는 피를 마시고 사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피를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뱀파이어에 가까워요. 흡혈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관능적이기보다 왠지 기괴하고 고단해 보여요. 이엘리는 자신의 정체를 오스칼에게 들키자


"제발, 나를 두려워하지 말아줘"


하고 말해요. 스스로도 뱀파이어라는 약점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엘리는 보고 있으면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채 죽지도 못하는 뱀파이어의 외로운 삶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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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랑 친구 안 할 거야.

오스칼과 이엘리의 장소는 집 앞 정글짐입니다. 이엘리는 정글짐에 서 있고 오스칼을 정글짐 앞 나무 앞에서 이엘리가 대뜸 "나 너랑 친구 안 할 거야.", 오스칼도 "나도 안 할 거야"라고 대답하지만 두 사람은 무언의 감각으로 친구가 되죠. 두 사람이 사진 속 모습처럼 정글짐에 나란히 앉기 전까지 두 사람은 대화 내용이 단절되어 있어요. 각자 할 이야기만 하는 거죠. 그렇지만 서로가 외롭고 잘 맞는다는 것을 분위기로 느껴요.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영화의 아름다움 중 하나예요.

두 사람이 정글짐에 앉아 있는 위치라든가 서로를 의식하면 하는 행동들을 본다든가 아주 섬세하고 별거 아닌 말들로 두 사람의 감정이 드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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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니? 내가 여자애가 아니래도 계속 좋아할 거야?

저는 이 영화를 아주 여러 번 봤는데요, 20살이 넘어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이 대사를 들으며 뭔가 소름이 돋았어요. 저 대사는 이엘리가 하는 말이에요. 일단 뱀파이어인 이엘리는 일반적인 '애'는 아니죠. 뱀파이어는 감염으로 번식을 한다고 알려져 있으니 사실 성별이 없는 게 맞지만 인간이었을 때의 성별을 따지겠죠? 이엘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12살이었다고 말해요. 아직 2차 성징을 지나지 않은 아이일 나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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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그 애 만나지 말아줘.

이 대사는 노인이 이엘리를 위해 피를 구하러 가면서 한 말이에요. 이엘리는 대답 대신 저렇게 노인의 주름진 뺨을 두어 번 어루만져주는 게 노인과 이엘리에 대한 설명의 전부예요.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아요. 뱀파이어인 이엘리의 하수인일 수도 있죠. 아니면 아주 오래된 오스칼일지도 모르죠. 다만, 그는 마지막까지 이엘리를 위한 선택을 한다는 거예요.


<Let me In >은 정말 좋은 장면이 많아요. 제가 말한 부분은 아주 일부분이고 그냥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영화예요. 저는 기분이 가라앉으면 꼭 이 영화가 생각나더라고요. 언젠가 감상적이고 싶은 순간에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잔혹동화라면 한 번쯤 시간 내어 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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