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속의 당신
처음에는 조금 특이한 형태의 가족이기에 호기심이 갔던 영화였다. 물론 유쾌함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벅찬 감동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잔잔한 영화이긴 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와 같은 어떤 커다란 감정 변화가 없는 영화는 쉽게 몰입이 깨지곤 한다. 솔직히 지루한 영화다. 그리고 가끔은 이런 지루한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줄거리
2년 전 남편을 사고로 잃은 효진(임수정)은 그 날 이후로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남편의 아들인 종욱(윤찬영)이 갈 곳이 없어진 것을 알고 고민 끝에 종욱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지금의 요진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어색한 아이와 쉽게 가족이 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고, 종욱 역시 아빠의 애인과 허물없이 지내기에 너무 일찍 자란 아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가족이 되는지를 지켜보는 영화다.
영화는 소설처럼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간다.
아마도 우울증에 걸린 듯 해 보이는 임수정은 정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만난 것처럼 이유를 알 수 없이 무기력해 보인다. 남편의 죽음 이후 살아감의 모든 것에 지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구구절절하지 않다. 효진도 종욱도 자신이 이럴 수밖에 없음을 이것이 자신의 최선임을 알아달라 떼쓰지 않는다. 이 지루한 영화가 마음에 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것이었다. 구구절절하지 않음.
효진은 엄마가 되고 나서도 집을 좀 불편하게 쓸 뿐 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다.
자신보다 아이들에게 막대하는 친구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걸 이해 못하겠다고 하는 임수정은 어쩌면 정을 모르거나 지금 정에 메말라 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영화의 줄거리를 보며 이 메마른 주인공이 아이와 함께 살면서 다시 삶의 생기를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신경 쓸 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것으로 보였다. 때로는 그것이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엄청나게 신박한 감정을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었고, 두 사람의 사이가 엄청나가 가까워지거나 서로에게 누구보다 특별해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지.
밥을 먹었느냐고 물어주고
혼자 들 수 있는 짐이라도 나눠 드는 것이
어쩌면 가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엄마라고,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같은 상처를 가지고 같은 것을 슬퍼하고
이제 같은 일에 행복할 두 사람이
서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서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