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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Jan 08. 2019

우리 둘만이 사는 세상

여행


 전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터미널과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먼저 일어나 준비를 하고 아침을 꼭 먹어야 하는 그를 위해 샌드위치를 준비해 나서기로 했다.


 ... 난 아침에 전원이 꺼진 핸드폰을 마주 했다. 처음 있는 일에 얼른 버스 시간을 미루고 허겁지겁 준비를 해 집을 나섰다. 로션만 바르고 집을 뛰쳐나와 지하철을 탔다. 그는 내가 탄 열차를 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준비를 끝내고 한참 전부터 만나기로 한 역에 도착해 있었는 데도 열차를 놓쳤고 우린 허둥대며 버스 출발 3분 전에 차에 올라탔다. 


 체력이 쓰레기인 나는 지하철 역에서 터미널까지 뛰는 동안 아침에 쓸 수 있는 체력을 전부 사용했다. 좀 자기로 했다. 


 여행 첫 날도 삐걱거렸지만 사실 여행 시작도 숙소나 차편을 알아보는 것도 그는 능숙하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여서 우린 더듬더듬 여행을 준비했다. 난 원래 짐을 간단히 챙기는 방법을 몰라서 뭐든 여유분까지 챙기느라 가방이 한 짐이었다.


 "나 아무래도 일주일은 살 수 있을 거 같아"


 내 말에 가방을 살짝 들어본 그는 귀엽다며 한참 웃었다. 한숨을 자고 만들어간 샌드위치를 나눠먹고 사진을 찍느라 몇 시간의 시간이 훅 지났다. 한옥마을 입구에서부터 내 손엔 한복을 대여해준단 광고지가 가득 들렸다. 


 "내가 기가 약하게 생겨서 그래"

 "아냐, 우리가 잘 어울려서 그래"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먹을 게 너무 많아 다 잊고 양손 가득 길거리 음식을 먹었다. 누가 먼저랄 거 없이 흘리고 묻히느라 줍고 닦으며 놀리고 웃는 일이 즐거웠다. 둘 다 걷는 것을 좋아해 배부른 채로 걷고 사진 찍고 그러다 또 먹었다.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해서 숙소는 관광지와 가까운 동네였고 작은 원룸 신혼집처럼 아늑한 분위기라 만족스러웠다. 저녁을 먹으러 객리단 길을 걸어가는 길은 꼭 흔한 지방 도시처럼 생겨 여행지의 낯섦보다 익숙함이 앞섰다. 내가 살갑게 팔짱을 끼며


 "지금 꼭 이런 말 어울릴 거 같아. '여보 우리 오늘은 장보고 저녁 먹고 들어가자'"

 "그럴까?"


 애드리브에 익숙하지 못한 그도 맞장구를 치며 내 말을 이어받아 답을 했다. 귀여워서 마카롱을 잔뜩 사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서울에서도 전주에서도 만나서 걷고 먹는 것이 전부였는데 여행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데이트를 하며 정말 이 사람이 남은 삶의 일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떤 실수에도 남을 탓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지 않고 제안해주는 사람, 귀신같이 내 약을 챙겨주고 짐을 나눠 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기에 언제 잘 거야? 묻지 않아도 불 꺼진 방에서 나란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눈 비비며 같이 준비한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행에는 분명 특별한 곳도 특별한 것도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심지어 모든 게 서툴던 이틀이 행복한 미래의 한 부분을 보고 온 듯 꿈처럼 여겨졌다. 


 당신을 사랑해서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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