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이 일하는 방식에 내가 의문을 품은 것은 처음부터였다. 나의 의문은 입사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건 바로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응애) 갓 태어난 신입사원이었으니까.
그런데 하면 할수록 '왜 이렇게 해야 되지?' 하는 마음속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시시때때로 내 머리통을 울렸다. 왜? 왜...? 왜 이렇게 힘들게...?라고 자문하며 2년이 지났다.
물론 때때로 이유를 물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나요? 이걸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것도 꼭 해야 하나요? (특히 굳이 안 가도 될 것 같은 출장을 가는 일이 힘들었다.) 그때마다 '직접 다 가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이게 다 '나중에 데이터가 된다'는, 그렇게 해야 '의미'가 있다는, 그렇게 안 하면 다른 곳과 '차별점이 없다'는, 이걸 해둬야 나중에 '명분'이 된다는, 이건 '꼭 우리가' 챙겨야 한다는... 그럴싸한 이유들은 있었다.
문제는 그런 '진짜'의 '의미'와 '차별점'과 '명분'을 다 찾아가며 일하는 동안 사람이 일에 치여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우리 팀에 사람이 대여섯 명쯤 된다면, 내가 지금 혼자 맡은 프로젝트를 두세 명이 함께 한다면, 그땐 팀장님이 고수하는 그 방식대로 일하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우리 팀 인력은 팀장1 + 팀원1. 그래, 그와 나 둘 뿐이다. (원래 셋이었는데 1명이 얼마 전 퇴사했고 그 자리가 공석이다.) 종종 일하다가 만나는 관계자들에게 두 사람이 이걸 다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와 이걸 어떻게 두 사람이 다 하세요?라고 묻곤 했다. (내 말이요!!!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 아니, 이제 당근인가? 당근을 흔들어야 되나???)
사람 둘 뿐인 팀에서 팀장님은 넘쳐나는 온갖 일을 모두 완벽히 해내고 싶어 했다. 이런 사람은 회사의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A급 직원일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최악의 상사다. 인간적으로 그에게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사로서의 그에게 가진 감정은 유감이라는 말로는 이제 부족하다.
"일로만 생각하면 이렇게 못하지"
갑자기 글을 쓰게 한 것은 며칠 전 팀장님이 한 말 때문이었다. 우리가 밤늦게 출장을 가야만 했을 때, 출장지에서 만난 누군가 또 "두 분이 이걸 다 하려면 정말 일이 많겠어요. 힘드시겠어요."라 말했을 때 팀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일로만 생각하면 이렇게 못하죠."
물론 이 이야기를 그가 처음 한 것은 아니다. 난 종종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고 그때마다 혼자 반감을 가졌다가 곧 잊곤 했지만, 유독 피곤했던 그날 저녁엔 이 말이 그렇게 어이없게 들릴 수가 없었다.
사실 월급 받으며 하는 일을 일 이상으로 즐겁게 하고 있는 이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자신의 일이 취미의 영역과 교집합을 형성하거나, 자기 계발 혹은 자아실현의 영역에 자신의 일이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이들이다. 다만 내가 싫은 순간은, 누군가 우리에게 일이 많아 힘들겠다고 할 때 나의 상사가 "이걸 일로만 생각하면 못한다"며내 몫까지 마음대로 대답하는 순간이다.
나의 상사가 나도 자신처럼 일을 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정말 믿어서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것은 하나의 주문에 가깝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쁘다.) 너도 나처럼 그렇게 생각하라는 은근한 주문. 잠깐, 이런 걸 주문한다는 것은 결국 팀장님도 잘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우리 팀 노동 환경은 거지 같다는 것을.
일을 일로만 생각할 것인지 그 이상으로 여길 것인지는 노동자 자신이 정한다. 그걸 강요하는 순간 당신과 나는 섭섭해지는 것이다.
입사한 이래로 내 업무가 나에게 순도 100%로 일이 아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앞으로도 난 일을 일로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걸 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강요한다면... 어쩌겠나? 전생의 업보 정도로 생각해줘야 하나. 아이참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거지 같은 일을...
언제나 우선순위가 [사람 < 일]인 조직에서
팀장님과 나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평행선은 일을 뭘로 생각할 건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거지 같은 회사가 사람을 안 뽑아주는 상황에 대한 반응도 우린 너무 다르다.
[나의 생각] 우리가 과로를 하고 있으니 현 인원에 맞추어 업무를 줄여야 함. 일이 잘 안 돌아가야 회사 입장에서도 심각성을 느끼고 사람을 뽑아줄 것이다.
[팀장의 생각] 회사에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만큼 우리 팀에 일이 많아야 인력을 따올 수 있음. 일을 줄이면 일이 없다고 사람을 안 줄 것임. 고로 지금의 업무량을 유지하면서 힘들다고 계속 어필해야 한다.
...
재정을 이유로 계속 인력을 충원해주지 않는 조직과, 그런 조직을 욕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일은 계속 많이 해야 한다고 믿는 상사 중, 내게 누가 더 나쁜가?
(언젠가는 답을 찾기도 했지만,) 이제 이 질문은 나에게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같이 있는 사람이 과로로 갈려나가든 말든 둘 중 누구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사도, 나의 팀장도 그 지점에선 동일하다. 조직 내에서 존재하고 있고, 일하고 있고, 피로를 느끼고, 생각이라는 것도 하는 사람... 휴먼... 인간... 그 '사람'에 대한 고려는 언제나 2순위였다.
(그러니까 나를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노동력1로만 보고 있는 주제에, 일을 일로만 생각하지 말라는 주문은 지나치게 뻔뻔하지 않은가?)
진짜 멍청이는 누구인가
이쯤 되면 그냥 내 직장 상사는 일중독자구나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맞다. 그건 사실이고, 나도 이미 입사한 시점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번아웃으로 고생했고 이 문제에 골몰하다 보니 팀장님과 나의 저 근본적인 차이(인력이 부족하니 일을 줄인다 vs. 인력이 필요해서 일을 안 줄인다)가 어디에서 오는 건지 궁금했다. 아니, 팀장님도 사람인데 팀장님은 피곤하지 않은가? 진정 이렇게 계속 과로하는 게 괜찮단 말인가?
회사에 우리 팀 인력 충원을 요구한 히스토리를 들어보니 벌써 5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언제나 인력 충원을 약속받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인력은 충원되지 않아 왔다. 나는 팀장님이 5년째 속으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근 더 선명해지는 생각은 그냥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인력을 따려면 일을 줄이면 안 된다는 팀장님의 말은 어쩔 땐 그럴듯해 보이다가도 어쩔 땐 말도 안 되는 개소리 같았다. (지금 힘든데 일을 왜 안 줄여?) 나는 계속 고민했다. 무엇이 그를 과로에 일중독으로 몰아넣고 있을까? 지속적으로 자신의 체력과 건강을 깎아 먹으면서까지 맹목적으로 인력 충원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뿐이었다. 인정 욕구. 아, 맞다. 그는 온통 인정 욕구로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깜빡했을 뿐.
그는 늘 그럴싸한 이유를 댔고 때로는 내게 인간적인 배려들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끝에, 항상 한 가지 답은 정해져 있었다. 모든 업무를, 빼는 것 없이, 완벽하게.
각자 욕망 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회사는 인건비를 늘리지 않고 노동력을 쥐어짜 현상유지를 하고 싶은 욕망 안에서. 팀장님은 인력을 따오고 결국 규모가 있는 팀의 유능한 팀장이고 싶은 욕망 안에서. 그가 단지 일중독이기에 지치지 않는다기 보다는 그런 팀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기에 지치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이 내겐 더 타당하다.
그러니 그들이 진짜 목표, 진짜 욕망은 숨기고 내게 말하는 '어쩔 수 없음' 사이에서 계속 속고 있는 건 내가 아닌지 말이다.
진짜 멍청이는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나였던 것이다.
아. 브런치에 그만 투덜거리고 얼른 퇴사를 해야 할 텐데.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나도 내 일을 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할 일이 아닌 엉뚱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전생에 난 뭘 잘못했는가 진실로, 진실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