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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를 때리지 않는 다섯 가지 방법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필명을 정해야 했고 나는 이 두 개의 짤을 떠올렸다.



상대가 누구든 당연히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 동물도 때리면 안 된다. 식물도 (때린다는 개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안 된다. 직장 상사는 사람이다. 그러니 상사를 때리면 안 된다. 그런데 직장 상사는 아무래도 때리고 싶은 것ㅇ… (생략)


휴. 나는 오늘도 상사를 엉겁결에 때리지 않고 무사히 퇴근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어느 날 아이쿠 실수를 하는 바람에 상사를 패지 않고 이 회사를 얌전히 퇴사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상사를 때리지 않는 다섯 가지 방법. 왜 다섯 개냐면 나도 모른다. 나는 다섯 개를 모두 채울 수 있을까?





<상사를 때리지 않는 다섯 가지 방법>


※ 경고: 여러분 이건 전부 출근이 괴로워서 쓰는 개수작질입니다.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큰일이 날 수 있습니다.



첫째, 회피형 기법

- 눈은 흐리게, 달팽이관은 몽롱하게, 뇌는 텅 비우고


당신은 벌레를 싫어한다. 그런데 이런, 집안에 바퀴벌레가 나타났다. 어떻게 하는가? 스스로 때려잡거나, 도망치거나. 나는 벌레를 몹시 싫어해서 집안에 혼자 있을 때조차 벌레를 보면 짐을 싸서 집 밖으로 나갔다가 식구들이 온 뒤에야 다시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렇다! 이건 회피형 인간들에게 딱 맞는 방법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시련으로부터 회피하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평가절하 해왔다. 그러나 회피형 인간에게도 배울 점이 있는 법이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드라마도 있지 않은가? 바퀴벌레는 때려도 되지만 상사는 때릴 수 없다. 그럼 어떡하는가? 첫 번째 방법은 회피하는 것뿐.


눈을 흐리게 뜨고 그를 보자. 혹은 그를 내 시야에 두지만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생각해보자. 그가 내게 또 쓸데없는 말을 떠들어 대는가? 달팽이관을 몽롱하게 만들어보자. 비록 내 몸뚱이는 여기 있으나 내 청력은 이만 퇴근했다. 뇌도 텅텅 비우자. 그리고 그냥 고개를 주억거리면 된다. 하지만 주의하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면 들킬 수 있으므로 가끔 “아아…” “그렇군요…”하는 말을 (외마디 비명처럼) 진정성 있게 뱉어야 한다. 그리하여 상사의 개소리는 흐린 눈과 귀로 방어하여 오늘도 무사히 퇴근을 한다.



둘째, 과학 실험 기법

- 쌍욕으로 출근하고 쌍욕으로 퇴근하자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쌍욕을 해본 과학자들이 있다. 이 ‘과학’ 실험에 따르면 손을 얼음물에 넣고 견디면서 욕을 하면 실제 고통을 견디는 양과 시간이 늘어난다고 한다. 즉, 욕에는 실질적으로 고통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https://boingboing.net/2020/05/22/scientists-saying-fuck-an.html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찬물 기법은 내가 이미 애용 중이다. 난 공교롭게도 꽤 한적한 길로 출근을 한다. 가끔 마주오는 사람이 있을 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혼자 씨발 거리며 출근을 해도 듣는 이가 없다.


그렇다, 난 아침마다 회사에 너무 가기 싫은 나머지 “씨발 씨발 씨발…” 하며 출근한다.


출근길 입으로 뱉는 욕은 실제로 효과가 있다. 회사 가기 싫다고 이미 친구, 가족, 애인, 팔로워들에게 수천번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여전히 가기 싫은 건 마찬가지 아닌가? 직장 상사만 떠올려도 넌덜머리가 나지 않는가? 욕을 뱉으며 출근해보자. 욕을 안 하는 것보단 훨씬 마음이 나아진다. 그러고 회사에 갔더니 여전히 진상들 뿐이라면? “씨발 씨발 씨발…” 하며 퇴근하면 된다. 단, 사람 없는 골목에서 욕을 하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 사람이 튀어나오면 이상한 시선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 요망.



셋째, 카메라 기법

- 이제부터 시트콤의 주인공이 됩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내 회사생활도 머얼리서 쳐다보면 시트콤이 된다. 오늘도 상사를 때리지 않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이제부터 자신의 회사생활을 남산타워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시내 뷰처럼 멀리서 바라보자.


여기 당신을 위한 작품이 있다. 바로 전설의 시트콤 <오피스>(2005~2013). 왓챠에는 "시즌1만 견디면 시즌2부터 재밌다"는 가혹한 평이 올라와 있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 <오피스>의 정수는 시즌1에 있다.


당신 직장에도 쓰레기 같은 상사가 있는가? 여기 종합 선물 세트 마이클 스콧이 있다. 사무용품 회사의 조그만 지점을 맡은 지점장 마이클 스콧은 모든 것을 다 한다. 인종차별, 성차별, 성희롱, 빈둥거리기와 직무유기, 내로남불과 우기기, 유치하게 굴기, 규칙 어기기, 직장 내 괴롭힘까지. 그리고 스콧이 이런 염병을 떨고 있을 때 카메라는 조용히 그를 혐오하고 있는 직원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클로즈업 당하는 팸 비즐리와 짐 핼퍼트


자, 오늘부터 당신은 팸 비즐리 혹은 짐 핼퍼트다. 상사가 또 염병을 떨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당신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상상하라. 카메라가 당신을 클로즈업하는 순간마다 카메라와 눈 맞춤을 하고 그의 쌉소리가 얼마나 불쾌한지 시청자들과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해보라. 회사에서 숨 쉬는 모든 순간마다 기억하자. 당신은 지금 시트콤에 출연 중인 배우고 눈앞의 상사가 떠는 염병은 대본에 쓰여 있는 염병이다.



넷째, 테스형 기법

- 적의 약점을 찾아서 사사롭게 복수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라는 걸 가르쳤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 회사에서 발생한 모든 갈등과 비극, 이로 인한 긴장을 카타르시스를 통해 해결할 것이다. 상사의 약점을 찾아라. 그 약점 하나만 공략하라.


예시. 그의 약점이 인정 욕구라면? 그가 자신의 말에 같이 웃자고 내 팔을 막 때릴 때 슬쩍 피해보자. 자신이 했던 "대단한" 어떤 일을 떠벌릴 때, 그때만 입을 다물고 반응을 거둬들이자. 다른 것에선 관대하되 그의 인정 욕구가 발동하는 순간 정확히 그것을 채워주지 말자.


그의 약점이 '강약약강'이라면? 내가 사실은 무서운 사람이라는 점을 암시하자. 옆 팀 직원에게 갑질 신고 절차를 물어봐서(!) 이 사실이 그의 귀에 들어가게 만들어보자. 혹은 어느 날 그가 날 모욕할 때 갑자기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지어보자. 이 졸렬한 종류의 인간들은 작은 암시만으로도 움찔한다. 그가 나 때문에 잠시 겁을 집어 먹는다면 성공.


그의 약점이 '개떡 찰떡'이라면? 개떡 찰떡이 뭐냐고?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며 늘 개떡같이 말하는 인간 유형을 내 맘대로 부르는 말이다. '답정너' 대화밖에 못하는 K-상사 유형도 이와 비슷하다. 이제 그의 앞에서만 한시적 멍청이가 되어보자. '개떡 개떡'이 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똑바로 말할 때까지, 죽을 때까지 알아듣지 못해 보자. 마치 다른 의도는 없다는 듯이, 내 복장이 터지던 걸 그의 복장으로 바꿔주자.


테스형 기법은 흔히 알려진 사이다 서사와는 크기가 다르다. 내가 적에게 복수하며 음흉한 카타르시스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만의 '조구만' 비밀로 남겨야 한다. 그를 '기분은 나쁘지만 뭐가 기분 나쁜지 알 수 없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만들어보자. 핵심은 이것이다. 약점은 정확히, 복수는 소소하게, 만족은 은밀하게.



다섯째, 상대평가 기법

- 너는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


이 모든 기법에도 불구하고 상사와 함께하는 나의 괴로움과 문제들이 사소해지지 않는다면? 이젠 어쩔 수 없다. 마지막 수단은 상대평가 기법을 통해 내 고통을 사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괴로운 1에 집중하지 않고, 또 다른 괴로움 2와 3에 집중하며 스스로 맞불을 놓자. 다른 거지 같은 문제가 더 압도적으로 많아질 때, 나의 친애하는 빌런 '직장 상사'는 이제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로 사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상사)'를 제외하고, 당신이 이 회사를 떠나고 싶은 이유를 천 개쯤 찾아서 종이에 적어 보자. 과도한 업무량. 조선시대 뺨치는 조직문화. 불공평한 업무 배분. 재수 없는 동료. 이상한 후배. 어디에도 없는 업무 매뉴얼. 개인기로 진행되는 업무 프로세스. 근데 또 작고 귀여운 내 월급. 부족한 복지. 승진 누락. 각종 차별…


모두 적었는가? 자, 보아라. 그 사람 말고도 내가 퇴사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자, 그럼 퇴사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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