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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퇴사할 수 있을까? (1)

이제 막 3년 차가 된 말단 사원의 '결코 퇴사'를 위한 짧고도 긴 여정.

21세기 퇴사 오디세이아, 라이브 중계를 시작합니다.




어느 월요일, 수면 위로 떠오른 퇴사 결심


오전 7시. 


알람 소리에 일어났다. 모든 것이 천천히 진행되었다.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를 다시 말리며(아침마다 머리카락을 일부러 물에 적시고 다시 말리는 일은 얼마나 이상하고 허무한지.) 지금 회사에 죽도록 가기 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에 가기 싫은 건 언제나 있는 일이었지만 어쩐지 그날 아침, 나는 갑자기 알게 되었다. 

아. 나는 퇴사를 해야겠구나. 


전조증상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늘 있었고 없었다면 또 아예 없었다. 나는 작년부터 항상 퇴사를 하고 싶어 했고 출근을 괴로워했으며 나의 일터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저주해왔다. 최근엔 '지금 퇴사를 한다면 남은 돈으로 얼마쯤을 버틸 수 있을지' 이런저런 걸 따져보곤 했다. 그리고 '열심히 벌었던 것 같은데 왜 돈이 이것밖에 없지' 하고 다시 낙담하곤 했다. 


그런데 그 결심이 갑자기 오늘은 무슨 깨달음처럼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떠오른 것이다. 결심은 '선다'고 하는데, 나의 퇴사 결심은 수면으로 떠오르듯 '떠올랐'다. 그게 오늘인 이유가 있나? 자문해봤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월요일이라는 사실이 좀 더 고통스럽고 지리멸렬하게, 끔찍했을 뿐.


나는 혼자 마음속으로 5월 말 정도에 퇴사를 하는 걸로 타협을 보았다. 

한 달 반이 넘는 시간은 너무나 긴 시간이어서 나도 흡족하진 않았다. 그러나 내 통장잔고와 나에게 준비를 할 시간을, 그리고 내 직장상사와 회사에도 대비를 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5월 말에 퇴사를 할 것이었다.


오후.


출근을 했다. 상사에게 퇴사 노티스를 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결심은 했지만 그걸 실행할 때는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사실 팀장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할 기회도 있었다. 남의 팀에서 벌어진 일(어느 직원이 부서 이동을 신청했다든가 하는)을 주절주절 얘기하는 팀장님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으며 지금 퇴사 이야기를 꺼낼까 말까 고민했다. 결국 말을 꺼내지 못하고 하루가 지났다.




화요일, 퇴사 통보


오후 1시.


친구에게 여행을 가자고 카톡이 왔다.

"나는 아마도 6월엔 퇴사할 듯? 그래서 당분간은 돈을 안 쓰기로 했어."

"퇴직금으로 메울 수 있어. 퇴사 기념 여행은 국룰 아닌가요."

"안돼 취업 안 하고 오래 백수 할 거야."

"근데 진짜야? 노티스 했어?"

"아직. 이번 주에 얘기하려고."


오후 3시.


3시쯤 되자 오늘은 꼭 퇴사 통보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4시 반에 회의가 있었다. 회의 끝나고는 시간이 없다. 당장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이 커질수록 심장이 뛰었다. 한편으론 내가 보이지 않는 상자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를 꺼낼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었다. 


흥분이 조금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퇴사 통보를 하면 상사가 나를 붙잡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무슨 말로 저 사람을 설득해서 이길 수 있을까? 그런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그냥 퇴사에 대한 굳은 의지만이 필요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에게 가서 물었다.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퇴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팀장님은 이유를 따로 묻지도 않고 바로 대답을 했다. '무슨 말인지' '얼마나 고민하고 결정해서 이야기했을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거기에 대해서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도 했다. 작년부터 우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는지 서로 알고 있기에 그도 내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강한 만류에 직면할 것을 예감하고 긴장하고 있었던 나는 생각보다 내 결정이 쉽게 수용된다는 생각에 안심을 했다. 


그 후엔 40분가량 팀장님의 독백을 들었다. 퇴사를 하겠다는 사람에게 또다시 회사 욕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귀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거지 같은 전쟁터에 당신을 홀로 놔두고 퇴사를 하겠다는 말을 방금 꺼낸, 다소 미안한 입장이었으므로 그 감정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이 회사의 인력 운용이나 의사 결정의 불합리한 지점들, 불공평한 점들, 몇 년에 걸쳐 품어온 불만들을 주절주절 말했다. 


아마도 그건 퇴사를 결심한 나에 대한 공감의 표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내 입장에선 평소에도 팀장님이 반복해서 하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수다쟁이인 당신에 대한 이 감정노동도 퇴사 이유 중 하나라는 사실은 마지막까지 잘 숨기고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40~50분 동안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며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되어, 그는 이 긴 독백을 마무리했다. "아무튼 무슨 이야기인지 충분히 알겠고... 내가 거기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다만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올해 말까지만 사업을 마무리해주고 가면 좋겠는데... 이 문제는 한 번 더 얘길 해봅시다." 


그때 정신이 덜 아득했더라면 가장 마지막 순간에 들이닥친 반전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리고 아뇨, 다시 말하지만 재고의 여지는 1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다시 또 끝없는 대화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40여 분간 끝없이 이어지던 넋두리에 정신이 아득해진 나는 일단 알겠다고 하며 빨리 대화를 마무리해버렸고, 퇴사 통보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을 느꼈다. 


이제 나는 아무런 안전망도 없는 곳으로 다시 한번 발가벗겨져 나가는 신세다. 월급이 없는 삶은 너무나 두려웠다.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니, 저 이제 거지됐어요. 퇴사한다고 말함."

"잘했어. 고생했다"


4시 반엔 회의를 하고, 저녁을 함께 먹고 퇴근했다.


나는 최소한 팀장님이 나의 퇴사 건에 대한 보고는 부장님에게 할 줄 알았다.

내 착각이었다.

내 거지 같은 회사는 나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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