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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퇴사할 수 있을까? (2)

나의 퇴사 여정 라이브 중계 2편




엄마의 의외의 반응


같은 날, 화요일 저녁 10시


퇴사를 하겠다는 말을 엄마에게도 한 번은 해야 했다. 오늘이 아니면 어쩐지 차일피일 미루면서 말을 못 할 것 같았고 밤 10시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대답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극구 만류하거나 최소한 날 나무랄 것 같던 엄마는 의외로 내 결정을 그냥 수용했다. 내 건강이 우선이라는 말과 함께. 갑자기 엄마가 몹시 고마웠다.


화요일은 늦게까지 자지 못했다.




그런 방식은 나를 화가 나게 해


남은 한 주는 이런 식으로 지나갔다. 


목요일, 점심시간.


팀장님이 (구내식당 대신) 밖으로 나가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다른 직원들과 함께 밖에 나가 밥을 


금요일, 점심시간.


팀장님이 또 외식을 제안했다. 우리가 가끔 점심을 나가서 먹긴 했지만 구내식당 밥을 먹는 게 기본이었고, 특별한 계기가 있으면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고 오긴 했지만 이렇게 외식을 연달아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오늘은 부장님도 함께였다. 사실 난 밥을 빨리 먹고 사무실로 올라와 낮잠을 자고 싶었기 때문에 외식 자체가 달갑지 않았다


점심을 먹으며 부장님이 내게 물었다. 일이 적성에 잘 맞냐고. 나는 팀장님이 내 퇴사 의사를 그에게 어떻게 전달한 것일까 궁금해졌다.


오후 2시.


이틀 연속 밖에 데리고 나가 밥을 사주는 것이 팀장님의 배려 내지는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차츰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맛있는 밥을 못 먹어서 퇴사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영영 인력은 충원해주지 않고 나를 갈아 넣게 하면서 힘들다는 호소는 계속해서 묵살하기 때문에 퇴사를 하는 것이다. 그냥 맛있는 걸 먹이고 달래가면서 살살 마음을 돌리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 지점이 나를 화가 나게 한다.


오후 5시.


퇴사 의지를 떠보듯이 '일이 적성에 잘 맞냐고' 물어본 부장님의 질문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팀장님이 내 의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애매모호한 기분으로 주말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퇴근 전 마지막 기회. 카톡으로 물었다. 

팀장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 제 퇴사에 대해서 부장님에게는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아직 부장님은 모르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 OMG. 




두 번째 대화


그렇게 금요일 퇴근을 1시간 앞두고, 팀장님과 밖으로 나왔다. 


화요일까지만 해도 나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회사에 말할 생각이 없었다. 내 약점일지도 모를 사실을 오픈할 만큼 내 상사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나를 점점 귀찮게 만들 예감이 들자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1. 말발과 끈기로 내 의지를 관철시켜 퇴사일을 확정 지을 것인가? 2. 내 병을 알리고 이를 이유로 손쉽게 내 퇴사 필요성에 대한 동의와 공감을 얻어낼 것인가?


나는 좀 더 손쉬운 상황 종료를 위해 후자를 택했다. 


나는 우울증 약을 먹고 있으며 팀의 상황 때문에 여태 견뎌왔으며 이제 진짜 휴식이 시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한다고 말했다. 팀장님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2년 넘게 같이 일하던 직원이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그럴 법했다.


그러나 곧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은 나였다.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는 말을 듣고도 팀장님이 퇴사를 만류했기 때문이다.

"진짜 쉬어야겠네... 쉬어..."

"네, 이제 진짜 쉬어야 될 것 같아요."

"아니, 퇴사하란 말이 아니야. 여기서 쉬어. 여기서 쉬면서 해."

"네? 여기서 어떻게 쉬어요?"

"일 천천히 해. 내가 다 할게."


그가 이 정도 강적일 줄은 나도 몰랐다. 나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나는 끝내 5월 말에 퇴사하겠다는 말만 반복했고, 팀장님은 주말에 생각해보고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어쩌면 둘 다 물러설 수 없는 배수의 진을 친 입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도 (직원의 우울증 이야기를 소화할) 시간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자고 했다.


오후 6시.


퇴근했다. 지금 상황은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꼭 내가 지금 상사를 설득하고 퇴사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처럼 되어버렸고, (애초에 퇴사라는 건 그냥 노동자가 결정하고 회사에 통보하는 일이 아닌지?) 이렇게 된 이상 나도 퇴사 의지가 불타오르게 되어버렸다. 퇴사를 획득하는 게 제1 목표가 되어서 낭떠러지니 뭐니 하는 퇴사 후의 경제적 위기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에서 밀려나 완전히 잊혔다. 잘 된 일일까? 나는 어리둥절했다.


머릿속에 "5월 말 퇴사 성공"이라는 미션뿐이다.




방증


토요일, 오후 2시.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퇴사를 결정했고 통보했으며, 상사의 퇴사 만류에 시달리고 있다고 얘기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그만큼 ㅇㅇ씨가 일을 많이 하고 있었다는 방증이죠..."


맞는 말이었다. 일개 직원 하나를 쉽게 보낼 수 없는 이유는 그것뿐이다. 그가 나가면 빵꾸가 크게 나기 때문. 그만큼 내가 과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 같아 씁쓸했다.


나에겐 5월 말 퇴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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